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의 빛] by 미야모토 테루
지은이 미야모토 테루는, 비를 피하기 위해 들른 서점에서, 한 유명한 작가의 단편소설을 읽고 너무 재미있어서, 이걸로 먹고 살 수 있다면 참 재미있겠다 싶어서, 다니던 회사를 때려치우고 작가가 되었다고 한다.
(나도 그렇게는 생각하는데ㅜ)
환상의 빛은 원래 수년 전에 절판 되었다가, 최근 한 팟캐스트 방송에서 추천되면서, 발빠른 '바다출판사' 에서 1쇄에 이어 2쇄까지 발행하는, 출판업계에 기현상을 일으키기도 했다. 부랴부랴 원작을 구하고 법적인 절차를 밟고 출판하기까지 얼마나 분주했을지 상상이 가지만, 그러했기 때문에 재차 확인했어야 할 오타문제가 군데군데 그대로 드러나서 아쉽다.
아쉽다 함은, 내가 이 책이 굉장히좋았기 때문이다.
책 띠지에 "시간의 소금기가 묻어있는 아름답고 쓸쓸한 문장들"이라는 선전용 문구를 보면, 이 책에 수록된 네 편의 중단편, "환상의 빛", "밤, 벚꽃", "박쥐", "침대차" 에 대한 아주 간략하고 깔끔한 정의를 내린 듯 보인다.
"환상의 빛"은 책의 거의 반에 달하는 중편에 가까운, 1인칭 화자 '저'의 담담한 서간체 형식으로 된 소설이다. 젖먹이 아이와 젊은 아내를 두고 홀연히 자살해버린 남편에게 이야기 하듯 글을 쓰듯 담담하게 자신의 삶을 기록하고, 또 지나간 일들을 회상하면서, 끝없이 따라다닐것 같던 남편에 대한 잔상이 그녀의 시간과 삶속에서 자연스레 녹아들어가서 사라져가는 것을, 담담하게 관조한다.
"밤, 벚꽃"-이십여년 전 남편과 헤어지고 아들과 단둘이 살다가 최근에 아들을 사고로 잃은 중년 여인이, 혼자 살고 있는 저택에 우연히, 가난한 젊은 부부의 결혼 첫날밤을 위해 2층 방을 빌려주면서 일어나는 하룻밤의 이야기이다.
"박쥐"- 우연찮게 전철역에서 마주친 고교 동창으로부터 듣게된 '란도'의 죽음을 통해, 어린 시절 그와 있었던 짧은 기억과 만난다.
"침대차" - 회사일 때문에 밤기차를 타고 여행하는 중에, 잠들지 않는 고요함 속에서, 혹은 기차의 진동과 혼잡한 듯 들리는 소음 속에서, 지나온 기억을 더듬는다.
작가의 의도였는지, 아니면 쓰다보니 그렇게 되었는지, 네 작품 모두에는, 죽음에 의한 상실이 존재한다. 그것이 가까운 이의 것이었든, 그렇지 않았건 간에, 각각의 주인공에게 각자의 방식으로 각인된 '기억'이라는 것이, 그들의 삶 속에서 어떤 식으로 회상 되는지, 그리고 그 기억과는 무관하게 또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가, 고요하면서 쓸쓸하게 다가온다. 그러해서 행복하다도 없고, 그렇기 때문에 불행했다도 없는 이 담백한 글들은, 우리들에게 속삭이듯 묻는다.
사람과 관계한 우리들의 기억이란...
죽음으로써 그들이 남긴 것들이란...
그리고, 그들을 회상하고 기억하는 우리들이란...
(이런 책들은 진심 원서로 읽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