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사일기 #18. 번호 일기를 쓰려 했건만..

  1. 번호 일기를 시작했건만 쓰다 보니 계속 고양이 얘기만 나와서 일단 집사 일기로 마무리.

  2. 자야 하는데 둘째 고양이가 깨운다. 정원에 나가고 싶대서 문을 열어줬는데 캣그라스가 없다고 난리다. 남편이 귀리를 많이 심었건만 날이 너무 더워 익어버리는지 싹이 잘 나지 않는다.

  3. 첫째 고양이는 2살 추정 때, 둘째 고양이는 1.5 달 추정 때 우리 집으로 왔다. 새끼 고양이의 애교에 흠뻑 취하는 동안 첫째가 의기소침해졌었다. 나와 남편의 눈은 둘째를 바라보고, 첫째는 그런 우리를 뒤에서 지켜보는 걸 알게 된 이후로 남편은 둘째, 나는 첫째를 맡기로 했다. 지금도 둘째는 남편에게만 무릎냥을 허락하고, 첫째는 나한테 기대서 잔다. 사실 그래서 한밤중에 둘째가 깨워도 웬만하면 일어나지 않았는데, 요새 둘째를 보는 눈이 달라지고 있다.

  4. 여름이라 고양이 밥에 개미가 몰려 결국 개미집이 있는 화장실에 약을 뒀다. 혹시나 애들이 먹을까 봐 항상 화장실 문을 닫고 다녔고 일하시는 분께도 몇 번이나 말씀드렸는데 며칠 전 잠시 한눈을 판 사이 아주머니는 문을 열어두셨고, 내가 발견한 것은 바닥에 떨어져서 열린 채로 텅 비어버린 개미 약이었다. 발견한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다. 남편에게 전화하고, 동물 병원에 전화한 후 남편이 오길 기다리는 시간이 그렇게 길 수가 없었다. 게다가 하필 에어컨 고장으로 차량 수리를 맡긴 후였는데, 다행히 동료분이 동물 병원에 데려다 주셨다. 개미 약을 먹은 건 아마도 식탐이 강한 둘째일 것 같았지만, 혹시 모르는 마음에 첫째도 데리고 갔고, 의사 선생님도 만성 신부전증을 앓는 첫째를 먼저 확인하셨다. 독성 제거를 위해 둘 다 차콜을 먹이고 5시간 정도 입원시켰는데 요새 들어 정말 그날 만큼 제정신이 아니었던 날이 없었던 것 같다. 다행히 둘 다 큰 문제는 없었고, 개미 약에 사용되는 성분이 피부에 닿아도 발작 등을 일으키는 성분이라 깨끗하게 목욕을 하고 돌아왔다. 우리가 얼마나 마음을 졸였는지는 모른 채 집에 와서 널브러져 있다가 우리 주위를 냥냥거리며 맴도는 둘째를 보니 귀엽기도 했고 애잔했다. 그런데 첫째는 무슨 죄람!!!

  5. 요새 첫째에게 강제 급여와 피하 수액을 했더니 우리가 나타나면 계속 어디론가 숨는다. 주로 가는 곳은 커튼 뒤, 침대 아래인데, 첫째를 찾는 쉬운 방법은 둘째가 어디 있나 보는 것이다. 아무래도 두 배는 큰 둘째가 더 눈에 띄어서 어쩔 수 없다. 요즘 둘째는 누나를 졸졸 따라다니는 것뿐 아니라, 누나가 화장실을 이용하고 나면 모래를 묻어 주기도 하고, 그런데 제발 볼일 보는 와중에 묻지는 말았으면, 누나가 소리 지르면 무슨 일인지 얼른 달려가고 하는 것을 보며, 이제는 마냥 철없는 바보는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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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맛있는 음식, 멋진 휴양지. 이런 것들도 행복의 기준이 될 수 있지만, 지금 우리는 그냥 우리 가족 모두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 강제 급여와 피하 수액이 첫째에게 스트레스가 되기도 하고, 우리도 체력적으로 지쳐가지만, 그래도 함께할 수 있는 이 시간이 행복하다. 그리고 우리가 심각해질 때마다, 뭔가 엉뚱한 일을 벌여 우리를 웃게 하는 재롱둥이 둘째가 정말 고맙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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