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리뷰] 유쾌한 하녀 마리사

오랜동안의 난독증에 장편소설 하나도 끝내기 어렵던 시절에 그나마 나의 텍스트 성애 욕구를 채워준 것이 바로 단편소설들이었다. 원래도 짧게 끝나지만 여운이 새우똥 마냥 긴(새우는 자기 몸통보다 훨씬 긴 똥을 싼다. 건강하다는 징조다.) 단편소설을 좋아하기도 했지만, 그 시절 나에게는 가뭄의 단비 같은 존재였다.
매년 이상문학상과 문학동네상은 어렵게라도 구해보는 편이지만 (본인은 해외에 거주하고 있어 한국책을 공수하는 건 사실 "큰일"이다.) 한 작가의 단편집은 잘 읽지를 못한다. 왜냐하면 같은책을 반복해서 읽는 느낌이랄까. (며칠 전에도 전경린 작가의 "물의 정거장"을 읽다가 중도 포기한 적이 있다.) 원래 한번 읽은 책은 여간해서는 두번은 읽지 않는다. 좋아하는 영화나 미드는 다섯번이고 그 이상도 재생 하는걸 좋아하나 이상하게 책만은 반복을 허락하지 않는다. 학창시절 내 참고서는, 그래서 하얗고 깨끗했으며 중고 책방 주인의 사랑을 받았다.

오늘은 왠 사설이 이렇게 길까. 아마도 짧은 소설에 대한 감상을 쓰려니 사심 그득 분량을 채우려는 욕심이 앞서나 보다. 각설하자.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작가, 천명관은 다르다. "유쾌한 하녀 마리사"에는 총 11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으나 마치 여러명의 작가가 쓴듯 각 작품마다 풍채과 풍미가 다르다.  또한 장편에서의 긴 호흡을 한번에 숨가쁘게 내달리던 것과는 다르게, 짧은 호흡으로 경쾌하게 한발씩 편자를 박은 말처럼 또각또각 편안하게 걷는다.

특히 "유쾌한 하녀 마리사"와 "프랑스 혁명"은 읽는 내내 결말에 대한 기대를 하게 만들었고 다 읽고 나선 무릎을 탁 소리나도록 치게 만들었다. 천명관. 시대의 이야기꾼이라 불리는 그는 자유자재로 소설의 형식을 붕괴하고 관점을 타파하고 문장을 조리한다.

마님! 드디어 마노엘의 입에서 말파리 소리가 멈췄대요. 점성술사가 그러는데 그애는 전생이 동고비였다지 뭐예요. 글쎄. 그러니 말파리 따위가 무슨 재주로 그애를 해치겠어요. 동고비한테 잡아먹히지나 않으면 다행이죠. 그런데 맙소사! 손에 들고 있는 건 술병 아녜요? 
(유쾌한 하녀 마리사 중에서)

마치 외국 소설을 읽는 듯한 번역체에 가까운 말투다. 공기 인형이 침대 모서리에 앉아 책을 읽어 주는 느낌이랄까. 내가 번역 소설보다는 한국 소설을 좋아하는 이유는 작가들의 영혼이 담겨 있는 날것 그대로의 문체를 읽고 싶어서인데, 오히려 번역체를 사용함으로 날것자체로서 역습당한다. 요한나의 자살 소동은 유쾌한 하녀 마리사에 의해 토마스를 살인하는 일로 둔갑하고 그리고 또 그녀는 여전히 유쾌함으로서 농담인지 비극인지 해피엔딩인지 알수가 없다.

순간, 존은 웃음이 터져나오려는 걸 참는다는 게 그만 자신도 모르게 '큭큭'대며 이상한 소리를 내고 말았다. 그러자 토머스가 존과 위즐리 부인을 번갈아 바라보다 물었다. -이봐, 존. 혹시 이 집에서 나만 모르는 무슨 재밌는 일이라도 있었던 건가?
(프랑스 혁명사 중에서)

토마스 칼라일과 존 스튜어트 밀과의 실제 이야기를 바탕으로 "프랑스 혁명사(1834년 토마스 칼라일저)"에 얽힌 에피소드를 희극화했다.(토마스가 어마어마한 분량의 대작 프랑스 혁명사를 존에게 맡겼는데 존이 불쏘시개로 작품을 태워버렸다.) 유쾌한 마리사와 닮은 하녀 위즐리 부인을 등장시킴으로서 위선과 가식의 욕망을 실체화 시킨다. 우연한 음모는 엉뚱하게도 실수로 위장한 채 현실을 비웃으며 역사의 뒤켠으로 사라진다. 질투도 욕망도 음모도 한낱 지나가는 바람처럼 가볍다.


대개 단편소설의 결말은 마치 허무주의 개그처럼 순식간에 단절되는 경향이 있는데(이것이 단편소설의 매력이다.) 그래서 아쉽거나 어이 없거나 한 느낌과 함께 오랜 여운이 남는다. 그런데 이 두 작품은 결말 이후 배꼽을 잡고 손가락질하며 깔깔거리며 뒹구는 느낌이다. 어딘가 간지러운것 같고 어딘가 후련한것도 같다. 귀를 후벼야 할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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