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집 6화: 치즈케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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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만 여기서 기다리세요."

시종 아이가 문을 닫고 나갔다. 브래드쇼 씨의 핏발 선 눈은 주변을 훑었다. 둥근 탁자와 의자 네 개, 빳빳하게 풀을 먹인 간이 커튼.

간이 커튼 너머에는 부엌이 있을 터였다. 일손의 흔적은 없었지만, 장작이 꽉 찬 구석의 난로에서 누군가가 방금 다녀갔음을 느낄 수 있었다. 어쩌면 브래드쇼 씨와 마주치지 말라는 분부를 받았을 수도.

순간 브래드쇼 씨의 얼굴이 수염 위로 붉어졌다. 부엌 옆에 딸린 간이식당으로 안내 받은 것도 모자라, 하염없이 기다리게 만들다니. 그는 조용히 욕설을 내뱉었다.

그를 초대한 안토니 파크허스트는 그의 사촌이었다. 도시의 호화 아파트에 살다가, 시골에 내려와 이 큰 집을 사들인지 두 달이 지난 상태였다. 두 달이 흐를 동안에도 그는 바로 인근에 사는 브래드쇼 씨를 아는 체 하지 않았다. 내심 기다리던 브래드쇼 씨는 결국 먼저 파크허스트에게 서신을 보냈고, 정원에서 도울 일이 있을지 모르겠다는 답신을 받았다.

그래서였다- 햇살이 유독 강한 그 날 오후, 브래드 쇼 씨가 사촌 소유의 저택의 간이 식당에 서 있게 된 것은.

시종 아이가 닫고 나간 문과 반대편의, 정원으로 바로 이어진 것으로 보이는 뒷문을 누군가가 열었다. 요리사로 보이는 야무진 인상의 중년 여자가 부산을 떨며 들어왔다.

"아, 오셨군요. 저는 버사예요. 미스터...미스터...."

"브래드쇼요."

무뚝뚝하게 답하며, 브래드쇼 씨는 손에 든 모자를 식탁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요리사의 표정이 잠시 모자에 머무르는 것을 느꼈다. 식탁에 놓기엔 너무 더럽다는 건가, 그는 아랫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잠시만 기다리세요. 차를 내드릴게요."

그 말이 무색하게, 요리사 여자는 들어온 뒷문으로 도로 나갔다. 차를 곧 내오겠다는 뜻이 아니라, 기다리고 있으면 주겠다는 이야기였군. 브래드쇼 씨는 털썩 의자에 주저앉았다.

파크허스트는 그의 어머니쪽 사촌이었다. 그의 조부모는 총 열 두 명의 자녀를 낳았고, 그 중에서 딸 한 명만이 도시로 갔다. 가게 점원이나 바느질을 하는 대신에 가정교사로 일했다고 했으니, 시골 학교에서는 보기 드문 우등생이었을 것이었다. 부잣집 가정교사가 되어 프랑스로, 이탈리아로, 어디든 따라다녔다고 했다. 그리고 3년 만에, 그녀는 그 집의 마나님이 되었다. 가르치던 아이들의 어머니가 갑자기 병으로 세상을 떠났고, 그 아버지는 원래부터 가정교사에게 호감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안토니 파크허스트가 태어났다.

만일 파크허스트가 브래드 쇼 씨의 사촌이 아니었다면, 그러한 이야기들은 그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었을 것이다. 만일 파크허스트가 그저 시골로 내려온 여러 부자들 중 한 명이었다면...

그 이야기의 결과로, 브래드쇼 씨는 부엌에 딸린 간이식당에서 차를 얻어마시는 입장이 된 것이었다.

허기가 느껴졌다. 브래드쇼 씨는 벌떡 일어나서 부엌으로 가는 커튼을 열어 젖혔다. 요리사가 보면 기겁하겠지. 아무래도 상관 없었다. 파크허스트가 일손들에게 그를 사촌으로 소개하진 않았겠지만, 적어도 요리사에게 가끔은 큰소리 칠 수 있을 것 같았으니까.

가지런히 정돈된 양념통들, 밀대와 유리병들과 엎어진 찻잔들. 그리고...한 새빨간 작은 상자가 있었다. 그것을 본 순간, 브래드쇼 씨가 그것을 발견하기까지 찬장 문을 세 개나 열어보고, 구둣발로 매트에 자국을 만들었다는 사실은 까맣게 잊혀졌다. 그것은 그의 발목에 닿을 정도의 낮은 선반에 놓여 있었는데, 브래드쇼 씨가 육안으로 본 것 중 가장 눈에 띄는 물건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생활에 꼭 필요한 물건 외에는 본 적이 거의 없었으니까.

그가 정신을 차렸을 때쯤에는, 상자 속에 있었던 동그랗고 부드러운 케익과도 같은 것을 반쯤은 먹어치운 상태였다. 어쩌면 요리사에게 애인이 있어 이 케익을 선물한 것일지도 모를 일이었다. 빨갛고 예쁜 상자에 넣어서. 거기에 생각이 미치자, 브래드쇼 씨는 마음을 굳게 먹었다. 어차피 일손이 한두 명도 아닐 테니, 모르는 일이라고 잡아떼기로.

만일 파크허스트가 그를 공개적으로 사촌으로 인정했다면 자신이 이깟 일로 그런 계획을 세울 필요도 없었을 테니, 브래드쇼 씨의 마음은 편안했다. 그는 남은 케익을 다 먹고, 상자 뚜껑을 도로 닫아서 그것을 발견했던 찬장 구석으로 다시 밀어넣었다.

