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선생님이랑 결혼했다 @kimss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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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사랑은 타이밍(3)
그리고 또 한참
재돌샘은
나에게 잊혀졌다.
남자친구와
전처럼 연락할 수 없었던 나는
2학기 개학 후
더 바쁘게 지냈다.
수능까지만 기다리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남자친구는 있지만
서로의 사랑을 확인할 시간도 주어지지 않고
나 혼자만
남자친구를 기다리는 일은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그래도
오늘은 연락이 올까.
오늘 안 오면
내일 연락이 올까.
수능이 끝나면 예전처럼 돌아 가겠지.
매일 매일 그런 생각으로
버텼다.
바쁘게 살려고 할 수록
힘이 부치고 빨리 지쳤다.
수업을 들어도
과제를 하거나
과 행사에 참여할 때도
남자친구라는
근원적인 스트레스 때문에
기운이 나지 않았다.
하고 싶어서 하는 것이 아니라
남자친구를 잊어버리고 생활하려고
이것저것 하다보니
막 해보는 것 밖에 되지 않았다.
남자친구 때문에
힘든 일은
누구에게 털어놓고
기댈 수 있는 곳이 없었다.
내가
죽을 상을 하고 다니는 탓에
매일 같이 다니는 친구들에게는
어쩔 수 없이 내 상황을 이야기 했었다.
내 친구들은
그냥 그만하라고 했다.
나에게 득이 될 게 없다고 했다.
남자친구만 기다리고 있는 내가
안쓰러워 보인다고 했다.
나는 남의 말을 잘 듣지 않아서
고집을 부리며
그렇게
남자친구를 기다렸다.
보고싶었다.
내가 좋아서
나에게 먼저 다가왔던,
나에게 그렇게 잘해주던
남자친구가 보고싶어서
기다렸다.
기다리다가 도저히 안되겠는 날에는
내가 먼저 문자를 해보기도 했다.
잘 지내지?
돌아오는 답은 오히려
날 기운 빠지게 만들었다.
기다렸던 시간들이 허탈하기도 했다.
어
그렇게 해도 나는 여전히 너를
사랑하고 기다리고 있다고 말해주고 싶어서
보고싶다
라고 답장했다.
하지만 돌아오는 답은 같았다.
어
남자친구가
마음을 단단히 굳히고
공부한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편했다.
그리고
나는 내 자신을 다그쳤다.
'고3 남자친구
공부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도와주지는 못할 망정
연락이나 하고...잘한다.'
그렇게 남자친구를 기다린 게 빛을 본 날이
고백 받은지 1년 되는 그 날이었다.
남자친구가
1년 되는 날을 기념하며
우리 사이를
여전히 공부만큼이나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았다.
친구들이 기다리는 일을
그만하라고 했을 때
내 고집대로
남자친구를 기다린 것이
헛되지 않았다는 생각에 뿌듯했다.
그리고
남자친구에게 연락이 온 뒤에는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다시 나에게 돌아 온 것 같은
남자친구 때문에
몇 일동안 행복했다.
예전과 같은 말투로
문자를 주고 받는 것만으로도
숨통이 트이는 것 같았다.
그 만큼만으로도
행복했다.
일주일 뒤에 만났을 때도 남자친구와 분위기가 좋았다.
그렇지만
곧
그러고 몇 일 뒤부터
수능이 한 달 정도 남기 전까지
연락이 잘 안됐었다.
그래서
수능이 한 달 정도 남았을 때
만날 수 있냐고
내가 먼저
조심스럽게 물어봤던 것이다.
남자친구가 연락을 안 하더라도
걔의 여자친구라고 있는 내가
중요한 시험을 보는데
응원과 힘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나는
그냥 넘어갈 수가 없었다.
'여자친군데
나라도 챙겨야지, 누가 챙겨주겠어.'
또한
그 날
자고 간다고 했을 때,
내가 찜질방을 알아봤을 때
그냥
택시를 타고
가버린 걔가
고개를 숙이고 갔더라도,
말도 안하고 갔더라도,
문자에 답이 없더라도
나랑 헤어지려고 마음 먹은 게 아니라
'당장 기분이 좀 상했나보다.
내가 장소를 빨리 정하지 않아서
짜증이 났나보다.
그렇다고 가버릴 것 까지야 있나...
아쉽네.'
정도로 생각했었다.
그 뒤로 남자친구가
나에게 연락이 오지 않는 건
대학 준비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이대로 끝일까 싶어
불안하기도 했지만
남자친구가
연락을 하지 않을
수능이라는
명확한 이유가 있으니
남자친구를 기다려야 했다.
기다리기 힘들었지만
아직 헤어지자는 말은 들은 적 없으니까
남자친구와 사귀는 중이라고 생각했다.
혼자 기다리면서도
수능이 끝나면
모든 것이
원래대로 돌아올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 쯤에
재돌샘에게
전화가 왔던 적이 있다.
9시 정도 된 저녁이었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재돌샘 이름이 적혀 있는 내 폰을 보고
한참 쳐다봤다.
