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 비교] "그리스인 조르바" 번역은 어떻게 다를까? - 1편

번역.jpg



오늘 글은 얼마 전에 읽었던 윤님(@yoon)의 포스팅이 발단이 됐다.



[윤책방] 그리스인 조르바 번역 비교


한 권의 책, 두 명의 번역가



윤님은 이 글에서 "그리스인 조르바"를 두 번째 읽고 계시다고 했다. 예전에는 이윤기 씨 번역으로, 지금은 유재원 씨 번역으로. 당연한 일이지만 그래서 번역이 조금씩 다르다. 원체 같은 사람이 번역을 했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바뀌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아예 사람이 다르니 번역에 크고 작은 차이가 있을 것이다.

게다가 이윤기 씨는 아마도 영어에서 번역을 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리스어 - 불어 - 영어 - 한국어의 과정을 거쳤을 터이니 의도치 않았더라도 문장의 의미나 어감이 달라지는 경우가 생겼을 수도 있다.

반면 유재원 씨는 그리스어에서 바로 번역을 했다고 한다. 여러 중간과정을 건너 뛰었으니 조금 더 원전에 가까운 번역이 되지 않았을까? 윤님도 여기에 초점을 맞추어 책 초반에 나오는 세 군데의 번역을 비교해주셨다. (어느 번역이 더 좋다 나쁘다를 가리기 위함이 아니라, 그저 번역의 차이를 비교해주신 거다.)

윤님의 글을 읽고나자, '영어로 번역된 건 어떨까?'하는 데 생각이 미쳤다.


이윤기 씨가 번역한 '그리스인 조르바'. 열린 책들. 출처: 여기


유재원 씨가 번역한 '그리스인 조르바'. 문학과 지성사. 출처: 여기


여기, 또 한 명의 번역가


미국에서도 2012년 새롭게 책이 번역되어 나왔다. 이전에는 그리스어 - 불어 - 영어로 번역이 됐었는데, 이번 한국과 마찬가지로 그리스어에서 영어로 바로 번역한 버전이 출간된 것이다. 이윤기 씨의 책과는 번역이 다를 수 있어도 유재원 씨의 번역본과는 비교해봐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 권 모두 하나의 그리스어를 각각 우리말과 영어로 번역한 것이니까.

세 명의 각기 다른 번역가들은 이 책을 어떻게 번역했을까?



미국에서 출간된 'Zorba the Greek(그리스인 조르바)'. 피터 비엔(Peter Bien)이 그리스어에서 직접 번역했다. Simon and Schuster 출판사.


세 가지로 읽어보는 "그리스인 조르바"



그럼 지금부터 세 번역가의 문장들을 비교해보자.


알아두실 사항

  1. 앞서 언급했듯이 이윤기 씨는 그리스어 - 불어 - 영어 - 우리말의 과정을 거쳤고, 유재원 씨는 그리스어 - 우리말, 피터 비엔은 그리스어 - 영어로 번역을 했다.

  2. 이윤기 씨와 유재원 씨의 번역 부분은 위에 언급한 윤님의 포스팅에서 가져왔다. 소제목에서는 번역가분들의 존칭을 생략했다.

  3. 적혀 있는 페이지 수는 피터 비엔이 번역한 원서 Zorba the Greek의 페이지이다.

  4. 피터 비엔이 한 영어 번역의 이해를 돕기 위해 괄호( ) 안에 우리말 번역을 적어 넣었다. 영어 본연의 뜻을 살리려고 가급적 직역을 했는데, 본의 아니게 유명하신 번역가 분들의 번역과 비교가 돼버렸.. -_-;;



9p

이윤기 번역

항구 도시 피라에우스에서 조르바를 처음 만났다.


유재원 번역

내가 그를 처음 만난 건 피레우스에서였다.


피터 비엔 번역

I first met him in Piraeus. (나는 그를 피레우스에서 처음 만났다.)


