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m.i. #3. 잡다한 이야기: 70~90년대 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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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익을 대로 방치한 성전청소 시리즈 1편(서문 참조)을 쓰고 싶었지만, 오늘 하루가 너무 더웠다. 속 편한 주제로 글을 쓰고 싶다! 그래서 조금은 들어봤다고 할 수 있는 70~90년대 팝 음악 이야기를 해보기로 한다. 물론 나는 음악 전공자는 아니며, 어릴 적에 피아노와 바이올린으로 상당히 진도는 나갔지만 도저히 연습을 안 하고는 그 이상 나갈 수 없어서, 그냥 관둔 케이스다. 그냥 음악을 징그럽게 많이 듣는 사람으로 분류될 수는 있겠고, 주식은 클래식, 그에 가까운 2위가 재즈, 스윙이지만 요즘 팝을 안 듣기 때문에...남는 시간에 60~90년대 팝도 굉장히 많이 듣는 편이다.

그럼 번호 붙여서 일단 생각나는 대로... 이런저런 정보(?)에 속하니 t.m.i. 시리즈로 씀.

1. "저 곡을 듣고 이 곡을 만든 것 같다!"고 여겨지는 경우

조니 브리스톨이라는 유명한 60~70년대 모타운 레이블(Motown label) 프로듀서가 있다. 그는 어르신들(?)이라면 기억할지도 모르는 오즈먼드 형제의 Love me for a reason(youtube link)을 작곡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이 노래는 90년대에 한 보이밴드의 데뷔를 위해 리메이크(youtube link)됨.

프로듀서로 꽤나 잘나가던 조니 브리스톨이 노래도 꽤나 잘 하는 사람이었다는 사실은 그가 작곡하고 직접 불러서 1974년에 발표한 노래 Hang on in there baby에서 확인이 가능하다. 딱 70~80년대 노래에서만 느낄 수 있는 특유의 밝은 분위기의, 소위 '기분 좋아지는' 노래 중 하나.

조니 브리스톨의 Hang on in there baby

원곡을 절대 따라잡을 순 없지만, '떼창'에 상당히 어울린다는 점을 간파한 듯한 또 하나의 영국 팝 밴드(보이밴드로 분류하기엔 좀 애매)가 리메이크(youtube link) 하기도 했다. 다른 리메이크들도 있으나 놀랍게도 리메이크 중에선 이게 차라리 제일 낫다. 90년대 틴에이저(인 척 하는) 느낌과 랩 주의!

그런데 이 곡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간간이 지적하는 하나의 사실이 있다. 최초로 발표되기 1년 전인 1973년에 나온 배리 화이트의 Love's Theme이 떠오른다는 것이다.

배리 화이트의 Love's Theme

이런 느낌은 사실 주관적인 문제이지만, 개인적으로는 아마도 배리 화이트 옹의 이 곡에서 조니 브리스톨이 영감을 얻은 것이 맞겠다는 생각이 든다. 뭐 나름대로 훈훈한 스토리이다.

2. 사실상 다른 멜로디인데, 표절 의혹이 이해가 되는 경우

내가 유일하게 시청할 정도로 좋아하는 스포츠는 권투라고 지난 t.m.i. 서문에서 밝힌 적이 있다. 물론 권투 영화도 어지간하면 다 본다. '록키' 같은 클래식은 당연히 가끔씩 보는데, 1편을 제외하면 사실상 거의 동일한 패턴으로 짜여져 있다. (심지어 3편과 5편의 파이트 시퀀스는 양심도 없이 아예 동일함.) 아, 이 글은 '록키'에 대한 글이 아니므로...

'록키'의 오리지널 사운드 트랙은 죄다 빌 콘티가 작곡했는데, 아래는 그 중에서 주인공 록키가 파이트에 승리했을 때 나오는 곡이다. (사실 이 곡은 @afinesword님이 운동할 때 듣는 곡으로 포스팅을 선수치셨...)

위 영상에서 1분 30초나 되어야 문제의 멜로디가 나오고, 그 전까지는 그냥 간만 보고 있다.

