카페 예찬 1

만약에 남은 평생 커피를 마시지 못하게 된다 해도, 크게 상관은 없을 것 같다.

나는 무엇에 의존하는 것을 거부하려는 의지가 강하다. 시력이 많이 나쁜데도 안경에 의존하는 것이 싫어서 안 쓰는 사람의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는데, 어리석은 일이지만 이해는 간다. 나 역시, 커피를 마시는 손쉽고 향기로운 과정을 거쳐서 카페인에 의존하게 되고 싶지 않으니까.

그러나 커피향이 나는 카페를 가지 못하게 되는 것은 견디지 못할 것 같다. 나이가 조금 있으신 분들은 커피숍과 카페를 나누고 후자를 알콜을 파는 곳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던데, 여기에서 카페란 말 그대로 커피 위주로 파는 곳을 말한다.

널찍한 원목 테이블과 커다랗고 푹신한 의자가 있어서, 글을 읽으면서 유유히 머물 수 있는 곳이 좋다. 음악이 내 취향이 아니라면 이어폰을 끼면 그만이지만, 이왕이면 거슬리지 않는 음악을 조용하게 들려주는 곳인 편이 좋겠지.

제일 처음으로 단골로 드나들게 된 곳은 편안한 자리 외에는 다 그저 그랬다. 그곳에 자주 갈 당시에는 커피를 아예 마시지도 않았었다. 그래서 지금은 더더욱 입에 안 댈 설탕 가득한, 말도 안 되는 엉성한 레시피의 음료들을 들이키곤 했다.

당시에는 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정문 앞의 유명한 체인점은 국내 1호점이라고 했는데, 어차피 커피를 마시지 않는 입장에서는 그런건 관심이 없었다. 무조건 덜 붐비고 더 조용한 곳을 찾았다. 커피를 마시지 않아도 카페에 갈 이유는 많았다. 홍차, 스콘, 케익, 아이스크림, 요거트, 푸딩....이렇게 늘어놓으니 먹으려고 학교 다닌 것 같다.

학교에 남자가 없어서인지 유독 소개를 받는 일이 많았는데, 그런 날에는 단골 카페에 갔다. 별로 재미없어도 편안한 공간에 있으면 시간이 아깝지는 않으니까. 조금 몰아서 며칠을 갔더니 아르바이트생이 자꾸 웃음을 감추었다. 당시에는 그저 왜 그러지, 하는 생각 뿐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단지 상대가 계속 바뀐 것만으로 웃었던 것은 아닌 것 같고, 내 무심한 표정과 말투도 한 몫 했던 것 같다. 나는 첫 인상이 차가워서 상대를 긴장하게 하는 편인데, 하는 말 내용이 어울리지 않게 거침없으면 그 긴장이 탁 풀리는 걸 종종 본다. 일단 그러고 나면 급격하게 친근하게 다가오곤 한다. 그 중간은 어려운 것인가보다.

그러고보면 카페든 아니든, 아무런 의도 없이 여자 아르바이트생들을 잘 웃게 하는 편이었다. 한번은 같이 밥을 먹던 친한 오빠가 말했다. 네가 남자였다면 쟤는 이미 너의 노예... (뭐, 여자를 좋아하는 여자애일 수도 있잖아, 라고 말은 했지만 아닌 걸 안다. 그런 건 귀신같이 알아보는 편이다. )

물론 항상 그렇지는 않다. 첫 인상이 차가우면, 괜히 뭔가 자신을 깔보는 걸로 생각하고 싫어하는 경우도 있다. 다 개개인의 축적된 경험의 결과겠지. 어차피 사장의 감정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상관은 없다.

그간 좋은 카페들이 너무 많이 생기고 또 사라져 갔다. 요즘 내가 갈만한 조용한 곳들은 주로 남자 아르바이트생들이 많다. 내 첫 인상은 여전히 차갑지만, 공부를 마친 후로 가게 운영도 해보고 또 접고 그러면서 조금 더 세상 때가 묻고 (비록 말로 표현하지는 않지만) 넉살이 늘다 보니, 상대가 받는 느낌도 다른가보다. 반응이 약간 다르다.

최근 들어서는 연속으로 비슷한 경험을 했다. 나는 원래 마음에 드는 카페를 발견하면 꼭 물어본다.
"여기 몇 시까지 해요?"
그런데 웃을 수 없는 답변을 받았다.
"저요?"
너겠냐, 라고 웃으면서 말하고 싶지만 참는다. 속마음은 좀 놀려주고 싶지만, 안 그래도 얼굴 붉히고 있는 사람 무안 주면 벌 받는다. 뭐, 그런 반응 역시 개개인의 경험에서 생겨난 기대치를 반영하는 것이겠지. 어쨌든 나는 카페가 좋다, 커피보다 더.

20180402_132542.jpg

H2
H3
H4
Upload from PC
Video gallery
3 columns
2 columns
1 column
81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