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Painting] 다 덮어버리고 싶은 욕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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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을 그릴 때면 자꾸 유혹에 빠진다.
열심히 그렸던 그림을 한 가지 색으로 다 덮어버리고 싶은 유혹.

이해가 안 될 것이다. 열심히 그렸던 그림을 왜 망쳐? 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나는 결국에는 후회하면서도, 정신 차리고 보면 또 큰 붓으로 물감을 가득 발라... 그림을 덮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하곤 한다. 희열이 있다. 변태적 희열이랄까. 열심히 묘사한 그림일수록 다 덮어버리고 싶어.

묘사가 자질구레해질수록, 그림이 그림에서 멀어질수록, 즉 '너무 그림같지 않게' 열심히 그렸을 때, 나는 그것을 덮는다. 아 존나 아깝네.. 라는 마음을 이겨서는 마음이다. 그림으로 다시 돌아가고픈 마음이다. 그림같지 않을 바에야 그림이고 말지, 라는 마음이다.

그런데 그때는 몰랐다. 본능적인 행위만 있었다. 이 그림을 망쳤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버렸다. 아깝다. 이제는 알아볼 수 있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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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핑을 규칙적으로 해서 그림을 그렸다. 이때 한참 서태지의 앨범을 듣고 있었는데 본인의 장르가 'Nature Pound' 라고 했다. 나도 자연을 한번 쪼개서 그려볼까? 라는 마음이 일어서 시작했던 그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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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간 엇나가게 두 줄을 그렸다. 이때부터 그림을 덮고자 하는 기운이 스믈스믈 안개처럼 몰려오고 있다. 이때는 몰랐다. 이 안개같은 붓질이 캔버스 전체를 휘감아버릴 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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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점 잠식하고 있다. 이러다 말겠지.. 라고 생각하며 붓질했던 것 같다. 그런데 그림은, 그리는 사람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다. 그냥 이끄는 대로 냅다 지르는 역할밖에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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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점. 점점. 이제 돌이킬 수도 없고 멈출 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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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멈췄다. 변화무쌍한 흰색들이 남았다. 겨우 그림이 된 것 같다.




@thelum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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