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ollowing is a character study on George Smiley, the hero of John le Carre's Tinker Tailor Soldier Spy.
존 르 카레(John Le Carre)는 실제로 영국 첩보원이었던 것으로 알려진 작가로, 그의 소설 팅커 테일러 솔져 스파이(Tinker Tailor Soldier Spy) 역시 어느 정도 실화를 토대로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팅커, 테일러...는 1979년 BBC에 의해 총 7부작으로 드라마화 되었는데, 과장된 액션 씬 하나 없이 대부분의 캐릭터를 흥미롭고 밀도 있게 그려낸다.
한 때 여러 밤을 이 7부작을 되돌려보며 지새우곤 했다. 처음에는 원작에 충실하면서도 그 구성을 연출의 의도에 맞게 재배치한 시도가 와닿아서였는데, 나중에는 각 캐릭터의 매력을 찾게 되어서였다.
팅커, 테일러, 솔져, 스파이의 배경은 냉전시대의 영국 정보부, 흔히 MI6(Military Intelligence 6)로 불리는 SIS(Secret Intelligence Service)이다. 권력 투쟁에서 밀려난 끝에 정보부에서 은퇴한 주인공 죠지 스마일리는 최고위급 간부 중에 러시아 첩보원이 있다는 정보를 받게 된다. 이렇게 깊이 파고 들어간 간첩은 '두더지'로 불린다. 스마일리 자신을 정보부에서 내몰고 실세가 된 3인, 혹은 4인 중에서 '두더지'를 찾아야 하는 미션은 공적 업무이면서도, 사적 복수의 기회이기도 하다.
제목의 팅커(땜장이), 테일러(재봉사), 솔져(군인)란 유력한 러시아 첩보원 후보인 간부 3인에게 붙인 코드명으로, 어린이가 부르는 동요 가사에서 따온 이름들이다. 테마 음악과 함께 등장하는 마트료쉬카(러시아 인형)는 스토리의 '범인 추리(whodunit)' 요소를 강하게 암시한다.
하지만 [Jem TV] 시리즈의 목적은 작품에 대한 전반적인 비평이 아니라 특정 주제에 집중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 작품에 대한 다른 이야기들은 우선 제쳐놓고, 이번 회차에서는 드라마의 관전 포인트 그 자체로서 죠지 스마일리, 즉 주인공 캐릭터에 집중하기로 한다.
배우 알렉 기네스(왼쪽), 팅커, 테일러 솔져, 스파이 中
모든 배역에는 배우와 캐릭터가 만나고 헤어지는 지점이 있다. 시청자에게 익숙한 배우일수록, 그 지점은 더욱 두드러질 수 있다. 죠지 스마일리를 연기하는 명배우 알렉 기네스는 복합적인 캐릭터의 대가이다. 그 자체로 영화와도 같은, 귀족의 사생아 출신이라는 배경의 이 배우는 영화 아라비아의 로렌스(Lawrence of Arabia)에서 유들유들한 파이잘 왕자(훗날 파이잘 1세) 배역을 맡았다. 또한 콰이 강의 다리(The Bridge on the River Kwai)에서는 주어진 임무에 충실한 끝에 본연의 목적을 상실해버리는 니콜슨 대령 연기로도 잘 알려져 있다.
은퇴 후, 갑자기 자신을 찾는 부름에 임하는 죠지 스마일리
드라마 팅커, 테일러...의 죠지 스마일리를 한 마디로 정의하자면 시니컬한 사람이다. 어떤 것에 대한 신념보다는 상대적인 가치를 판단하는 그에게는 영웅이 되고자 하는 갈망도 없다. 그는 밀려난 후에도 조용히, 본인의 대사를 통해 드러났듯이 학구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었고, 씁쓸함 이상의 감정을 갖지도 않는다.
