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정적인 감정이라는 괴물

종종 내가 형편없는 사람이란 느낌을 받는다.

어느 날은 ‘그래. 이 정도면 나도 나쁘지 않아.(좋다고 생각해 본적은 없는 듯..)나도 꽤 괜찮은 사람이야.’라고 생각이 들어 나름 룰루랄라 성실하게 하루를 보내다가도

어느 순간 갑자기 밀려드는 그 부정적인 감정의 회색빛 쓰나미...

그게 어떤 신호가 딱 내 눈에 들어오면 내 마음의 부정적 감정의 스위치가 켜지는 것 같은데 그것은 주위 환경일 수도 있고 타인의 나에 대한 반응일 수도 있다.

예를 들면, 가정주부인 나는 한량이었던 아버지의 기질을 이어받은건지 엄청난 게으름의 소유자로 집안을 깨끗이 정리해본 적이 없는 듯하다.(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게 평소엔 괜찮다가도 어느 순간 너저분한 집이 내 눈에 딱 들어올 때 갑자기 밀려들어오는 회색빛 쓰나미..

‘나 왜케 한심하지?’

‘니가 해야 하는 일이 집안일이고 육아잖아. 너 진짜 형편없다.’

이런 생각이 갑자기 쓰나미처럼 몰려들면서 내 표정은 갑작스레 어두워지고 내 어깨는 한없이 쳐진다..

분명 집은 어제나 오늘이나 (어쩌면 항상..) 너저분했는데 그저 어느 순간 그 신호가 내 눈에 딱 들어오면 갑자기 내 마음의 부정적 감정의 스위치가 켜지는 것이다.

그 스위치가 켜지면 갑자기 내 가슴은 우리우리~한 이상한 느낌이 들며(몸과 마음은 연결되어 마음이 안 좋을 땐 반드시 몸에도 반응이 있다)

자신에게 한심한 사람이라는 꼬리표를 느닷없이 붙이며 갑자기 나를 한심한 사람으로 만든 나의 환경이 싫어지기 시작한다.(자신의 보호의 일환으로 내 탓을 안 하고 남탓을 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집안일과 육아를 해야만 하는 내 환경이 싫어지기 시작하면서 ‘결혼을 안 했다면 내가 이렇게 집안일에 부담을 갖지 않아도 됐을텐데’ 하며 집안일의 문제가 갑자기 결혼에 대한 후회로 이어지기도 하고,

아이를 청결한 환경에서 키우지 못하는 내 자신을 탓하다가 나중엔 나를 이렇게 한심하게 만든 장본인을 결국 찾아내(한심하게 만든 장본인 같은 것은 없다. 모든 것은 내가 만들어낸 문제일뿐..)

‘내가 도대체 애는 왜 낳았지?? 내 인생이 왜 이렇게 됐지?? 이건 다 애 때문이야..!!’ 하며 집안 청소 안 한 문제가 갑자기 애를 낳은 후회, 해서는 안되는 엄청난 후회로까지 이어지는 것이다..!!

그깟 집안 청소가 뭐라고, 집안 물건이 좀 너저분하면 좀 어떻고 먼지가 좀 많으면 어때서(어차피 밖에도 미세먼지 많다..)그게 뭐라고 결혼에 대한 후회, 엄마가 된 것에 대한 후회로 이어진단 말인가...!

집안일이 매번 부담스럽고 그 생활에 허덕댄다면 좀 너저분하게 늘어놓아도 엄청 건강에 악영향을 끼치는 것은 아니다. 집안을 깨끗이 정리해두면 기분이 좋아지는 것은 사실이나 집안일을 할 시간에 다른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해 기분 전환을 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 별것 아닌 문제가 인생을 바꿀만한, 결혼이나 사랑스런 아이를 낳은 것에 대한 후회로까지 이어질 필요가 전혀 없는 것이다. 그런데 이성이 나를 지배할 때는 이 사실을 아는데 부정적 감정의 쓰나미가 몰려올 때는 이런 이성적 판단이 되질 않는다.

그저 내 자신이 더없이 한심하고 이렇게 나를 한심하게 만든 주위 모든 상황, 사람들이 다 싫다. 다 밉다.

그래서 애꿎은 남편이나 사랑스러운 아이들에게 화살이 돌아가는 것이다. (돌고 돌아 그 화살은 결국 나에게로 돌아온다..)

이렇게 주위 환경이 잠자고 있던 부정적 감정의 스위치를 켜는 경우도 있고 타인의 나에 대한 반응이 그 스위치를 딱~하고 켜는 경우가 있다.

룰루랄라 기분이 좋았는데 일 처리 하러 갔던 곳의 직원이 나를 본체 만체 하고 물어본 것도 제대로 대답해주지 않고 퉁명스러운 말투로 나를 귀찮은 사람으로 취급하는 느낌을 받는다면 바로 그 스위치가 켜진다.

‘뭐지?? 내가 너무 후줄근하게 하고 나왔나? 아님 내 말투가 너무 자신없어 보여서 나 무시하는건가? 도대체 뭐지??’