그런데 영화 OST라는 것이 거의 항상 그렇듯이, 트랙마다 딱딱 독립적으로 나뉘어진 멜로디들이 아니라, 약간 바꿔서 계속 등장하는 테마들로 이루어져 있다. 심지어는 모든 트랙에서 같은 멜로디 하나로 계속 우려먹는 영화들(예시)도 존재한다.

아무튼, '록키'의 위 멜로디는 마지막 트랙의 14초부터 또 등장한다. 물론 다른 곳에서도 조금씩 등장하지만...

14초부터 등장하는 동일한 테마

'록키'에서 이 테마가 차지하는 중요성은 가장 크다고 볼 수 있다. 어쩌면 훈련하는 부분으로 유명한 그 테마보다 더.

그런데 이 '록키' 테마와 같다는 평을 종종 듣는 기악 파트를 가진 노래가 하나 있다. 굉장히 유명한 노래인데, 개인적으로 시끄러워서 정말 싫어하는 노래다. 문제의 부분은 1분 10초 경부터 나오는데, 구글에서 Rocky I will survive라고 치면 표절 아니냐는 의혹들을 볼 수 있다. 가수의 꽥꽥 대는 목소리와는 무관하게, 간주 부분이다.

글로리아 게이너의 I will survive, 1분 10초부터 문제의 부분

그런데 내가 듣기에는 '록키' 테마를 일종의 심한 변주곡으로 돌려서, 아예 다른 멜로디가 되어버린 경우 같다. 즉, 다른 멜로디라고 생각하지만, 표절 의혹이 있을 때 굳이 반박하고 싶지도 않을뿐더러, 그런 얘길 들어도 싸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어찌 보면 그냥 '록키'의 테마에서 '영감'을 받아서 만든 기악 파트라고 할 수도 있겠으나, 앞에서 거론했듯이 '영감'을 받았겠거니 생각하고 있는 배리 화이트-조니 브리스톨과는 전혀 다르게 와닿는다.

3. 아예 똑같은 멜로디인데, 원곡이 클래식이라는 '전문가'의 이야기가 있었지만 그게 거의 확인 불가한 괴담과도 같은 경우

세 명의 완전히 다른 아티스트의 노래들이 동일한 곡조를 포함하고 있는데, 발표 연도보다는 유명한 순서대로 나열해본다.

올드팝 조금이라도 들어봤다는 사람이라면, 아니 안 그런 사람이라 해도 다 들어봤을, 리오 세이어(Leo Sayer)의 When I need you가 있다. 문제의 곡조는 그냥 맨 처음부터 등장하고 후렴구로 또 등장하는, when I need you로 시작하는 바로 그 부분이다.

레오 세이어(Leo Sayer)의 When I need you(1976)

문제의 부분은 사실상 위 노래에서 가장 유명하기도 하고, 중요하기도 한데, 5년이나 먼저 나온 레너드 코헨(Leonard Cohen)의 Famous blue coat의 후렴 부분과 동일하다.

레너드 코헨의 Famous blue coat(1971), 문제의 부분은 대략 1분 13초부터

설상가상으로 엘튼 존의 1980년도 노래에도 같은 곡조가 있다.

엘튼 존의 Little Jeannie(1980), 전주부터 냄새를 풍기다가 3분 28초에 가서야 같은 곡조가 등장

실제로 레너드 코헨은 2006년의 인터뷰에서, 자신을 대행해서 관계자들이 When I need you를 부른 리오 세이어를 고소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때 세이어 측에서 고용한 음악학자는 이 곡조가 멀리 거슬러 올라가면 슈베르트까지 올라가서 찾을 수 있으며 따라서 공공재라고 주장했다고 한다. 물론 정확히 슈베르트의 어느 곡인지 말하진 않았다.

일설에 의하면 슈베르트의 세레나데로 알려진 그 유명한 곡이라고 하는데,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다. 단순히 재판을 위해서 양심을 판 음악학자의 견해였던 것일까?! 슈베르트를 썩 좋아하진 않지만 그래도 다 들어보긴 했는데, 무슨 곡을 두고 그렇게 말했는지 의문...