하지만 그가 다시 부름을 받아 특수한 임무에 돌입할 때, 젊은 시절부터 그가 활동하던 원동력을 어렴풋이 엿볼 수 있다. 죠지 스마일리는 정확하고 신속하며, 명철하다. 그리고 정보부 활동은 그의 모든 재주를 활용할 수 있는 기회이다. 정보부 일은 스마일리로 하여금 가장 자신답게 살 수 있게 해주는 일이다.
최초의 제보자를 심문하는 스마일리
만일 스마일리에게 정보부 최고의 자리에 오르려는 마음이 있다면 그것은 그가 최고이고, 최고가 최고의 자리에 오르는 것은 순전히 합리적인 결론이기 때문이다. 합리적인 결론이기 때문에 스마일리 본인도 거기에 동의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의 은퇴 후 '두더지'의 뜻대로 마구 돌아가는 '서커스(정보부를 지칭)'를 보며, 시청자는 그가 빠르고 효율적으로, 심지어 사적 감정도 배제하고 '두더지'를 찾아낼 것이라는 믿음을 갖게 된다.
사실 무력으로, 가령 모든 간부의 집을 뒤지는 등의 절차를 통해 '두더지'를 찾는 일은 어렵지 않다. 국가가 그 대신에 스마일리를 다시 부른 이유는 언론에 실리지 않게, 조용히 '두더지'를 찾아서 소련으로 돌려보내려 하기 때문이다.
죠지 스마일리, 소련의 적수를 만나는 과거 회상 장면
회상을 통해 드러나는 죠지 스마일리의 과거를 보면, 국가에 대한 충성이나 이데올로기에 대한 확신의 자리에 다소 느슨하고 자조적인 선택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드라마 팅커, 테일러... 초입부에서 먼지 티끌 하나 없을 것 같은 검은 오버코트를 걸치고 서점을 누비던 인물이 정확히 어느 순간부터 '알렉 기네스'로 보이지 않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얼굴을 펴고 밥을 먹으면서도 느껴지는 블랙 유머의 무게가 그를 죠지 스마일리로만 보이게 했던 것 같다.
스마일리는 젊은 시절, 일명 '카를라'로 알려진 소련 지도자와의 첫 조우를 하였다. 이때 스마일리는 카를라에게 서구 세계의 우월성을 강변하지 않는다. 그는 당시 소련 당국에 의해 죽을 위기에 빠져 있었던 카를라에게 실용적인 이유를 들어 설득하려 한다.
"자네의 세계나 내 세계나, 각자의 단점은 이제 알 만큼 알지 않는가? 하지만 우리는 당장 내일이라도 총살될 위기에서 자네를 구해줄 수 있네."
그러나 카를라는 소비에트의 대계(The Grand Design)에 대한 광신적 믿음을 가진 사람이었고, 따라서 카를라를 회유해서 영국으로 망명시키려던 스마일리의 시도는 실패하게 된다. 훗날 스마일리가 정보부에서 쫓겨난 것은 카를라의 개인적 복수심으로 시작된 것인지도 모른다. 카를라는 그때부터 '두더지' 계획을 세웠던 것이다.
비록 이런 카를라와는 대척점에 서 있는 인물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죠지 스마일리가 아무런 행동의 동기가 없는 허무주의자인 것은 아니다. 그는 한 이데올로기와 그것을 토대로 한 체제를 지키기 위해 매일같이 큰 무력이 사용됨을 직접 보는 사람으로서, 윤리 도덕을 비롯한 여러 가치의 상대성을 매우 잘 인지하고 있을 뿐이다.
다만, 스마일리에게 있어 자유 진영이란 자신의 이러한 '생각의 자유'를 담보해주는 가장 나은 대안이다. 그래서 그는 서방 세계의 정보 최전방에서 자신의 조직을 사수하는 것이다. 스마일리의 가치 선택 자체는 이처럼 소극적 동기에서 비롯된다.
만일 죠지 스마일리가 학자나 작가였다면, 이러한 소극적인 선택은 그에게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가장 적극적인 신념의 동기를 가진 사람에게나 걸맞는 활동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이다.