하며 내 자신을 이렇게 대접 받도록 원인 제공을 한 내 자신의 후줄근한 외모, 자신없는 말투 등을 탓하다가 (자기 보호의 일환으로) 남 탓을 하게 된다.

‘정말 뭐 저런 사람이 다 있지? 여기 서비스 수준이 저것밖에 안되나?’

하며 내 탓했다 남탓했다 하며 본래 일을 처리하고 돌아가려 했던 나의 본목적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무표정이 되어 내 자신이 싫어지고 내 자신이 싫어지게 만든 그 타인이 미워진다..

내 자신이 싫고 내 앞에 있는 타인이 싫다면 결국 이 세상 전체가 다 싫다는 것이다. 나와 너가 싫은데 이 세상에 내가 존재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나와 너가 싫으면 이 세상은 그저 미움, 의무만 남을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세상에선 우리 누구도 오늘도 살아가야 할 의미를 찾지 못 할 것이다.

세상 사람들이 다 힘들어서 그렇다. 딱히 나빠서가 아니라, 나도, 너도 다들 할 일이 많고 피곤하고 힘들어서. 그래서 원치 않지만 자신이 모르는 사이에 서로 상처를 주고 받는 것이다.

내가 힘들어서 상처를 주고도 몰랐을 수도 있고 나에게 부정적 감정의 스위치를 켜게 한 그 사람도 나에게 상처를 주었다는 사실도 모른다.

상처를 받고 받은 사람은 그 상처를 또 다른 사람에게 패스하고. 결국 돌고 돈다. 이 악순환을 누군가는 끊어내야 한다.

자신의 호흡이나 자신의 일상적인 행동을 하나하나 주의깊게 지켜보는 명상을 틈날 때마다 하면 자신의 감정이 예민하게 느껴진다.

‘아.. 내가 지금 저 사람의 태도 때문에 기분 상해하고 있구나..’

‘아.. 내가 지금 지저분한 집 때문에 우울해졌구나.. 그래서 괜히 애기한테 화살이 돌아가는구나..’

이렇게 감정이 예민하게 느껴진다.

이렇게 느껴지고 나면(알아차리기) 그 뒤에 감정이 더욱 더 걷잡을 수 없이 증폭되는 일은 없다.

감정은 억누르면 빵빵한 풍선을 계속 꽉 잡으면 언젠간 팍 터질 수 밖에 없듯이 터진다. 걷잡을 수 없이. 모든 걸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심하게 파괴력을 갖는다. 그러니 그렇게 파괴력을 갖기 전에 조금씩 조금씩 감정을 흘려보내야 한다.

감정을 흘려보내는 방법은 그 감정을 나쁜 것이라고 인식하며 그 감정을 부인하지 말고 그 감정 자체를 충분히 느끼는 것이다.

우울하거나 자신을 자책하려 할 때는 분명 몸에 반응이 온다. 가슴이 우리우리~한 느낌이 들거나 배가 불편하거나 뭔가 느낌이 온다. 그리고 명상을 꾸준히 한 사람이라면 감정이 예민하게 느껴질 것이다.

그럴때 ‘나 참 한심하네. 이게 뭐 별거라고 이렇게 우울해하고 있어?!’하고 애꿎은 자신에게 화살을 돌리지 말고 그 우울한 감정을 그대로 느껴보자.

‘이 감정은 내가 느껴서는 안되는 감정이야..!!!’라는 생각이 절대 해서는 안되는 생각이다.

느껴서 안되는 감정은 없다.
모든 감정은 정당하고 내가 나를 찾아온 감정을 박대하면 언젠가 나를 또 찾아온다.

나를 찾아온 그 감정을 우리가 긍정적인 감정이 느껴진다고 해서 부정하고 안 느끼려고 하지 않듯이 부정적 감정도 마찬가지로 내 몸으로 충분히 느껴줘야 한다.

부정적 감정이란 반갑지 않은 친구에게 차라도 한잔 따뜻하게 대접해줘야 그 친구가 나에게 앙심을 안 품고 만족하며 나를 떠나는 것이다.

부정적 감정이라는 친구는 종종 앙심을 품고 박대 당한 복수를 톡톡히 하기에 우리는 그 친구 대접에 소홀해서는 안된다.

부정적 감정을 두려워하지 말자. 그저 느껴지는 감정일 뿐이다. 눈에 보이는 괴물이 나타나 우리를 잡아먹는 것이 아니다. 그건 아무런 실체가 없는 환영일 뿐이다.

평소 아무리 바쁘더라도 우리가 숨은 쉬고 살기에 호흡을 지켜볼 시간은 있을 것이다. 들어가고, 나가고 하는 호흡을 지켜보는 명상을 틈틈히 해 자신의 감정을 알아차리는 연습을 자주 하자.

부정적 감정의 노예가 되어 자신을, 남을 파괴하는 파국까지 가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기억하자.

그것은 괴물이 아니라 그저 감정임을.

우리가 느껴버리면 그것으로 그만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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