4. 이젠 90년대 이야길 하나 해야지. 아이돌 가수 이야기

한 아이돌 그룹, 보이밴드의 이야기다. 사실 그들을 알게 된 후로 음악에 감흥하진 않으면서도 이런저런 영상을 찾아보게 되는 자신을 발견했다. 노래 자체가 좋아서가 아니라 그냥 관심이 가는 애들이 부르니까 노래도 들을만한 그런 현상! 그래서 소위 그루피들, 아이돌 덕질하는 애들 마음을 조금은 알 것 같다.

90년대에 잘 나가던 영국 그룹인데, 내 깨알 같은 문학 지난 회차에서 잠깐 얘기했던 오아시스 vs. 블러 구도와도 시기가 겹친다. 물론 지금은 40~50 정도 되는 아재들로, 10년쯤 전부터 컴백해서 활동을 계속 하고 있다.

아이돌 그룹은 다 비슷한지 모르겠는데, 뭔가 살짝 모자란 구석이 하나씩 있는 것 같지만 굉장히 열심히 하고 개성이 있는 캐릭터들로 구성이 됐다.

노래 잘 하고 작곡할 줄 아는 애 하나(조금 방심하면 근육량<체지방),
조그맣고 잘 웃는 귀여운 애 하나(나이 조금만 들어도 안 먹힐 얼굴이지만 너무 착함)
춤 잘 추고 몸 좋은 애 하나(고전적으로 잘생길 뻔 했는데 얼굴 길이가 조금 초과)
어딘가 노안이지만 춤을 더 잘 추는 애 하나(뭔가 속이 깊은 것 같아서 매니아층 존재)
좀 원숭이상이지만 나름 귀엽고 웃긴 애 하나(사실 끼는 얘가 제일 많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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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조합이지만, 아니 어쩌면 이런 조합이라서, 그들을 발굴한 매니저는 80년대의 뉴 키즈 온 더 블럭만큼, 또는 그 이상으로 뜰 아이들이라고 자신했다고 한다. 그리고 최소한 영국과 몇 유럽 국가에서는 그게 사실이 되었다. 마치 한국 아이돌처럼 엄격하게 단체생활을 하고 살인적인 스케줄에 다 응했다고 한다. 무명시절에는 그 당시에 가수들이 쉽게 찾지 않던 게이 클럽에서도 공연했다고...

이 중 원숭이상으로 장난 잘 치던 애가 로비 윌리엄스고, 노래와 작곡을 잘 하던 리더는 개리 발로우다. 그룹 이름은 테이크 댓(Take That)이었다. 이들은 1990년대 초반부터 떠서 중반에 해체했다.

사실 리드 싱어인 개리 발로우 빼고는 노래를 딱히 잘하는 멤버는 없었다. 로비 윌리엄스도 성대 자체가 뛰어난 명가수라고 하긴 어려웠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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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비 윌리엄스, 개리 발로우. 90년대 활동 당시

그래서 주로 개리 발로우가 작곡한 곡들로, 거의 그의 목소리로 부른 곡들로 활동하게 된다.

그룹 내에서 로비 윌리엄스가 가장 어렸는데, 어느 시점부터 계속해서 불만을 표출하게 된다. 만취 상태로 발견된다거나, 마약 문제를 일으킨다거나...그러다가 그룹이 해체하기 전에 먼저 떠나버린다. 떠나게 되어 기쁘다는 식의 표현을 엄청 했던 것으로 보이는데, 훗날 그는 쫓겨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며 나머지 멤버들을 비난하게 된다.

그 중에서도 해체 후 솔로 커리어가 가장 성공적일 것으로 점쳐졌던 개리 발로우가 가장 크게 공격을 많이 받았다. 발로우도 가만히 있었던 것은 아니다. 솔로 앨범을 낼 때, 로비 윌리엄스 앨범보다 먼저 나오게 해달라는 조건을 걸었다고 한다.

