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선생님이랑 결혼했다 @kimss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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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선생님에게로 가는 길 (1)
2009년 3월 3일
입학식.
입학식에 가랑비가 내렸다.
다목적실에 가는 길에
선생님이 보일까 싶어
이리 저리 살피는데
진짜
저 멀리서 재돌샘이 뛰어오고 있었다.
딱봐도 재돌샘이었다.
우산도 없이 비를 뚫고 뛰어 오는 중이었다.
나는 아는 척 하러 선생님에게 달려갔다.
우산도 안 쓰고 선생님에게 뛰어갔다.
"쌤!"
재돌샘이 내 앞에 멈춰섰다.
나는 비를 피하려고 나무 아래에 섰다.
"내년에 오신다면서요!"
"내가 언제? 잠깐만."
그러더니
선생님은
갑자기
옆에 있는 나무를
뻥-
찼다.
나무에서 빗방울이 후두두두둑-
나무 밑에 서 있던 나에게
떨어졌다.
"아, 쌤ㅠㅠ"
".....내 사랑이야 ㅋㅋㅋㅋㅋ"
하고 뛰어가버렸다.
저 선생님은 7살 짜리 장난꾸러기도 아니고
고무줄 놀이할 때 고무줄을 끊고 도망가는
사내아이도 아닌데
나한테 왜 저러지.
'사랑은 개뿔! 아 진짜, 다 젖었잖아ㅠㅠ'
입학식 4일 전.
교직원 소개에 선생님 이름이 없어서
깜짝 놀랐다.
1학년 때 함께 한 선생님들
몇 몇 분들의 이름도 보이지 않았지만
특히나
재돌샘의 이름이 없었던 것은
너무나 충적적이었다.
'그래서 답장 써준거 였어?
아닌데...답장에 간다는 말 없었는데?
간다는 말도 없이 간거야?
설마?
에이, 선생님 이름을 실수로 안 올린거 아니야?'
선생님들 성함을 짚으며
몇 번이나 교직원 소개를 읽었다.
그래도 재돌샘 이름은 없었다.
누가 홈페이지 관리를 하는지 모르지만
설마 재돌샘 이름만 빼먹을리가 없었다.
'나 2학년 때 수업 들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2학년 때는
문과, 이과로 나뉜다.
2학년 문과 수학 수업은
수준별 수업을 하는 것이 아니라
단원을 나눠 선생님들께서 수업을 하셨다.
나는 내가 2학년이 되면
당연히 재돌샘이 칠판 앞에 서 있는
교실에 앉아 수업을 들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었던 것이다.
눈물이 맺혔다.
흐르진 않았지만 뭔가 억울했다.
'이대로 얼굴 한 번 못 보고 그냥 보낸다고?
방학식 때 봤던게 마지막이라고?'
더이상 기댈 수 있는,
응원받을 수 있는,
예쁘다고 해주며 예뻐해주는
선생님이 영영
사라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크리스마스 때 부모님 폰으로
문자했을 때 답장 왔던 것이
생각나서
선생님에게 바로 연락해보기로 했다.
문자를 보냈다.
'쌤 왜 교직원 소개에 선생님 이름이 없어요?
쌤 다른 학교 가세요?'
생각보다 답장이 일찍 왔다.
'사정이 생겨서 그렇게 됐다. 그래도 내년에 중학교로 가게 되니 그 때 보자.'
아...?
답장을 받고 몇 번이고 읽었다.
그리고 물어보고 싶은 게 더 많아서
전화를 하고 싶었다.
하지만 용기가 생기지 않아서
문자만하고 말았다.
'선생님 가시는 줄 알고 너무 슬펐어요ㅠㅠ 그래도 중학교로 가시니까 내년에 볼 수 있겠네요. 보고싶을거에요.'
그리고 입학식 때 보니
없어진 줄 알았던 선생님이
짠-
하고 나타났다.
몹시 반갑고 기뻐서
그래도 비를 맞으며 뛰어갔는데
걷어찬 나무에서 후두두둑-
떨어진 빗방울에
머릿속까지 젖어버린 기분이었다.
선생님 기준에서 '내년'에 온다는 말은
다음 학기를 말하는 것이었다.
봄방학 중에 한 연락이었으니 학기가 시작되는 3월에 중학교로 출근한다는 말이었던 것이다.
나는 '내년'이라고해서
말 그대로 내년으로 알아듣고
올해는 못 보지만 내년에 볼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다행이다. 그래도.'