그래서인지, 그의 눈빛에서는 시종일관 어떤 '괴로움'이 있다. 이는 '천국'에의 믿음이나 '지옥'에 대한 두려움을 가진 '신도'와 대비되는, 그 둘의 부재를 인식하면서도 큰 위험을 자주 감수하고 살아온 사람의 눈빛이다. 그것은 무엇을 위해 이렇게 사는지에 대해 생각을 하다못해, 이제는 무뎌진 사람 특유의 표정이기도 하다. 분야 특성상 항상 숨기고, 속이고, 그림자처럼 모든 일을 진행해야 했던, 그런 삶의 무게일 수도 있겠다.
이런 경우에서조차 진심으로 집중할 수 있는 가치가 있다면, 한 조직 내의 개인간의 신뢰와 배신일 것이다. 죠지 스마일리 같은 인물이라면, 조직의 일원들을 개인적으로 거듭 배신하고 죽음으로 몰아넣은 '두더지'를 찾아내고, 그 '두더지'가 개인적으로 배신한 사람의 복수를 당하는 것을 목격하면서, 한동안 삶의 의미를 찾았을지도 모르겠다.
죠지 스마일리가 살아온 삶은 일반인들에 비해서도 그런 카타르시스를 느낄 일이 거의 없었을 것이다. 거짓말하고, 속이고, 뒤에서 일을 꾸미는 모든 사람들을 대면하고, 원한다면 삶에서 몰아낼 수도 있는 일반인들에 비해, 죠지 스마일리의 삶은 도를 넘지 않는 이중간첩들과 거래하고, 은밀하게 해야 잘 할 수 있는 일을 크게 떠벌리고 싶어하는 동료들을 제어하고, 자리에 연연하지 않으면서도 또 거기서 보람을 느끼기도 하는 모호한 삶이었을 테니까.
그런데 스마일리가 결국 잡아낸 '두더지'는 그에게 서방 이데올로기에 대한 회의를 토로한다. '두더지'는 결국 카를라 식의 설득에 넘어간 인물이었던 것이다. 이데올로기에 대한 신념이나 집착이 없는 죠지 스마일리에게, '두더지'는 갑자기 나약하고 순진한 인물로 보였을 수 있다. 그러나 동시에, 스마일리 자신이 모든 것을 바칠만한 가치가 없다는 사실을 다시금 상기했을지도 모른다.
물론, 스마일리처럼 아무런 신념의 대상이 없으면서도, 그에 대해 고뇌하지 않는 것도 하나의 옵션이다. 어떤 이들은 직관적으로, 고민하지 않는 길을 선택하기도 한다. 애초에 아무 고민이 없어서일 수도, 너무 고민이 많았기에 극복하기로 한 것일 수도 있지만, 어쨌든 그런 이들에 비해 죠지 스마일리라는 캐릭터는 순수하다. 아직 고뇌를 내려놓지 못하고, 조용히 감추고만 있기 때문이다.
그가 임무를 완료하고 마지막으로 찾아간 부인의 한 마디 말에 따르면, 그는 그가 겪은 모든 경험에도 불구하고, "삶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다. 그 말에 그는 처음으로 조용한 고뇌의 표정을 벗어던지고, 당황감을 내비친다.
시청자 또한 어둡고 긴박한 추적 과정을 거쳐 볕이 환하게 내리쬐이는 결말에 도달하면서, 그간 있었던 일이 마치 꿈을 꾼 것 같다고, 좀 바보 같았다고 느끼기도 한다. 무언가에 홀렸던 것처럼, 결국 모든 사람이 장기의 말에 불과하다는 생각에 머무르게도 되는 것이다.
참고로 죠지 스마일리는 제임스 본드와 비슷한 시대에 탄생한 캐릭터이다. 환상을 잠시 내려놓고 현실을 곱씹고 싶다면, 팅커, 테일러, 솔져, 스파이는 아직까지도 현존하는 최고의 첩보물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