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8. 야학에서 만난 사람들..

야학 시절의 사진이.. 하나도 없어서..
가장 비슷한 느낌의 사진을 찾았다.

이런 느낌의 교실에서.. 수업을 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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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학의 선생님이 되고..
처음에는.. 수학만 가르치다가..
나중에는.. 담임이 되었고..

내가 맡았던.. 우리 반에는..
10명 정도의 학생(?!)이 있었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먼저.. 눈에 띄었던 사람은..

거의 60세가 넘은.. 할머니 한 분. 과..
50세 정도 되는 아줌마 한 분. 이었다.

두 분 다..
한글을 배우러 오신 분들. 이셨는데..

얼마나 모진 세월을 살아오셨기에..
한글도 못 배우고 살아오셨던 건지..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야학에는..
한글을 못 배운 사람들이.. 의외로 꽤 많았다. ㅠㅠ)

가슴에 맺힌 한(?!)이 많았던 만큼..
학구열도 높으시고.. 궁금한 것도 무척 많으셨는데..

거의 딸 같은 나한테..
너무나도 깍듯하게.. 선생님. 이라 부르는 모습에..
다소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또 한편으로는.. 그저 보기만 해도..
마음이 짠- 해졌던.. 그런 기억이 있다.

왜소한 체구의 성철이는.. 중학교도 졸업을 못해서..
검정고시를 보려고.. 야학에 나왔던 아이. 였는데..

가정방문을 가보니.. 다세대 주택의 지하에..
벌집처럼 따닥따닥- 많은 방들이 붙어 있는..

그런 집의.. 방 한 칸에..
병든 할머니와 단 둘이 살고 있었다.

(지하로 내려가는 순간.. 진동하는 연탄가스 냄새에..
머리가 아파서.. 숨도 제대로 못 쉴 정도. 였고..

정말.. 이런 데에도 사람이 사는 구나..
싶을 정도로.. 열악한 환경. 이었는데..

그런 데에서 사는 사람들도 정말 많았다. ㅠㅠ)

엄마는 돌아가시고.. 아버지는 가출 하셔서..
소식도 알 수 없다고 했던.. 성철이는..

언젠가부터 야학도 나오지를 않아서..
찾아가봤더니.. 그 사이..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성철이도 어디론가 사라져 버려서..

아무 것도 해줄 수 없었던 무력감과 함께..

내내.. 마음에 가시가 걸린 것처럼..
그렇게.. 오랫동안.. 기억에 남게 되었던 것 같다.

16살의 현경이도.. 중학교도 졸업을 못해서..
검정고시를 보려고.. 야학에 나왔던 아이. 였는데..

낮에는.. 미싱 일을 한다고 해서..
그 환경도 궁금해서.. 호기심에 찾아가 봤다가..

얼떨결에.. 나도.. 1주일간..
미싱 보조. 일을 하게 되었던.. 기억이 있다.

(본의 아니게.. 공장에 위장 취업을;;;;)

현경이는..
천 먼지가 풀풀- 날리는.. 허름한 공간에서..
미싱으로 흰 골프 장갑을 만들고 있었는데..

(나는.. 현경이가 미싱으로 장갑을 완성하면..
가위로 실밥을 잘라서 말끔하게 정리해주는..
그런.. 보조 역할을 했었다.)

당시에.. 골프 장갑 1켤레를 완성하면..
받는 돈이.. 백 원인가? 그랬던 것 같고..

1주일 동안.. 하루 종일.. 보조 일을 해서..
내가 받았던 돈이.. 5만원이 채 안됐던 것 같다.

(그때.. 내가.. 1주일에 2번씩 하는..
수학 팀 과외 알바를.. 두 탕 뛰어서..
받았던 돈이 무려.. 80만원. 이었는데..

현경이가.. 하루 종일.. 죽어라 미싱을 돌려봐야..
받을 수 있었던 돈은.. 겨우 2-30만원 정도. 였으니..

정말로 엄청난 빈부의 격차. 라고 할 수 있는데..
도대체 그 차이는.. 어디서 비롯되는 것인가ㅠㅠ)

그래도.. 현경이는.. 똑 부러지게 야무져서..
결국에는.. 검정고시로.. 중학교 졸업 자격을 땄고..

나중에는.. 고등학교 졸업 자격까지 따서..
무척이나 흐뭇했던.. 그런 기억이 있다.

또.. 우리 반에는.. 나와 동갑이었던..
여학생 삼인방. 이 있었는데..

서로 친구지간. 이었던 삼인방은..
고등학교를 졸업하지 못해서..
야학에 나왔던 아이들. 이었는데..

한번은.. 셋이 동시에 가출을 하고..
야학에도 나오지 않아서.. 걱정을 하던 차에..

다른 반의 한 친구가.. 우리 삼인방이..
유흥가에서 일하고 있는 모습을 봤다고 해서..

그 유흥가 일대를 다 뒤져서..
결국엔 찾아냈던.. 그런 기억도 있다.

그 때.. 처음으로..
삼인방의 눈물. 을 보기도 했는데..

그동안 가슴에 꾹꾹- 눌러 담고 있었던..
삼인방의 가슴 아픈 사연들을 들으면서..
나도 같이.. 참 많이도 울었던 것 같다.

그랬더니.. 삼인방은..
나 같은 선생님은 처음. 이라면서.. (부끄;;;)

그때부터.. 무척이나 나를 잘 따랐고..
야학에도 다시 열심히 나오게 되었는데..

나중에.. 내가 야학을 그만두고도..
계속 선생님. 이라고.. 하도 불러대는 통에..

그게 너무 불편해진 내가..
그냥.. 서로 편하게.. 친구 먹자고! 우겨서..

시간이 좀 걸리기는 했지만..
결국에.. 우리는.. 지금까지도 가끔. 연락을 하는..
좋은 친구가 되었다. ㅎㅎㅎ

(삼인방은.. 모두.. 결혼해서 잘 살고 있다^^ㅋ)

그때..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겨우 스무살 먹은 내가.. 공부만 좀 더 했다고..
선생님 소리까지 들으면서..
도대체 뭘 가르칠 수 있는 건지..

오히려 내가.. 학생(?!)이라는 사람들을 통해서..
잔인한 세상과.. 인생에 대해.. 더 많은 걸 배웠다고..

나는.. 아직도 너무 많이 부족하고..
배워야 할 게 더 많은 나이라고..

그러면서.. 학기가 끝나고..
자연스럽게.. 야학을 그만 두게 되었는데..

사실은.. 정말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그들의 삶을.. 더 깊숙히 알게 되는 것도..
또, 새로운 학생(?!)들을 만나서 겪는 것도..
모든게 너무 겁나고.. 버거워졌기 때문. 이었다.

(그때의 나는 정말 너무 어렸다. ㅠㅠ)

그렇게 나는..
8개월에 걸친.. 야학 생활을 접고..
도망치듯.. 다시 학교로.. 돌아오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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