소설의 첫 문장이다. 이윤기 씨는 '항구 도시'라는 말을 넣었고, '조르바'라는 이름을 언급했다. 책을 처음 읽는 독자를 위해 배경을 상세히 설명해 주었다고 볼 수 있겠다. 또한 '나'라는 주어가 빠져 있는데, 우리말에서는 주어 '나'를 잘 쓰지 않는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역자가 소설가이기도 하다는 점이 이런 차이를 드러낸 게 아닌가 싶다.

반면 유재원 씨는 지명만 언급을 했으며, 이름 대신 '그'라는 대명사를 넣었다. 그럼, 똑같이 그리스어에서 바로 영어로 번역했다는 피터 비엔의 번역은 어떨까?

피터 비엔의 첫 문장은 유재원 씨와 똑같다. 그냥 지명만 언급했고, 이름 대신 him(그 사람)이라는 대명사만 나와 있다. 내가 그리스어를 모르고, 그리스어로 되어 있는 원전을 읽어보진 못했지만 유재원 씨와 피터 비엔의 번역을 보면 원전도 이렇게 되어 있을 거라는 짐작이 간다.



9p

이윤기 번역

그래, 어떨 것 같나? 아침 인사는 술집에 나와 하고, 저녁 인사는 하숙집에 가서 하지! 내 사는 게 이 모양이야. 일거리가 있어야지.


유재원 번역

어떠냐고? 아침이면 카페 가서 '안녕'하고, 저녁에는 집에 가서 '안녕'하지. 아침에는 카페에서 '안녕', 저녁에는 집에서 '안녕', 이게 내 일과야. 일이지, 에이!"


피터 비엔 번역

"How goes it?" he replied. "Morning: cafe. Evening: home. Morning: cafe. Evening: home. That's my life. Work: yuck!" ("어떻냐고?" 그가 대답했다. "아침은 카페, 저녁은 집. 아침은 카페, 저녁은 집. 그게 내 삶이야. 일이라면 우라질!")


여기에서부터는 이윤기 씨의 번역과 유재원 씨의 번역이 조금 더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술집'은 '카페'로, '하숙집'은 '집'으로 바뀌었다. 영어 버전에서도 '카페(cafe)'와 '집(home)'으로 나와 있어서 유재원 씨의 번역과 조금 더 가까운 것 같다.

두 한국어 책 모두 '아침 인사, 저녁 인사', '안녕'이라는 말을 통해서 뭔가 인사를 한다는 걸 보여주고 있는데, 피터 비엔의 번역에는 인사말이 나와 있지 않다. 물론 여기에 나와 있는 Morning이나 Evening을 그저 '아침, 저녁'으로 해석하지 않고, "(Good) Morning!"이나 "(Good) Evening."으로 본다면 "안녕! 안녕하세요."의 의미가 될 수는 있겠지만, 큰 따옴표(")를 쓰지 않고 그냥 적혀 있기 때문에 인사말로 보이지는 않았다. 그리스어 원전에는 어떻게 되어 있을까?



9~10p

이윤기 번역

"산다는 게 징역살이지." 카라기오지스 극장에서 개똥 철학 나부랭이를 주워들은 듯한 텁석부리가 말했다. "암, 징역도 종신형이고 말고, 빌어먹을."


유재원 번역

"인생이란 무기징역이지. 빌어먹을 무기징역!" 카라기오지스로부터 철학을 배운 짙은 콧수염의 사나이가 말했다.


피터 비엔 번역

"Our existence equals life imprisonment," said a mustachioed sailor whose philosophical training derived from the Karaghiozis puppet theater. "Life imprisonment, goddamn it to hell!" ("우리 존재가 무기징역이지." 카라기오지스 인형 극장에서 철학을 배운 콧수염의 뱃사람이 말했다. "무기징역이라고, 빌어먹을!")


우선 자잘한 것부터 살펴보자. 이윤기 씨는 "수염이 짧고 더부룩하게 많이 난 사람"을 일컫는 '텁석부리'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이 단어만 보자면 이런 사람이 떠오른다.