요리사가 돌아왔을 때, 브래드쇼 씨는 간이식당의 의자에 앉아 졸고 있었다. 평생 처음 맛보는 달콤하면서도 짭짤한 맛이 그의 혀에서 계속 감돌았고, 유독 햇살이 강한 날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의 휴식은 곧 날카로운 비명에 의해 깨어졌다.

얼굴이 상기된 요리사, 버타, 아니 버사라고 했던가? 요리사가 씩씩대며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브래드쇼 씨는 눈을 껌뻑였다.

"혹시, 혹시 부엌에 들어가셨나요?"

막 잠들었다 깨어난 상태에서 그것은 부정하기 어렵지 않았다. 고개를 양쪽으로 흔드는 그에게, 요리사는 질문을 되풀이했다. 아니, 방금 아니라고 했잖아. 브래드쇼 씨는 화가 났다. 어차피 그렇게까지 배가 고픈 것도 아니었고, 얼마나 기다려야 할지 몰랐을 뿐인데. 요리사가 빨리 돌아왔다면 벌어지지 않았을 일이었다. 그가 저택의 주인 친척으로서 마땅히 받아야 할 대우를 받았더라면, 결코 없었을 일이었다. 그는 잘못이 없었다.

"아니요, 여기서 자고 있었는데 뭘."

순간 요리사의 눈빛이 바뀌었다. 그녀는 손가락으로 자신의 입가를 가리켰다.

"입에...입에 묻었는데요, 그것이..."

심지어 그녀의 손가락은 떨리고 있었다. 꽤나 비싸보이긴 했지만, 케익 하나 먹어치운 것이 그렇게나 분노할 일인가. 아니, 그녀의 분노에는 관심 없었다. 게다가 생각해보니, 그것을 분명히 집에서 구운 것이었다. 어쨌든, 이건 그를 무시하는 처사였다. 대뜸 언성을 높이면서, 분명히 그가 아니라고 답한 질문을 되풀이하다니.

"거...뭐가 묻었다는 거요?" 소리를 제법 버럭 내었다. 짐짓 화난 목소리에는 억울함까지 실렸다. 부잣집 하인들은 주인 흉내를 내는 법이다. 기다리지 못하고 음식을 훔쳐 먹었다는 걸 빌미로 그들이 그를 경멸하는 꼴을 두고 볼 수는 없었다.

"그...치즈케익, 치즈케익 안 보셨나요?"

역시 소리를 크게 낸 덕분인지, 요리사의 질문에선 힘이 빠져 있었다.

"아니, 무슨 소리요? 여기에서 계속 잤다니까! 빨리 차나 줘요." 브래드쇼 씨는 다리를 뻗으며 팔짱을 꼈다.

요리사는 바로 부엌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아무래도 선물로 받은 케익이었던 모양이었다.

"저...그걸 드셨다면, 빨리 얘기하셔야 해요." 이상하게도 부드러운 목소리였다. 그가 케익을 훔쳐먹은 것을 너무 단정했으니, 미안할 만도 했다. 브래드쇼 씨는 괜한 쾌감에 또 소리를 쳤다.

"아니라니까!"

그제서야 요리사는 차를 내왔다. 더 이상 손을 떨거나, 그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브래드쇼 씨는 옷소매로 입가를 깨끗이 닦은 상태로, 그녀가 내오는 차를 마셨다. 입가에 치즈케익이, 아니 노란 빵 조각이 묻어 있었다 해도, 꼭 그것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는 것이다. 아니라고 하면 아닌 줄 알아야지. 이
집에서 적어도 일손들보다는 우위에 있기 위해, 브래드쇼 씨는 초장부터 길을 들여놓을 심산이었다. 그리고 배가 그리 고프지 않다는 사실을 감추기 위해, 요리사가 내준 샌드위치를 억지로 두 개나 먹었다.

배가 빵빵하게 차오를 때쯤, 브래드쇼 씨는 결정 내렸다. 안면도 텄으니 이제 내가 파크허스트의 사촌이라는 정보를 흘려두어도 좋겠지, 한 명이 알면 다 알게 되어 있으니.

"여기 다른 일손들은 어디 갔소?" 그는 물었다. 배가 부른 탓인지, 숨이 약간 차는 것 같았다.

"톰은 읍내에..." 요리사의 말이 순간 멈췄다. 그를 이상한 표정으로 보는 것 같았다. 그녀의 목소리가 거의 속삭임으로 바뀌었다. "당신 정말로..."

한번 더 크게 부인하려는 순간, 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식은 땀이 흘렀다. 송글송글 맺히는 것을 넘어, 그의 얼굴 위로 흘러내렸다. 이어지는 속의 역한 느낌에, 그저 입술만 달싹거리는 브래드쇼 씨였다. 망할 여자 같으니. 대체 케익에 뭘 넣은 거야.

목소리는 이제 먼 곳에서 들려왔다.

"벽 속에서 쥐 소리가 들려서 케익에 비소를 넣어뒀더랬죠. 누가 건드릴까봐 우선 상자에 넣어뒀고요. 당신 설마..."

대답 대신 브래드쇼 씨의 광대가 경련했다. 쓰러지는 순간에도 그는 주먹을 꼭 쥐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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