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단평*] 루카 구아다니노 "돌이킬 수 없는 시간의 도래"

돌이킬 수 없는 시간의 도래

<아이 엠 러브>에서 이탈리아의 상류층 여인 엠마는 가부장제속에서 억눌려온 삶을 바꾼다. 착한 아내였던 그녀는 우연히 요리사에게서 육체적인 충동을 느끼고 안토니오는 엠마에게 이전과 다른 시간을 경험하게 해준다. 그는 엠마가 자신을 되찾도록 도와주는 길잡이같은 인물이다. 구아다니노가 아들 에도의 죽음을 계기로 엠마가 자신의 상황으로부터 일탈하는 것을 영화의 중심에 둔 이유는 뭘까? 영화는 이야기를 다 하지 않은 듯한 결말로 궁금함을 자아낸다.
영화 자체에 집중해보면 엠마는 사랑의 대상을 만나 자신의 해방을 감행하는데 그러한 행보는 일종의 운명의 순간이 도래한 것과도 같이 대부분의 시간에 걸쳐 묘사되고 그 때문에 지리멸렬해 보이기조차 하다. 그녀가 아들의 죽음 이후 새로운 시간속으로의 이탈을 감행하는 것은 마치 역사적 전환점처럼 거대하게 묘사되고 있다는 느낌마저 주고 있는 게 사실이다. 이러한 방식은 우리가 미처 자각하 지 못했던 의미심장한 어떤 시간의 도래에 대해서 지나치게 진지하게 말을 거는 듯하다. 결말의 음악은 긴장감을 고조하고 분위기는 한껏 부풀려지고 결코 넘어선 안되는 선을 넘었다는 용기에 대한 찬미는고조된다. 전복되고 마는 가부장제 체제는 햇빛으로 가득찬 시간과 어두컴컴한 결말의 시간 사이에서 엠마라는 여인의 행동에 대해 특별히 주목을 끌어 당긴다. 한 순간의 전복이 실은 그간 엠마의 내면적 갈등과 일탈 기회에 대한 엿봄의 시간을 거치면서 암시되는 과절은 욕망이 신체를 거쳐 육체성을 띤 것으로 나타나서 감독의 스타일을이룬다. 안토니오와의 사랑은 신분을 초월한 사랑으로 육체적인 끌림에 의한 것이다.
에도의 급작스런 사고가는 마치 예고하는 듯한 몊 장면들을 거친다. 회사의 매각, 동생에게 준 마카롱 선물, 그리고 유모와의 마지막 작별인사같은 장면들은 이어지는 만찬씬에서 그가 테이블에 내어나온 스프를 보고 어머니의 불륜을 알아채는 순간까지 긴장의 실을 놓지 않았다. 사랑에 빠진 엠마의 일탈의 순간이 도래하기까지 가족들의 캐릭터 묘사가 들어가는데 이 장면들은 에도를 잃고 난 이후 그녀가 내리는 결정을 설득한다. 한동안 잠에 빠져 버리는 시간을 거친 다음 그녀는 스스로 집에서 탈출한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2017)에서 열일곱 소년 엘리오는 교수인 아버지의 그늘에서 억눌려 지내는 듯 보인다. 아내인 엘리오의 어머니와도 화목한 삶을 유지하는 아버지는 결말에서 아들에게 충고하듯이 육체성보다는 이성의 논리만을 강조한다. 엘리오는 모범적인 가장인 아버지의 제자 올리버를 보고서 사랑에 빠진다. 엘리오에게 올리버는 너무나도 매력적이고 그와의 사랑은 열병처럼 엘리오의 시간을 엄습해온다. 일생 일대의 사랑의 병은 쉽게 치유불가하다. 여름날의 충동적인 열정이 결말에서 올리버에 대한 그리움과 이루어질 수 없음의 회한 때문에 엘리오의 눈물로 흘러 내리고 그 모습을 구아다니노는 관객의 시점으로 오랫동안 바라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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