수학 시간, 교무실, 복도에도...
그리고 급식소에도...
학교에
재돌샘이 보이지 않는 게
어색하고 허전했다.
선생님 웃음 소리도
확성기를 끼고 내는 것 같은
목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문과로 진학했던 나는
수학을 잘 못했지만
수학을 멀리하지 않았다.
1학년 때 B반 여자 수학선생님은
작년과 마찬가지로 학교에 남아계셔서
꾸준히 수학 공부하는데 도움을 받았다.
고등학교 바로 옆에 있는 중학교는
같은 재단이고
내가 졸업한, 내 모교이다.
덕분에 마음만 먹으면
재돌샘을 보러 갈 수 있다는
생각은 가지고 있었다.
원래부터 선생님 수업도 못 들어봤고
모르는 문제가 생기면
물어 보러 가면 될 일이었다.
고등학교에도 수학 선생님이 계시지만.
그리고 의외로 마주칠 수 있는 순간은 있었다.
첫 번째로
급식소에서.
중학교에서 4교시가 먼저 마치기 때문에
중학교에서 급식소를 먼저 썼다.
(아, 중학교, 고등학교 같은 급식소를 썼습니다.)
혹시나 선생님이 늦게 밥을 먹으러 올 경우
내가 수업이 빨리 마쳐서 나오면
선생님이 밥을 먹고 나오는 길에
만날 수 있었다.
그리고 모의고사를 칠 때는
고등학교에서 수리영역을 마치는 시간이
중학교 4교시보다 일찍마치기 때문에
볼 수 있었다.
중학교에 4교시 수업이 없으면
일찍 점심을 먹으러 나올 경우
수리영역을 마치고 나오면
식사를 하고 있는 경우도 있었고
밥을 먹고 나올 때 마주칠 수 있었다.
처음에는 우연으로 마주쳤지만
내가 선생님과 마주칠 기회를 한 번 겪고 나면
선생님을 만나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움직였다.
선생님은 몰랐겠지만.
그저 우연인 줄 알았겠지만.
혹시나
내가 늦었거나
선생님이 내 생각과 다르게 보이지 않으면
크게 아쉬워했다.
혼자 기분이 좋지 않았다.
두 번째는 저녁 먹으러 갈 때
혹시나 선생님이 늦게 퇴근하면
주차장에서 만날 수도 있었다.
물론 내가 저녁을 빨리 먹거나 포기하면
선생님과 이야기 나눌 수 있는 기회도 생겼다.
세 번째는 토요일에 만날 수 있었는데
선생님이 토요일 수업을 마치면
고등학교에서 수월성 수업을 한 시간 맡아서 하셨다.
3월 말쯤부터 토요일마다 볼 수 있었다.
이과생들을 위한 수학2 수업이라서
내가 수업을 들을 수는 없었다.
그러나 토요일에 점심을 일찍 먹고
중학교 교무실에 가면
선생님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눌 시간이 생겼다.
그리고 수업시간에 맞춰 고등학교로 왔다.
네 번째는 '수학 일기'를 만들었다.
그러니까
이건 내가 선생님에게 편지를 쓰기위해서,
그리고 만날 빌미를 만들기 위해서
창조한 일기인데
입학식 날 선생님 얼굴을 보고 나서부터
쓰기 시작했다.
사실은 일기 쓰는 것 처럼 편지를 노트에 써서
선생님에게 주려고 했는데
수학 선생님인 만큼
모르는 수학 문제가 생기면
편지를 쓰는 노트에 같이 적었다.
그게 '수학 일기'였다.
편지는 어짜피 자주 써도
자주 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수첩에 쓰자고 생각했고
하루 있었던 일과
모르는 수학 문제가 생기면
오답노트 쓰듯이 적어두었다.
문제를 푸는 과정과
틀리는 과정도 적었고
외워야 할 공식이 있으면
그것도 수첩에 적었다.
처음에는 수학 공부하는데도
도움이 많이 됐다.
한 달 정도 쓰고
선생님께 드려서 답장을 써달라고했다.
'수학 일기'를 본 선생님은
상당히 좋아하셨다.
잘한다고 말해주셨다.
선생님과 '수학 일기'를 주고받자고 제안했다.
그러면
반드시 선생님과 만날 수 있는 이유가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선생님이 고등학교에 있지 않아도
나는
그렇게
선생님 안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다.
_내일 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