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념에 대한, 잡념에 찬 오마주

내가 옛날 문화를 좋아하는 것은 어릴 적부터 클래식 음악으로 시작해, 내 조부모님이 즐기셨을법한 문화보다도 오래된 것들을 즐긴 탓에 '익숙'하기도 하지만, 개인적으로 현대가 시시하기 때문이다.

과거의 것들에는, 심지어 대중문화 상품에도, 창작자들이 직접 경험한 인간의 잔혹함과 희망으로 찢어진 모습이 담겨 있다. 대부분의 경우 오리지널리티를 쉽게 찾아볼 수도 있다.

물론 과거의 인물들 역시 대부분은 얕은 인간들이었지만, (허상이든 아니든) 발전이라는 것에 대한 희망이나 절망을 보다 맑은 형태로 가지는 것이 가능하지 않았을까.

지금은? 서사는 대다수가 재탕 또는 바뀐 입맛에 맞춰서 조미료 팍팍 뿌려 데워낸 한 끼이다. 학자는 그냥 선생이자 직장인이다. 고작 영화 화면 속에서 뛰어난 기술을 즐길 뿐, 현대인의 삶은 더더욱 쳇바퀴에 가깝다. 편리의 이름으로 작은 화면 속에 갇혀 있기도 하고, 좋은 곳을 가도 알지도 못하는 이들에게 사진으로 보여줄 생각부터 앞선다.

나도 상당히 자유로운 삶을 산다고는 하지만 말 그대로 통상적인 쳇바퀴로부터의 자유인 것이지, 넘을만한 어떤 대단한 산은 없다. 바다의 공기와 동물들의 모습 등, 감각에 의한 즐거움이 낙이다. 새로운 것을 알아가는 즐거움은 이제 찾기 어렵다. 시간이 흐르는 한 무엇을 해도, 안 해도 어찌할 수 없는 일이다.

세상의 축적된 지식들을 제법 관심을 갖고 들춰는 보지만, 한번씩 거인들의 어깨 위에 서서 빼꼼히 내려다보는 일은 나름 감동적일지는 몰라도 결코 업적은 될 수 없다. 업적 자체에 대한 욕심이 없다고 생각하는데도 별로 유쾌하지는 않다.

높이에 대한 인간의 목표는 대략 다 이루어진 셈이라고 보인다. 새로움을 가장하여, 딱히 더 편리함을 주지도 못하는 장치들을 그저 팔아먹기 위한 시대이다.

아직 채 이루지 못한 넓이에 대한 목표 역시 이루어가야 할 과제지만, 개인적으로 재미는 없다.

높이에서 한계에 다다르면, 결국 기초를 의문시하고 무너뜨리게 된다. 해체니 뭐니 이제는 한참 철 지난 용어까지 사용하지 않더라도 말이다.

다시 개인적인 문제로 돌아가자. 나는 단상을 쓰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런 글을 쓰는 일이 매우 드물다. 만일 쓴다면, 그 이유는 충동이다.

과거의 인물들이 다 풀어놓을 대로 풀어놓고 용어 하나로 그 무수히 많은 페이지들을 떠올리게 하는 이 세상에서, 그것들을 읽지 않은 입장이라면 뭔가 자신이 대단한 생각을 해낸 것 같이 설렐 수도 있겠지만, 익숙한 입장에서는 이미 다 씹고 뱉고 다시 먹고 토하고 또 매일 두뇌와 정신이 요구하는 식량을 다시 먹는...그런 것들을 새로이 깨달은 이야기마냥 풀어가기는 다소 괴롭다.

현대인에게는 얕음이 예정되어 있다. 이왕 얕을거, 매우 깊이 얕아져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지도. 눈에 거슬리던 모공 하나가 사라져도, 순간 세상이 아름다워 보일 수 있다.

물론 내가 항상 이 정도로 냉소적인 것은 아니다. 그냥 오늘 특히 그런 것이다. 이런 날에는 성질 건드리지 마라, 숀, 루새끼, 몽땅. 물론 실제로는 귀여우니 화를 못 낸다. 역시 시각적 즐거움에 질질 끌려다니는 인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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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과거의 거인들이 직접 보지 못했던 것이 있다면 역시 현대와 미래의 양상들일 것이다. 어쨌든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사람으로서 두 눈 뜨고 바라보고 있으니까, 보이는 것들에 대해 가끔은 써볼 수 있겠다. 그래서 아주 가끔씩은, 싫어하는 단상을 써본다. 간식 먹듯이.

아래는 미래에 대해 내가 과거에 한 잡다구리한 생각들이다. 정말 시시껄렁한 현상들에 대한, 필연적으로 얕고 잡다한 생각들이지만, 적어도 과거의 거인들이 직접 보지 못한 양상들을 보고 있다는 얄량한 위안은 가능하다. 이제 바다 보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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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vs. 가짜가 사라진다

가까울 수도, 멀 수도 있는 미래에 대해 요즘 드는 잡념들이다.

뭐 꼭 인공지능이다, 암호(가상)화폐다, 등등을 구체적으로 거론하지 않더라도, 앞으로의 시대정신은 진짜와 가짜의 구분이 없어지는 것이 되리라고 생각한다. 시대정신이라고 거창하게 표현했지만 특정 철학자 이론에 맞춘 것만은 아니다.

진짜 돈, 자산은 무엇인가? 인간성(인간이라는 자격)은 무엇인가?

암호화폐는 돈 개념의 근간을 흔들고, 인공지능은 인간과 비인간(심지어 동물 등 다른 생물)을 나누는 기준으로 월등한 지능을 꼽지 못하게끔 할 것이다.