'재돌샘이 나한테 전화 할 일이 뭐 있지?
아...국수?! 설마 벌써?
모르는 사람도 아니고
전화 받아보자.'
"여보세요?"
"여보세요? 대학은 잘 다니냐?"
목소리를 들으니까 알 수 있었다.
약간 술이 된 목소리였다.
"ㅋㅋㅋㅋㅋ안녕하세요. 그냥 다니죠.ㅋㅋㅋㅋ"
전화가 온 상황도 웃겼고
재돌샘이 전화를 나한테 걸었다는 것도 웃겼고
재돌샘이랑 전화를 할 수 있는 것도
재밌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자친구에게 연락 조차 오지 않는
그 때
재돌샘의 전화는 뭔가 큰 이벤트 같이
느껴졌다.
짜증나고 지치고 외롭던 나에게
큰 웃음을 선사했다.
"왜? 대학 다니면 할 것도 많고 재밌을텐데."
"에이~ 대학다니니까 더 힘든 것 같아요. 과제도 많고, 과 활동도 해야하고...뒷풀이도 가기 싫은데 가야하고. 전 재미없는 것 같아요."
"그래? 선배들한테 술 사달라고 하고 얻어먹고 그래야지. 1학년인데."
"선배들이요? 선배들한테 인사하기 싫어서 왔던 길 도로 돌아가고 그러는데요?ㅋㅋㅋㅋㅋ"
"미친x!!!!!!!"
확실히 재돌샘은 술이 취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뭐라구요, 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지금 저한테 미친x이라고 하신거에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갑자기 이 밤에 전화해서 미친x이라니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선배한테 인사 잘하고 다닐게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진정하세요."
"아하하핳학하하하. 미안.ㅋㅋㅋㅋ 어쨌든 대학 다닐 때 사람들이랑 많이 어울려보고, 사람도 많이 만나고, 연애도 많이 하고 그래야 돼. 지나고 나면 못해."
"아...그래요?ㅋㅋㅋ 전 아직 잘 모르겠어요. 술도 별로 안 좋아하고. 동아리도 안 하고...수업만 열심히 들어요.ㅋㅋㅋㅋ"
"동아리를 안해? 왜? 나는 2개, 3개씩 했었는데. 이런 것도 해보고, 저런 것도 해보고 대학 다니면서 할 수 있는 건 다 해봐야 해."
"네 여유가 생기면요ㅋㅋㅋ 한잔 하셨어요?ㅋㅋㅋㅋ"
"어. 조금 밖에 안 마셨어.ㅋㅋㅋ"
"얼른 들어가세요. 밤에는 날씨 쌀쌀하던데."
"하나도! 나는 더운데?"
"아 예 ㅋㅋㅋㅋㅋㅋ 근데 그러다 감기 걸려요. 얼른 들어가세요. ㅋㅋㅋㅋ"
"그래 알았다. 행복하게 잘 살아라."
"네. 쌤두요."
전화를 끊고나서도 한참 혼자 웃었다.
이 선생님이 왜 이럴까 싶기도하고
무슨 일 있는건가 싶다가도
그래도 학교에서 만난 인연으로
선생님이
졸업한 제자, 대학생활 잘하라고
연락도 해주는 것이 감사했다.
선생님이
나를 편하게 대하고
선생님에게
그런 조언과 격려를 들을 수 있는
제자인 것이 기분 좋았다.
술에 취한 재돌샘이
나랑 한 전화 내용을 기억하지
못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남자친구에게 연락이 오지 않을
이럴 때
재돌샘에게 밥 한 번 사달라고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연락 온 것이
밥 사달라고 할
좋은 구실이 될 것 같았다.
학교 다닐 때
내가 재돌샘 좋다고
쏟아부운 편지지랑 볼펜 잉크랑
커피(매점에 파는 캔커피),
비타민드링크가 얼만데 라고 생각하며
기대에 부풀었다.
다음 날
점심시간 쯤에
재돌샘에게 문자를 했다.
쌤! 어제 저한테 전화 하신거 생각나세요?
답장이 왔다.
어 기억나지
어제 조금 밖에 안 마셨는데
재돌샘
반응이 시원찮아서
얼른
본론으로 들어갔다.
아...
저 저번에 밥 사준다고 했었잖아요.
맛있는거 사주세요!
남자친구를 기다리는 시간동안
이렇게 시간을
보내야겠다고
생각했다.
자꾸 피폐해 질 것이 아니라
연락하지 못했던
사람들에게 연락도 하고
남자친구에게 올인하느라
신경 쓰지 못 했던 고등학교 동창들에게도
연락하고 약속을 잡을 계획이었다.
그래 이번 주는 좀 그렇고
다음주 주말 쯤에 밥 먹자
재돌샘이 흔쾌히 약속을 잡아주셨다.
남자친구를 언제까지 기다려야 할지
끝이 보이지 않고
기다리다 지친
무기력하고 재미없는 시간 중에
재돌샘과의 저녁 약속은
내 마음을
설레게 했다.
_다음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