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과 서열

육체적인 힘과 서열은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는다.


아들은 헐크를 좋아한다.
힘과 근육을 숭상하기 때문이다.
헐크 장난감 3개를 보유중이고
거의 매일 나와 함께 헐크 그림을 그리고 색칠한다.

만 4세가 되면서 녀석이 왜? 라는 질문을 시작했다.
나는 오래전부터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나중에 자식이 이것저것 질문을 하면 아주아주 성의껏 다 답변해줘야지'
어느정도 자신도 있었다. 사람대 사람으로 존중심을 가지고서 열린 마음으로 대한다면 많은 질문이 와도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다 나름 답해줄 수 있으리. 어느정도 잘 해내고 있었다. 예를 들면 이렇다.

'헐크는 저 천장 닿아?'

재빠른 계산을 한다. 헐크랑 보통 같이 서 있는 어벤저스 멤버 캡틴아메리카나 토르같은 사람들 키가 대충 180cm라고 치면 헐크는 한 2.5미터 정도라고 논리적인 추론을 통해 설정을 구체적으로 해뒀다.

'어 헐크가 똑바로 이렇게 서면 천장에 머리가 닿을껄'

'xx집(처갓집을 지칭) 천장에도 닿아?'

'어 우리집 천장이랑 xx집 천장이랑 높이가 비슷하니까 거기도 닿을껄'

'왜?'

두둥!
이 집과 저 집의 천장 높이가 비슷한 이유를 설명하시오.
조금 당황스러웠으나 나름 성실한 답변을 했다.

' 사람의 키는 다 비슷하기 때문에 집을 지을때도 다 비슷한 높이로 지어. 그래서 천장 높이가 같은거야'

...

힘에 관련한 질문은 단골 컨텐츠다.
'아빠는 개보다 힘 쎄?'
'어 아빠가 개보다 힘 쎄지. 근데 도사견이나 도베르만같은 크~은 개 보다는 아빠가 힘이 약해'

...

그러던 어느날 일이 있어 장인어른이 집에 오셨다. 아들은 외할아버지를 엄마아빠보다도 좋아한다. 나에겐 해방되어 푹 쉴 수 있는 꿀같은 찬스다. 낮잠도 자고 인터넷도 하고 푹 쉬었다.
어쩌다보니 3인이 함께 거실에 자리한 상태에서 질문 어택이 들어왔다.
'할아버지가 아빠보다 힘 쎄?'
장인어른은 태국인이다. 서로 말이 통할리는 없다. 그러나 이렇게 흥미진진한 토픽을 가지고 이야기가 진행되면 녀석이 곧바로 통역을 해버려서 정보가 샐 가능성은 100%에 달한다.
나는 눈에 띄게 곤란한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내가 세운 원칙은, 아들에게 무엇이든 얼버무리거나 피하지 않고 허심탄회하게 진솔한 답변을 해주는 것이다.
그런데 이건...
물론 장인어른이 내 답변을 전해듣고 호승심이 자극되어 결투를 시작하게 될 리는 없다. 우린 애가 아니고 어른이니까.
그렇다 해도 이건...

나는, 외할아버지가 더 쎄다고 대답해주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며, 육체적인 힘과 서열은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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