그 일이 완전히 원수 사이가 될 정도의 일이었는진 모르겠지만, 로비 윌리엄스는 탈퇴 이전부터 개리 발로우에 대한 불만이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자신이 평가절하되고, 솔로 파트를 거의 부르지 못했다며 굉장히 원색적인 비난을 일삼게 된다. 그리고 로비 윌리엄스가 솔로 곡들을 성공시키면서, 그가 싫어하고 비난하는 개리 발로우는 매장되어 버린다.

로비는 항상 끼가 많았고, 그가 개리를 비난하는 방식은 삼류 타블로이드 지들이 열심히 받아적을 정도로 "웃겼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음반을 내게 되어 있던 레이블도 개리 발로우와의 계약을 해지할 정도로, 아예 커리어 자체가 짓밟히게 된다. 영국 TV나 타블로이드 신문을 읽어본 이들은 알겠지만, 미국에 비해 어조가 훨씬 못됐고 농담을 표방해서 쉽게 인격말살을 일삼는 편이다. 그게 2000년대 초반의 일이었다.

그 후 중반까지, 개리 발로우는 집에서 칩거를 하게 된다. 유명 가수들을 위해 작곡을 했지만, 다른 사람의 이름을 붙여서 영업해야 할 정도로, 그와 협업하고 싶어하는 음악인은 단 한 사람도 없었다. 마약에 빠지거나 이혼하거나, 자살했다 해도 충분히 그럴 수 있겠구나 싶은 상황이었다고 여겨진다. 훗날 그가 갖고 나온 새 앨범의 첫 곡 제목은 레퀴엠으로, 정말 죽는 것을 상상 정도는 해봤구나 싶은데 놀랍게도 노래는 밝다.

개리 발로우, 컴백 후 2014년 콘서트에서 Requiem

사실 로비 윌리엄스의 말 몇 마디로 이들이 전부 매장된 이유에는, 90년대 초중반의 영국 및 유럽 팝 시장을 그들이 제패했던 것에 대한 반발심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들이 해체한 후로는 오아시스 등으로 대변되는 브릿팝이 계속 대세였던 반면, 개리 발로우의 음악은 계속 발라드 위주였던 것이다.

사실 개리 발로우에 대해 내가 받은 첫 인상은 '안정적인 남자', '아빠 같은 남자'다. 그는 10대 시절부터 은퇴한 군인들이 모이는 클럽에서 노래를 불렀다고 하는데, 15살에 그곳에서 처음 발표한 노래를 처음 들었을 때, 곡 자체보단 굉장히 덤덤한 가사에 놀랐었던 기억이 있다. '백만 개의 사랑 노래가 지난 후에야 내가 여기 있다...'는 내용이다. 나는 원래 발라드 류의 노래를 참 싫어하는 편인데, 이 가수의 노래는 뭔가 굉장히 진솔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컴백 후의 그룹 콘서트에서, A million love songs

딱히 어떤 계기는 없었던 것 같지만, 어느 날 로비를 제외한 4인조는 자신들의 근황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찍게 된다. 그들의 예전 팬들의 그리움은 남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다큐의 시청률도 엄청나게 높았고, 컴백 콘서트에 대한 투자자가 생겼기 때문이다. 이때부터 개리 발로우는 다시 빛을 보게 된다. 심지어 90년대의 그룹 명성을 넘어서, 기사 작위를 받기까지에 이르렀고, 현재 솔로, 그룹 활동을 다 병행하고 있다.

어쩌면 '아빠 같은 남자' 느낌이 현재 그의 나이에 가장 잘 맞기 때문에, 대중적으로 더 잘 수용되는 이미지가 된 것 같기도 하다. 컴백에 성공한 후로 계속 로비 윌리엄스에게도 전혀 뒤끝 없이 대하며, 같이 작곡한 곡은 각자 솔로 콘서트에서 부르기도 한다.

개리 발로우, 2014년 콘서트에서 Candy

어쨌든, 옛날 음악만 듣는 나도 90년대 음악이라 그렇지 아이돌 노래 듣기는 한다.

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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