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슬 졸릴 시간이다. 이럴 땐 춤을 위한 곡을 듣는 것도 좋다.
춤을 배웠던 시간을 합해보면 꽤 된다. 어릴 때 시작한 발레는 처음에 시큰둥했으나, 음악에 빠지면서 재미를 붙였고, 중학생 때까지는 전공한답시고 열심히 했었다. 만 15살의 나이쯤에는 세 명의 한국 나이로 고 3에 해당하는 전공반 학생들과 함께 했다. 나중에 선생님이 내가 그렇게 어린 줄 몰랐다며 나의 발 건강을 우려하기도 했고, 완전한 신체적 성장을 하면서 발레보다는 현대나 다른 쪽이 아마 더 수월할 것 같다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아마 계속 했더라도 최고는 못 되었을 것이다.
사실 음악을 그 자체로 듣는 편이 더 좋기도 했다. 발레를 할 때에는 러시아 작곡가들을 많이 들었었는데, 그만두고 나서는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바그너, 말러 등을 많이 좋아했다. 지금도 클래식 취향이 대략적으로 그런 쪽이다.
그 후로 별로 큰 필요성은 없었지만 스포츠댄스를 좀 배워뒀다. 원래 왈츠, 탱고가 목적이었는데 거기서도 선생이 차차나 파사도블레가 잘 맞을 것 같다, 잘 한다고 했다. 내친 김에 벨리 댄스도 잠깐 해봤다. 다 나름대로 재미는 있었는데, 막 빠져들지는 않았다. 요즘은 그냥 근력 운동을 하는 것이 제일 나은 것 같다.
사실 볼룸댄스, 스포츠댄스를 조금 더 재미있게 할 수 있는 방법이 라틴 쪽으로 가는 것이기는 하다. 내가 좋아하는 옛날 영화들을 보면, 대략 6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남미의 사운드가 스며들기 시작해서 큰 영향을 끼쳤다. 보통 생각하듯 열정적인 그런 느낌보다는 가볍고 유쾌한 느낌이라 부담이 없다. 사실 라틴 느낌을 너무 오버하면 조금 느끼하지 않은가!
유명한 티파니에서 아침을의 OST는 헨리 맨시니와 그의 오케스트라가 맡았는데, 문 리버(Moon River)의 차차 버젼을 좋아한다.
프랑크 시나트라를 키운 토미 돌시 오케스트라는 원래 관악기 소리가 두드러지는 조용조용한 연주를 잘 하는데, 차 2인분(Tea for Two)을 차차로 해석하기도 했다.
좀 더 본격적인 라틴 사운드는 스페인에서 태어나고 쿠바에서 자란 자비에 쿠갓 등등에 의해 유행되었는데, 쿠갓의 마리아 엘레나(Maria Elena)는 국내에서는 아비정전의 한 장면에 나온 것으로 유명하다.
에전에 영화 물랑 루즈의 감독 배즈 루어먼이 Strictly Ballroom('볼룸댄스 외 금지' 정도의 뉘앙스랄까)이라고 볼룸 댄스에 대한 영화를 만든 적이 있다. 춤 실력도 초보이고 행동거지가 다 어색한 여자가 프로급의 남자 댄서와 댄스 파트너가 되는 이야기다. 그렇게 말하면 더티 댄싱과 비슷한 컨셉인 것 같지만, 어쨌든 다 볼룸이라는 틀 내에서 가능한 춤을 추고, 나중에 이들이 선보이는 가장 급진적인 춤이라봤자 파사도블레다. 어릴 때 꽤 재미있게 봤다.
냇 킹 콜이 불러서 유명했던 키사스, 키사스, 키사스를 영어로 부른 노래에 맞춰 추는 장면이다.
(남자 배우는 실제 댄서였는데, 나중에는 요리를 좋아하는 후덕한 아저씨가 됩니다...)
사실 많은 외국의 댄서들이 은퇴 후에는 즐겁게 (먹으며) 사는 느낌이다. 아트를 한다는 느낌도 좋지만, 어쨌든 즐거우려고 췄던 춤으로 고생을 많이 했을테니, 은퇴 댄서들의 그런 모습도 멋진 것이 아닐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