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 어느 날] 5. 첫번째 전화 인터뷰는 지나가고

1. 허파에 바람든 날
2. 김칫국 들이키던 나날들
3. 헤드헌터에게 그리 적합치 않았던 상품
4. 이상적이진 않지만 이거라도 한 번 에서 이어집니다.

전편 줄거리
어느날 우연히 헤드헌터에게서 연락을 받아 뉴욕 금융계라는 신세계에 눈을 뜨고 행복한 상상에 즐거워하지만, 시간이 지난 채 아무 소식이 없자 불안감이 커진다. 그래서 그 헤드헌터에게 연락을 취했더니, 기대치 않았던 채용 공고를 하나 받게 되었고, 고민하다 응하기로 한다...


전화 인터뷰의 시간이 왔다.

긴장되는 순간이다. 인터뷰 자체도 떨리지만 전화로 영어를 듣고 대답해야 하는 것에 대한 스트레스도 컸다. 미국에서 10년 정도 살았다고는 하지만, 영어보다 더 빠른 속도로 는 것은 눈치였다. 눈치는 상대방의 표정이나 제스처같은 시각 정보에 많이 의존하는데, 전화 통화에서는 이러한 눈치라는 잡기가 배제된다. 물론 상대방이 나를 볼 수 없다는 것이 하나의 장점이기도 하다. 내가 당황하더라도 목소리에 당황이 묻어나지 않으면 들킬 우려가 없다. 묻어나지 않는다면.

2년여의 시간동안 짧든 길든 전화 인터뷰를 대여섯 차례 정도 경험해봤다. 전화 인터뷰는 보통 1차로 인사 담당자가 간단히 자기 회사를 소개하고, 나의 기본 정보를 확인한다. 학력과 전공, 그리고 외국인의 경우 체류 신분이 어떤지 등을 묻는다. (원하는 연봉을 물어보기도 한다) 그리고 채용 공고에 나온 기본적인 사항을 알려주고, 그에 대응하는 내 기술을 확인한다. 더 전문적인 내용은 보통 2차 인터뷰에서 행해진다. 2차 인터뷰는 인사 담당자가 아니라 채용 공고에 적힌 그 일을 직접 하는 사람이 인터뷰를 진행하며, 일에 대한 전문적인 내용들이 논해진다. 물론 다양한 변이가 존재하는데, 예를 들면 1차 인터뷰를 서류만 보고 생략한 경우도 있었고, 1차 인터뷰만 하고 2차로 넘어가지 못한 적도 여러 번이었다.

이렇게 경험이 조금 쌓인 지금의 나라면 당시 나의 첫 전화 인터뷰를 더 잘 할 수 있었을까.


(편의상 이번에 전화걸어온 사람을 Tom이라고 하자)
일단 Tom은 인사 담당자라기 보다는 직접 일 하는 사람에 가까웠다. 나의 기본적인 정보들은 헤드헌터가 이미 검토했을 테니 바로 2차로 넘어간 것 같았다. 내가 보낸 이력서를 손에 들고 있는 것 처럼 느껴졌고, 이력서에 적힌 여러 내용들에 대한 질문이 이어졌다. 박사 논문은 어떤 것이었는지, 지금 하는 일은 어떤 것인지, Python은 언제부터 쓰기 시작했는지, 지금 일에 Python이 어떻게 이용되는지, 내 일에서 통계 처리는 어떻게 하고 있는지, 자료 분석 관련하여 내가 잘 하는 건 뭔지... 나는 내가 준비한 평범한 답변들보다 더 구체적으로 날아드는 질문들에 조금 당황했지만, 그저 묵묵히 눈 앞의 바위를 오르는 등산가처럼 내 앞에 주어진 질문에 집중하며 하나하나 헤쳐나가고 있었다. 그러다가 OpenMP라는 항목에서 진짜 자세한 내용이 약 10여분간 얘기되었다. OpenMP는 컴퓨터 프로그램을 병렬화 (Parallelizing) 시키는 기법인데, 이거에 대해 여러가지를 묻고 확인하고나서 한다는 얘기가 본인이 대학원때 이 OpenMP를 이용해서 프로젝트를 진행했었다고 했다. (이런... 자기가 아는게 나와서 신난건가?)

이렇게 한 3-40분 정도는 얘기를 한 것 같았다. 어느 정도 정리된 후에 Tom이 하는 말이, 나는 (채용 공고에 나온) Data Engineer보다는 Quantitative Researcher가 더 어울릴 것 같다고 했다. (물론 나도 그렇게 생각하긴 한다마는...) 그러면서 QR 자리는 시카고에 몇 자리가 비어있다고 언급했다. (오.. 자네 진심인가? ^^)

그렇게 전화 통화를 끝내고, 나는 다시 기다리는 일상으로 돌아왔다.
...
그리곤 더이상 연락이 없었다.


이 때의 인터뷰를 돌아보면 몇 가지 아쉬움이 남는다. 예를 들면, 마지막에 Tom이 시카고를 언급했을 때, 내가 좀 더 적극적으로 좋다고, 갈 수 있다고 했어야 했나 하는 것이다. 난 당시 뉴욕도 멀다고 생각하는 상황이어서 뉴욕보다 세네배는 더 먼 시카고 얘기가 나왔을 때 당황해서 어떻게 해야할 지 제대로 처신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것보다 더 큰 것은 Tom이 내게 QR이 더 어울릴 것 같다고 말했을 때, 나의 반응이다. 나는 당시 그냥 동의하는 간단한 대답만 했을 뿐, 더 구체적인 어떤 액션을 취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내가 정말 간절하다면, 이런식으로 답했어야 하지 않았을까?

그렇게 봐줘서 고마워. 그런데 그건 내가 Data Engineer에 적합하지 않다는 뜻이니? 아니라면 2가지 다 고려해줬으면 좋겠어. 나로서는 어떤 것이든 취업한다는 것 자체가 중요하니까.

물론 내가 이렇게 말했다고 해서 Data Engineer가 됐으리란 보장도 없고, 또한 노스캐롤라이나의 랄리라는 도시로 가서 행복했으리란 보장도 없다. 다만 조금 더 적극적으로 해보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가 남아있다. 어쨌든 이미 지난 일이고, 내가 "가지 않은 길"이다.

그래서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좀 더 정보를 모으고 (금융가 입성을 위해) 내가 취할 최선의 전략을 세워보기로 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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