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여유가 생겨 요즘 대세인 테이스팀을 써 볼까 했다.
그런데 <콩닥콩닥 소개팅, 어디서 만나야 하지> 라니. 20대 초반에 딱 한번 소개팅 해본 나와 맞지 않는 주제라 테이스팀은 패스하고 쓰고 싶은 글이나 쓰려고 한다.
아마도 20대 중반의 나에게 소개팅 제의가 들어왔다면 삼겹살에 소주나 마시자고 했을 것 같다.
그 이후라면 이자카야나 야키니쿠 집에서 사케를, 지금이라면 간단한 타파스에 와인일 것이다.
근데 떠오르는 집은 스페인 음식점이 아닌, 일본에서 건너온 프렌치-이탈리안 레스토랑이다.
ORENO. 이태원 해밀턴 호텔 근처에 있는 작은 음식점인데, 음식 하나 하나 맛이 좋아 와인이랑 즐기기 딱이다. 스페인 음식점이 아닌데 이 곳을 떠올린 것은 아마도 이 집의 문어 아히요 때문인 듯. 사진을 너무 못 찍어서 아쉬운 도미 카르파치오랑 마시는 샴페인은 언제나 옳다.


이외에도 메뉴가 더 있었는데, 나는 먹어보지 않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랍스터를 택한다. 가격도 나쁘지 않았던 것 같다.
이 집의 단점은 의자가 높고 불편하며 테이블이 작다는 점.
사실 그 때문에 소개팅 장소로는 부적합할 수 있다. 하지만 나라면 여전히 이 곳을 택할 것 같다.
나는 음식점의 분위기, 청결도, 편안한 좌석 보다는, 음식의 맛, 친절도를 더 중요하게 여긴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나와 동일한 생각인 것은 아니다. 친구들이야 가끔 만나니 맞춰줄 수 있지만, 남자친구나 남편이라면 같이 외식 하는 일이 훨씬 잦은데 매번 맞춰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아직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확실하게 정립되지 않아 함께 변화할 수 있는 20대 초반이 아닌 이상, 차라리 처음부터 나랑 선호도가 같은 사람을 찾는 편이 편하다고 본다.
고등학생 때 까진 좋아하는 사람에게 고백하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라고 생각했다. 많은 이들이 그렇듯, 고백 했다가 거절 당하면 어쩌지? 라는 걱정이 앞섰다. 그땐 사람과 사람을 비교 대상으로 봤기 때문이다. 거절하는 사람은 더 잘난 사람이라 거절하는 줄로만 알았다. 아마도 어릴 때의 나는 잘생긴 사람만 좋아해서 그랬을 가능성이 크다. 지금의 나는 내가 누군가의 고백을 거절하거나 누군가 나의 고백을 거절해도, 내가, 또는 그 사람이 더 나아서가 아니라, 그냥 본인의 취향이 아니었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함께 여행을 다니고, 맛집을 다니고, 술을 마실 수 있는 사람이 좋다. 그렇다고 상대방이 술을 잘 마셔야 하는 것은 아니다. 나 혼자 마시면 되니까. 다만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야." 라는 것을 보여주기에 나에겐 술집에서의 소개팅이 딱인 것 같다. 나의 이런 부분이 마음에 들지 않는 상대방이라면 다시 만날 이유가 없으니까. 소개팅이란 나와 잘 맞는 사람을 찾는 자리일 뿐, 만난 모든 사람의 마음에 들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ORENO에서 만나고 사람이 괜찮으면 2차는 근처 이자까야에 가는 것으로.
생각해보니 남편이랑 ORENO에 가본 적이 없다. 같이 한국 가면 가야겠다. 남편은 술을 좋아하지 않지만, 함께 맛집에서 데이트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나의 처음이자 마지막 소개팅. 남편과의 이야기는 아니다.
학교 선배가 시켜줬던 그 소개팅은 커피숍에서 이루어졌다. 그리고 그 곳엔 포켓볼다이가 있었다. 그냥 이야기나 하면 될 것을 상대방이 포켓볼을 치자고 했다. 아마도 큐대 잡는 법을 가르쳐주고 싶었나 보다. 상대방이 엄청 마음에 들었다면, 아마 그렇게 했을지도 모르겠다.
어릴 때 해운대 한 호텔의 술집에서 아빠에게 포켓볼을 배웠다. 고등학생 땐 특활로 포켓볼 부에 있었다. 그래서 연속 2 경기를 내가 이기고 말았다. 자존심이 상했는지 뭔가 표정이 좋지 않던 그 분은 다시 커피를 마시다가 대뜸 '포트리스2'를 하러 가자고 했다.
몇 개월 만에 접속한 나는 '쌍금별' 레벨이었고, 그분은 '동메달'쯤 가지고 있었다. Scorched Earth 라는 게임 기억하시는 분들이 계실지 모르겠다. 어릴 때 동네 친구들이랑 엄청 많이 했던 탱크로 대포 쏘는 게임인데, 그래서인지 포트리스2도 크게 어렵지 않았다. 이기다 보니 표정이 영 좋지 않아서 그냥 져 주고 끝냈다.
포켓볼 치고, 게임방에서 포트리스를 하고 나니 이건 더 이상 소개팅의 분위기가 아니었다. 같이 양지국밥에 소주 한잔 하고 헤어졌다. 물론 그게 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