254.jpg
책 속에 나온 뱃사람치곤 좀 멋있긴 하지만, 수염만 보자면 이런 느낌일 것 같다


반면에 유재원 씨가 쓴 "짙은 콧수염의 사나이"라면 이런 느낌이다.

254-1.jpg
좀 늙으신 것 같긴 하지만, 그래도 멋진 콧수염의 사나이. 위에 나온 '텁석부리'와는 다른 느낌이다.



마지막으로 피터 비엔의 책에서는 mustachioed sailor라고 나와 있다. mustachioed라는 단어는 "콧수염이 있는"이라는 뜻인데(그러니 일단 유재원 씨의 번역과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길고 잘 꾸며진 콧수염을 가진" 이라는 뜻이다. 그러니 이 글을 읽으면 이런 사람이 머리에 떠오른다.

254-4.jpg
길고 멋지게 꾸며놓은 콧수염.


수염 말고 한 가지 더 얘기해 볼 것은 바로 "카라기오지스(Karaghiozis/Karagiozis)"이다. 그리스에 대해 해박한 지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모르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이 단어가 낯설 수 밖에 없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카라기오지스는 "그리스 전통의 줄을 매달아 하는 그림자 인형극"이라고 한다.

이런 배경지식이 없이 유재원 씨의 번역을 봤을 때는 '카라기오지스'라는 사람에게서 철학을 배웠다는 말인 줄 알았다. 카라기오지스가 누군지는 몰라도 그 사람에게 정식으로 혹은 어깨 너머로 철학을 배운 사람인가 하고 갸우뚱하게 된다.

영어 번역에서는 "the Karaghiozis puppet theater (카라기오지스 인형 극장)"이라고 조금 더 자세히 나와 있다. 즉, 정식으로 철학을 배운 게 아니라 인형극을 보며 배운 철학이라는 걸 알 수 있다. 요새 우리로 치자면, "사극을 보며 역사를 배우고, 드라마를 보며 철학을 배웠다" 정도의 뉘앙스일 수 있겠다 싶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이윤기 씨의 번역도 이해가 간다. 정식으로 철학을 배운 게 아니라 인형극 따위를 보며 철학을 배웠다는 뉘앙스를 주기 위해서였는지 "개똥철학 나부랭이를 주워들은 듯한" 이라고 번역했기 때문이다.



윤님께서 두 책의 번역을 비교하는 글을 또 올려주셨는데, 글이 길어져서 그건 내일 올려보려고 한다. 번역을 비교하는 작업, 생각보다 재미있다. ^^


덧))

  1. 나는 "그리스인 조르바"를 꽤 오래 전에 읽었다. 거의 20년 전에. 내 생각에 "그리스인 조르바"가 아니라 "희랍인 조르바"로 읽은 거 같다. 그래서 세세한 내용들이 거의 기억이 안 난다. 지금 번역 비교하느라 보고 있는데 참 새롭다. -_-;;

  2. 이 글들은 누구의 번역이 더 잘 됐고, 더 나쁘고를 따지기 위해 작성하고 있는 게 아니다. 애초에 원전인 그리스어 판을 읽고 이해할 수도 없는데 그런 비교는 소용이 없을 것이다. 더군다나 이윤기 씨의 번역은 삼중번역이니 말이다.

  3. 그럼에도 이 글을 쓰는 이유는 번역물을 비교해보면서 역자들의 고뇌를 엿볼 수 있고, 그 과정에서 원전을 조금이나마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4. 원전은 아니지만 영어 번역본과 비교해보면서 영어 공부도 되니 더 좋고.

  5. (그리스) 문학과 영어를 잘 아시는 분이 계시다면 혹시 내 글에서 오류를 발견하시더라도 너무 쪼지 마시고, 댓글로 상냥하게 알려주시기를.

  6. 번역 비교를 하면서 보니 역시 (문학) 번역은 함부로 도전하면 안 되겠구나 싶다. ㅠ.ㅠ

H2
H3
H4
Upload from PC
Video gallery
3 columns
2 columns
1 column
42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