미국에는 벌써 동물의 아이덴티티로 신분증 발급 받은 사람이 있다고 한다. 인간성을, 아니 인간됨을 버리고 자기가 선택한 것이다. 자연 파괴와 인간 사이의 갈등 등, 인간에 대한 회의가 인간성을 기꺼이 버리는 방향으로 전개될 것이다. 인간을 가장 우월한, 또는 가장 중요한 존재로 보는 것이 점차적으로 금기시될 수 있다.

나는 누구인가? (그러니까 진짜로.)

인공지능과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정말 감쪽같이 누군가의 얼굴로 영상물을 제작할 수 있게 된다고 한다. 기존의 합성물들이 거의 조야하거나, 최소한 조사했을 때 가짜로 알아볼 수는 있었던 것과는 사뭇 다른 양상들이 보일 것이다.

권위자나 유명인, 공인, 연예인 등의 행동과 발언이 나오더라도, 그게 진짜인지 가짜인지 가려낼 수 없게 되면, 결국 그 누구도 그 어느 내용도 믿지 않게 될 것이다. 아니, 반대로 모든 것을 믿게 될 수도 있다. 일단 어떤 영상이 세상에 유통되고 모두가 거기에 대해 이야기한다면, 그게 진실인가, 거짓인가? 그냥 공유된 그 무엇이다.

누가 진실을 밝히려고 할 것인가? 누군가가 밝힌다고 해도, 별로 의미는 없을 것이다.

이 점은 생각해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우리는 이미 그런 정교한 영상 없이도, 확인을 할 수 없는 많은 것들에 대해 그렇게 믿고 이야기하고 있으니까.

그럼 내가 한 말이나 행동이 누군가에 의해 조작된다면? 그리고 모두가 그걸 믿는다면? 그것이 곧 그 사람들이 보는 “나”가 되는 것이다. 나 혼자 나를 정의하고 나 자신을 믿고 그것만으로 위안을 얻을 수 있으려면, 지금 사람들이 거론하는 자존감 정도로는 쉽지 않을 것이다. 소위 “멘탈”이 굉장히 강해야 한다. 자아가 엄청나게 확실해야 한다. 당신은 그런 사람인가?

성별이라는 것은 무엇인가?(카테고리화, 비교에 의한 정의가 금기시되는 세상)

성전환 같은 외과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더라도, 남성성, 여성성은 갈수록 정의하지 못하는 것이 되어가고 있다. 다수의 사람들이 본능적으로 구분은 여전히 하는데, 사회적으로 못 하게 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요즘 헐리우드에 대한 최신 음모론 중 하나로 Transvestigation이 눈에 띈다.

Trans(gender)+Investigation의 신조어인데, 유명 여배우들이 사실은 남자가 여자로 성전환을 한 케이스라는 주장이다.

한번 재미로 근거를 찾아본 적이 있는데, 보다보니 일단 그게 진실인지 아닌지를 떠나서 의혹을 제기할 나름의 근거는 있었다. 목젖, 골격, 가슴이나 골반 등 체형, 심지어 두개골 모양, 등등.

그렇다고 그런 주장들이 반드시 진실이라는 것은 물론 아니다. 그만큼 남성적(또는 여성적)인 얼굴이나 남체(여체)의 전통적인 기준이 식단조절이나 호르몬 변화, 패션을 비롯한 컨셉에 의해 희미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 의혹도 생기기 마련이다.

아이들을 입양한 걸로 유명한 몇몇 배우들이 남자 아이와 여자 아이의 정체성을 바꾸어가면서 키우고 있다는 의혹도 있다. 평소에 관심을 안 가져서 모르겠지만, 지금 여자로 길러지고 있는 아이의 매우 어린 시절을 기억하고, 분명히 남자 아이였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나의 요점은 그 사람들이 옳으냐의 문제가 아니라, 점점 양성성이 화두가 되고 유행이 될 것 같다는 예감이 든다는 것이다.

어느 시상식에선가, 핑크라는 가수가 자기 자신의 모습은 물론이고 자기 아이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자기 딸이 남자 아이 같다는 소릴 학교에서 듣고 왔는데, 자기는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고 가르쳤다는 식의 이야기였다.

그래서?

나는 이러한 모든 변화들이 새로운 시대의 특징들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매우 오래 전부터, 매우 서서히 그러나 매우 확실히 전통의 파괴라는 형태로 전개되었던 변화들이다.

가치 판단은 하지 않겠다.

하지만 미래를 볼 때, 기술적 발전이라거나 몇 차 산업이라거나 하는 것에 집중하는 시각으로 보더라도, 결과적으로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우리에게 더 “좋은” 쪽으로 흘러가고 있는것인지는 모른다. 겪어 봐야 알게 될 것이다.

난 애초에 역사의 흐름의 방향이 진보적이라고 믿지 않는다. 정반합이 가장 현실에 가까운 흐름을 묘사하는 용어가 아닐까 생각한다. 물론, 제한된 인간의 시각으로 보았을 때.

우리에게 더 좋은 쪽으로 변화하는 것을 발전이나 진보라고 정의하는 사람에게, 미래란 그렇게 녹록치 않을 것이다.

앞으로는 그 우리라는 것이 과연 누구인지의 문제도 재정의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의 우리(인간)의 생존에 유리한 쪽으로 발전이 이루어질지는 모른다. 그냥 그저 그렇게 흘러가고 있을 뿐이다.

요즘 가끔 간식 먹듯이 그저 해보는 생각들이다.

사진 아래의 본문은 2018년 3월 23일자 글로, [오마주] 프로젝트로 재발굴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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