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기사를 통해 이스라엘의 작가 에트가르 케레트가 단편의 귀재이자 '천재'라는 찬사를 듣는다는것을 알고 얼른 그의 책을 주문했다. 얼마나 기대하고 책을 받았던지 받자마자 책을 단숨에 읽어 버리려고 했는데 실패하고 말았다.
만만치 않다. 이 자그만한 책에 무려 36편의 단편이 실려있는데 한편이 고작 두세 페이지 또는 다섯 페이지 정도임에도 이 짧은 단편마다 다른 세계가 다른 관점으로 펼쳐진다. 매편마다 그의 독특한 상상력에 혀를 내두를 지경이다. 가벼운 듯하며 묵직하게 다가오는 그의 현실은 부정할수 없는 통렬한 비극적 현실이며 그 비극을 넘어 농담같은 초현실이 존재한다. 카프카에 비견한다고 했던가. 그의 등장 인물들은 각자 고뇌하고 분분하지만 아주 우스꽝스러운 상황에 빠진다. 이러한 현실이 자꾸 초현실적 상상을 이끌어오는지도 모르겠다. 기묘한 상상의 이야기는 그들의 내면 깊숙이 존재하는 비극과 두려움을 냉소적으로 비웃는다. 그래서 유머스럽고 아이러니하게도 슬프다.
키스할 때마다 입술을 다치곤 하는 여자친구가 발견한 남자친구 혀 아래에 있는 작은 지퍼 이야기, 어린 시절부터 꾸며댄 거짓말이 거짓말 나라에서 현실이 되어 살아가는 이야기, 죽은 아내의 환생인 푸들과 낯선 프랑스 기차안에서 만난 홀애비 이야기, 햄버거 프랜차이저 가게에서 치즈를 빼달라며 죽어간 사람이 던지는 나비 효과, 세가지 소원을 들어주는 금붕어가 있다면 소원을 무엇으로 할것이냐는 다큐멘터리를 촬영하다 소원을 들어주는 금붕어를 실제로 만난 이야기, 한편이 끝나고 다른 편이 시작할때 마다 나는 조금씩 속도를 늦춰야 했다.
제목과 같은 "갑자기 누군가 문을 두드린다"의 줄거리를 소개하는 편이 이해가 빠르겠다.
작가인 나는 자기 집에 앉아 총을 겨누며 이야기를 해달라고 조르는 스웨덴 남자와 마주 앉아 있다. "두 사람이 한방에 앉아 있는데 갑자기 누군가 문을 두드린다"라는 이야기의 시작과 함께 누군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 설문조사를 하는 남자가 찾아와 리볼버를 내밀며 얼른 이야기를 내 놓으라고 재촉한다. 그런데 또 갑자기 누군가 문을 두드린다. 이번엔 시키지도 않은 피자 배달원이 피자 상자 밑에서 식칼을 꺼내며 이야기를 내놓지 않으면 잘게 포를 뜨겠다고 협박한다. 그래서 작가는 고개를 끄덕이고 이야기를 시작한다. (허, 이것은 매일밤 내가 겪는 이야기다! 오늘 포스팅을 하지 않으면 포를 뜨겠다고 ㅜㅜ)
한 남자가 혼자 방안에 앉아 있다. 그는 외롭다. 작가인 그는 이야기가 쓰고 싶다. 오래 전 이야기를 쓸때가 그립다. 유에서 유를 창조해내는 그 느낌이 그립다. 유에서 유 - 바로 그것이.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것. 그러니까 난데없이 무엇인가를 만들어내는 것은 가치가 없다. 그런건 아무나 할수 있다. 하지만 유에서 유는 내면에 실제로 존재해온 것을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완전히 새로운 것인 양 발견해 내는 것이다....(중략) 그때 갑자기... "내가 이미 경고했을텐데" 스웨덴 남자가 끼어든다. "누군가 문을두드린다.는 안된다니까" "해야만 해요." 나는 고집을 부린다. "그냥 하게 놔두죠." 피자 배달부가 부드럽게 말한다. "좀 봐주자고요. 당신. 누군가 문을 두드리길 원해요? 좋아요. 문두드리게 해요. 그래야 이야기를 해 줄수 있다면."
다음은 소설가 김영하가 소개하는 작가의 소개다.
- "에트가르 케레트는 이스라엘의 험난한 현대사가 부여한 무게로부터 탈주한다는 점에서, 이전 세대 문학의 엄숙성과 거리를 둔다는 점에서, 기묘하고 불편한 상상을 분방하게 펼친다는 점에서, 그럼에도 마냥 밝고 명랑해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놀랍다. 툭하면 주택가로 로켓이 날아들고 공습경보가 울리는 이스라엘 같은 나라에서 이토록 자유로운 상상력과 독특한 유머 감각으로 무장한 작가가 존재한다는 것이야말로 문학이 가진 숨겨진 힘을 증거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런 문학이야말로 정치와 역사에 짓눌린 사회에 그 자체로 하나의 멋진 선물일 것이다."
에트가르 케테르, 그는 천재의 찬사를 받아 마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