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글 쓰고 네가 그림 그리고] 05. 스치는 바람 냄새 만으로도 : @dianamun @yslee

내가 글 쓰고 네가 그림 그리고

05. 스치는 바람 냄새 만으로도

글 : @dianamun
그림 : @yslee

기억이란 스치는 바람 냄새 만으로도 그 어느 날의 나를 떠올리게 만든다. 그와 헤어지고 나서, 나는 추억을 만드는 게 무서웠다. 그와 갔던 많은 곳들이 나를 괴롭혔고, 그와 나눴던 대화마저 홀연히 내 앞에 나타나 나의 마음에 허락 없이 들어왔다. 그러면 나는 결국 발걸음을 멈춘 채로, 그를 떠올릴 수밖에 없다.

문득문득 길을 가다가도 나를 멈춰 세우는 건, 신나서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아이도, 신호를 무시하고 달리는 차도 아니다. 그때의 이 곳을 지나쳤던 그와 나를 기억하는 모든 것들이 나를 멈춰 세운다. 그가 나를 기다렸던 버스 정류장을 지나갈 때도, 그에게 장난을 치려고 숨어있었던 담벼락에도 그가 있고, 그때의 내가 있다.

부모님 댁에 내려가기 위해 나는 신길역으로 향했다. 지하철이 들어오기를 기다리며 플랫폼에 서 있던 나는, 그 어느 날 신길역에 있었던 그와 나를 마주했다. 그 날도 바람이 불었다. 날이 너무 추웠고, 나는 그의 무릎 위에 앉아 다음 전철을 기다렸다. 우리는 웃었고, 얼른 따듯한 곳으로 들어가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우리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고, 우리는 짧게 입을 맞췄다. 곧 있을 길고 긴 키스를 기다리며 우리는 전철이 들어오기를 기다렸다.

우리는 같이 여름을 보낸 적이 없었다. 가을에 사귀었고, 그다음 해 나는 유학을 떠났다. 유학을 끝내고 돌아왔을 때, 그와 나는 여름이 오기 전에 헤어졌다. 여름이 끝날 무렵 우리는 다시 만났다. 그리고 다음 여름이 오기 전에 우리는 또 헤어졌다. 우리는 서로의 여름에 대해서 알지 못했다. 하지만, 찬 바람이 불어오는 가을이 찾아올 때마다, 나는 나에게 찾아왔던 그를 떠올린다.

신길역을 벗어나자, 기억은 그곳에 묶인 채로 나를 따라오지 않았다.

사람도 동물들처럼 영역표시를 하는 게 아닐까. 기억의 영역표시를 하며 세상 곳곳에 사랑하던 사람과의 좋았던 기억도, 나빴던 기억도 남김없이 남겨두는 게 아닐까. 아는 지인은 남자친구를 집으로 초대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유는, 예전에 만났던 남자친구와 헤어지고 나서 너무 많이 힘들었다는 것이다. 그는 떠났지만 그가 잠시라도 있었던 집에서 그녀는 계속 살아야 하니까 말이다. 나는 그 말에 공감했다. 그는 가지만, 공간은 남아서 그 날을 떠올리게 만든다.

기억이란 스치는 바람 냄새만으로도 그 어느 날의 그와 함께 있던 나를 떠올리게 만든다.
하물며 나는 그 어느 날의 그곳에 와있다.
언제쯤이면 다 잊을 수 있을까.
그게 가능하기는 할까.


@yslee 작가의 시선

스치는 바람 냄새 만으로도.jpg

낙엽과 함께 불러오는 가을 색깔 기억, 겨울이 눈과 함께 떨어트리는 얼룩덜룩 추억의 부스러기들. 차갑지만 따뜻했던 그 날의 기억들을 그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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