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유명한 작가의 북리뷰를 쓴다는건 있을수도 없는 일이다 하면서도 "채식주의자"가 아니니까 괜찮다고 위안해 봅니다. 제가 원래 수술장면을 보면서도 워킹데드를 보면서도 밥도 술도 잘 먹는데요. 80년 5월 광주의 동호 이야기인 "소년이 온다"를 읽는 동안은 밥과 술을 먹지 못했습니다. 가슴이 너무나 먹먹했거든요.
저는 감정 이입이 아주 빠르고 깊게 되는 편이라 책이나 영화를 끝내고 감정들로부터 빠져나오는데 시간이 좀 걸리는데 이 책은 좀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더군요. 왜냐하면…
나는 소년의 눈동자를 보았기 때문이죠. 정면으로 바라볼 수 없는 비겁한 나를 발견했기 때문이죠.
아니, 정대와 너는처음부터 손을 맞잡고 선두로 선두의 열기쪽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귀를 찢는 총소리에 모두 뒤돌아뛰기 시작했다. 공포다! 괜찮다! 누군가 외치는 소리에 한무리의 사람들이 앞 대열로 돌아가려는 아수라장 속에서 정대의 손을 놓쳤다. 다시 총소리가 귀를 찢었을때, 모로 넘어진 정대를 뒤로 하고 너는 달렸다. 셔터가 내려진 전자제품점 옆 담벼락에 아저씨 셋과 함께 붙어섰다. 그들의 일행인 듯한 남자가 합류하려고 달려오다 어깨에서 피를 뿜으며 엎어졌다.
소년은 친구의 시신을 찾으러 상무관에 들렀다가 그곳의 시신을 정리하는 일을 돕게 됩니다. 도시의 모든 관들이 동이 나고 상무관의 자리가 비좁아졌는데도 시신은 계속 차고 넘치는 상황입니다. 간단한 염과 입관을 마친 시신들을 장부에 날짜와 시간을 적고 죽은 사람들의 인상 착의를 기록하며 시취가 온몸에 배도록 땀을 흘리며 시신을 확인하고자 하는 유족들을 만납니다.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누나를 찾으러 나간 친구 정대가 옆구리에 총을 맞는 걸 보아서입니다. 개죽음을 피하기 위해 친구를 뒤로 하고 달아났기 때문입니다.
너를 문득 떠올린건 그 낯설고 생생한 밤이 끝나갈 무렵, 먹색 하늘에 마침내 파르스름한 새벽빛이 배어들기 시작하던 무렵이었아. 그렇지. 네가 나와 함께 있었는데. 차가운 몽둥이 같은게 갑자기 내 옆구리를 내려치기 전까지. 내가 헝겊 인형처럼 고꾸라지기 전까지. 아스팔트가 산산히 부서질 것 같던 발소리들. 고막을 찢는 총소리들 속에서 내가 팔을 뻗어올릴 때까지 옆구리에서 솟구친 피가 따뜻하게 어깨로, 목덜미로 번지는 걸 느낄때까지. 그때까지 네가 함께 있었는데.(중략) 넌 여기 없을 뿐 아니라 아직 살아 있었어. 그러니까 혼이라는 건 가까이 있는 혼들이 누구인지는 알지 못하면서 누군가가 죽었는지 죽지 않았는지만은 온힘으로 생각하면 알 수 있는거였어.
죽어 영혼이 된 정대는 아무렇게나 쌓아 놓은 시체들 사이에서 자신에게 총을 쏘고 시신을 태우는 군인들의 겁먹은 눈동자를 보고 너를 찾아가자 생각합니다. 그러나 폭약 소리, 비명 소리, 총신들의 불꽃과 함께 네가 죽는 순간을 느낍니다. 소년은 그렇게 생을 마감합니다.
당신이 죽은 뒤 장례식을 치르지 못해, 내 삶이 장례식이 되었습니다. 당신이 죽은 뒤 장례식을 치르지 못해,당신을 보았던 내 눈이 사원이 되었습니다. 당신의 목소리를 들었던 내 귀가 사원이 되었습니다. 당신의 숨을 들이마신 허파가 사원이 되었습니다.
그날을 함께 했던 사람들은 아물지 않는 흉터를 가지고 살고 있습니다. 살아남았다는 이유로 인간이라는 사실과 매일을 싸우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익숙한 치욕 속에서 죽은 사람들을 생각하며 내가 되고 네가 되고 당신이 되고 그가 되고 그녀가 되어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 살아가야 하는 과제를 안고 힘겹게 그날을 기억하며 말입니다. 겁에 질린 얼굴로 마지막 소년의 눈동자를 기억하면서...
너는 도청 안마당에 모로 누워 있었어. 총격의 반동으로 팔다리가 엇갈려 길게 뻗어가 있었어. 얼굴과 가슴은 하늘을, 두 다리는 벌어진 채 땅을 향하고 있었어. 옆구리가 뒤틀린 그 자세가 마지막 순간의 고통을 증거하고 있었어. 숨을 쉴수 없었어. 어떤 소리도 낼 수 없었어. 그러니까 그 여름에 넌 죽어 있었어. 내 몸이 끝없이 피를 쏟아 낼때 네 몸은 땅속에서 맹렬하게 썩어가고 있었어. 그 순간 네가 날 살렸어. 삽시간에 내 피를 끓게 해 펄펄 되살게 했어. 심장이 터질것 같은 고통의 힘, 분노의힘으로.
마음 같아서는이 책 한 권을 몽땅 인용해도 모자랄 것 같습니다. 한강이 써내려간 것은 언어가 아니라 기억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기억 해야 할것은 1980년 광주 뿐 아니라 4.26 세월호도 있습니다. 잊지 않고 살아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