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ul essay] 도약의 기억

도약.jpg

 2015년 4월의 어느 새벽, 난 거실 소파에 앉아 50일이 막 지난 첫째 딸에게 우유를 주고 있었다. 아기는 3~4시간마다 모유나 분유를 먹어야 한다. 수유 타임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찾아온다. 수유 타임이 오면, 나와 아내는 함께 일어나서 아내는 유축기로 모유를 짜내고 난 분유를 타서 아기에게 먹인다. 삼십 분 정도 수유를 하고 아기 트림을 시키면 다음 수유 시간까지 얕은 잠을 자는 생활을 반복했다. 아내는 아내대로 밤낮 가리지 않고 아기를 돌보느라 심신이 지쳐 있었고, 나 역시 퇴근하고 집에 와서는 거의 모든 에너지를 아기에게 쏟느라 지쳐 있었다.

 몸이 피곤한 것은 그럭저럭 견딜만했다. 힘들었던 건, 아이를 낳기 전까지 내 마음대로 썼던 여가 시간을 더 이상 쓸 수 없다는 거였다. 아이를 낳아 육아에 동참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아기를 안고 기르면서, 이전엔 알지 못했던 기쁨을 얻었지만, 한편으로 나 자신은 지워져 간다는 느낌을 받고 있었다.

 책상에 앉아 책을 읽거나, 글을 끄적거리거나, 미드를 보던 일상은 이제 비일상적인 일이 되었다. 출산 후 그것은 특별히 시간을 내야 누릴 수 있는 것으로 성질이 완전히 바뀌어 버렸다. 아이의 탄생이라는 역사적인 사건은, 내 일상과 시간에 화학적인 변화를 일으킨 것이다.

 그 새벽도 숨 가쁘게 달려온 지난 50여일의 시간과 다르지 않았다. 아이에게 젖병을 물리고 아기가 우유를 다 먹으면, 어깨에 손수건을 두르고 아이를 어깨에 걸쳐 안고 등을 토닥이며 트림을 시키는 일련의 과정이 조금 더 능숙해졌을 뿐이다. 아내는 유축을 끝내고 들어가서 안방에 쓰러지듯 누워 잠이 들었다. 허기를 달래자 잠이 든 아기를 안고 안방으로 조심스레 들어가, 아기 침대에 아기를 눕히고 다시 거실로 나왔다. 소파에 털썩 앉아 시간을 확인한다. AM 5:00. 두어 시간 후에 일어나더라도 보통 다시 잠을 청하는데, 그날따라 하루를 조금 일찍 시작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빠 아기.jpg

  서재로 가서 책상에 앉았다. 스탠드 하나만 켜고 홀로 대화를 시작했다.

  “뭘 할까?”
  “최소한 단잠을 자는 일보단 가치 있는 일이어야 하겠지.”
  “의외로 두 시간 동안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아.”
  “많지 않아도 돼. 한 가지만 있으면 돼.”
  “영화를 볼까? 아니면,”
  “글을 쓰자.”
  “그래, 좋은 생각이야.”

 컴퓨터를 켜고 D드라이브에 숨겨둔 폴더 하나를 열었다. 완결시키지 못한 이야기들이 쌓여 있는 창고였다. 그 중 최근에 쓰다만 소설 파일을 하나 열었다. 내 어릴 적 경험과 공상을 뒤섞어 쓰던 성장 소설이었다. 소설을 이어 써내려갔다. 이야기의 동굴에서 스탠드 불빛 하나만을 의지한 채 더듬더듬 이야기를 이어가는 동안, 2시간이 금세 지나갔다. 동이 텄고 출근 준비를 했다. 그 날 아침의 기분은 다른 날과 같지 않았다. 밤새 충전해도 50%에 될까 말까한 배터리를 내장하고 출근길에 나서곤 했는데, 그 날은 다 채워진 기분이었다. 시간이 날 때 늘 앉던 책상이었지만, 그 새벽에 책상에 앉아 보낸 시간은 전혀 다른 의미였다. 그것이 내가 자발적으로 20여년 만에 다시 시작한 첫 야자 시간이었다.

 그때부터 나만의 시간이 없어서 답답하거나 불안하지 않았다. 내 일상엔 아직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을 시간이 남아 있었다. 다만 몇 스푼의 노력과 의지만 있으면 될 일이었다.

 그 후 얼마간, 동트기 전 마지막 수유를 마치고 나서 난 스탠드 불빛 하나만 의지한 채 이야기의 동굴로 들어갔다. 그것은 탈출이었다. ‘무엇을 해야 하는 존재’로 나를 규정짓는 세계로부터 잠시나마 벗어나, ‘다른 나’이면서 ‘진짜 나’인 존재로 도약하는 일이었다.

 아기의 발달 과정에 따라 도약의 시간은 달라졌지만, 도약하는 법을 잊어버리진 않았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영감5.jpg

마나마인로고.gif

H2
H3
H4
Upload from PC
Video gallery
3 columns
2 columns
1 column
32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