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결혼 후 대부분의 새해는 집에서 남편과 고양이와 함께 맞이했다. 제야의 종소리 전후로 양가에 전화를 드린 후, 비록 매번 실패하더라도 남편과 나, 고양이 두 마리의 가족 셀카를 시도하며 즐거워했다.
작년 연말도 집에서 오붓하게 보낼 계획이었는데, 생각해보니 이곳에 온 후 공휴일마다 바쁘거나 한국에 돌아가서 한 번도 불꽃놀이를 보지 못한 것이 떠올랐다. 2018년 아부다비의 새해맞이 불꽃놀이 포인트는 총 세 곳이었는데, 고민하다가 가장 화려할 것 같은 에미레이츠 팰리스를 선택했고 연말에 길에 갇히는 불상사를 겪고 싶지 않아 그 근처에서 숙박하기로 했다.
예약
처음에는 근처의 상대적으로 저렴한 호텔에 전화를 걸어 "에미레이츠 팰리스의 불꽃놀이를 볼 수 있는 방이 있나요?"라고 물어봤지만, "여기는 에미레이츠 팰리스가 아닙니다."라는 퉁명스러운 대답과 함께 전화가 끊어졌다. 기분이 상한 나는 자초지종을 남편에게 설명 후 "우리 아부다비에 언제까지 살지 모르는데 이참에 에미레이츠 팰리스에서 묵을까?"라고 슬쩍 던져 봤는데 남편이 덥석 수락했다.
곰이 그려진 모 사이트에서 가격 비교 시, 이상하게도 조식 포함 여부에 따라 가격이 크게 차이 났다. 이후 싼 가격을 제시한 모 사이트에서 예약을 진행하는데 추가 요금을 지불하고 새해맞이 갈라 디너에 참석하겠냐는 '체크 박스'가 있었다. 남편과 나의 반응은 '대체 누가 저렇게 비싼 갈라 디너에 가냐'는 거였다. 2017년 마지막 저녁은 호텔 근처에 있는 일식집인 TOKI에서 맛있는 저녁을 먹고 호텔 방에 돌아와 오붓하게 창밖의 불꽃놀이를 볼 예정이었다.
체크인
12월 31일. 새벽부터 출근해서 평소보다 일찍 퇴근한 남편과 함께 호텔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5시 즈음이었다. 체크인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왜인지 체크인 속도가 매우 더뎠고, 그 이유는 우리 차례가 되어서야 알 수 있었다.
직원 : 오늘 갈라 디너 예약된 거 아시죠?
나 : 네? 저희 예약 안 했는데요?
직원 : 예약되어있어요.
나 : 호텔 요금에 포함된 거예요?
직원 : 아뇨. 따로 요금을 지불하셔야 해요.
나 : 저희는 예약한 적이 없는데요?
직원 : 호텔 예약 확인서 좀 보여주시겠어요?
나는 당당하게 휴대폰을 건네줬고, 조금 후에 직원이 예약 관련 몇 개의 메일 중에서 "There will be a mandatory New Year's Eve Gala Dinner..."라는 문구가 적힌 메일을 찾아냈다.
어떻게 할 방도가 없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갈라 디너에 대한 메일도 따로 한 번 왔었는데, 바쁜 남편은 개인 메일을 잘 확인하지 않는다. 다만 아쉬운 점이 있다면 우리 기준엔 그 '체크 박스'는 '라디오 박스'여야 했다.
그제야 직원은 천천히 갈라 디너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오후 7시부터 1시간가량 중앙 홀에서 간단한 핑거 푸드와 샴페인이 함께하는 스탠딩 파티가 있고, 8시부터 공연과 함께하는 식사가 새벽 1시까지 제공된다. 코스 요리일 경우 알레르기 때문에 문제가 될 것 같아 메뉴를 물어봤더니 해산물도 있지만 내가 앉을 좌석 정보를 총괄 셰프에게 전달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1월 1일 브런치도 포함이었는데, 결국 우리가 처음 보았던 조식이 포함되었다는 가격은 갈라 디너와 브런치에 대한 것이었다.

우리는 당연히 일반 정장을 입고 있었다. 물론 집에 가더라도 남편에게 턱시도와 나비넥타이가 있을 리 만무하지만 적어도 나에게는 입을 일이 없던 드레스가 있었다. 하지만 체크인과 좌석 배정에 이미 오랜 시간이 걸렸고, 새벽부터 출근한 남편이 방에 들어오자마자 곯아떨어졌기에 드레스를 가져오는 것은 포기했다.
파티의 시작

7시가 되어 중앙 홀로 들어선 나는 드레스를 가지고 오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역시나 남성은 나비 넥타이에 턱시도, 여성은 클러치를 든 드레스 차림이었다. 게다가 볼드한 귀걸이, 목걸이를 통한 블링블링함이란!
같은 테이블에 서 있던 여자분 역시 정말 예쁘게 꾸미고 왔기에 부러움을 표시했더니, "어차피 새벽쯤 되면 다들 만취해서 똑같을 거야!"라고 했다. 그 말을 들으니 기분이 좋아졌다.

8시에는 드디어 외부의 연회장으로 안내되었다. 예쁘게 꾸며진 테이블과 조명, 그리고 차려입은 사람들을 보다 보니 '위대한 개츠비'에서의 파티 장면이 떠올랐다. 우리 테이블의 나머지 좌석 10개는 아일랜드에서 온 가족으로 채워졌는데, 할머니 할아버지부터 예쁜 손녀까지 함께하는 모습에 한국에 있는 가족이 보고 싶어졌다.
음식
음식과 술은 새벽 1시까지 서빙되었다. 샐러드, 구운 해산물, 구운 고기, 스시, 디저트 등이 뷔페 형식으로 준비되어 있었는데, 역시 제일 좋았던 것은 마음껏 먹을 수 있는 석화였다!

샴페인과 석화라니! 게다가 아부다비의 석화는 주로 영국과 프랑스에서 비행기를 타고 오시는 귀한 몸이라 시장에서도 1개에 3,000원 정도 한다.

사전에 얘기가 된 대로 총괄 셰프님이 샐러드와 구운 해산물, 그리고 디저트를 따로 준비해주셨다. 해산물의 경우, 고기와 같은 그릴을 쓰면 안 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초콜렛 분수 앞에서 서성였더니 마시멜로 때문에 문제가 될 것을 걱정하시며 따로 따뜻하게 데워진 초콜렛과 과일을 가져다주셨다. 이날 먹은 샐러드는 부라타 치즈가 올려진 카프레제였는데, 쌉쌀한 와일드 루꼴라와 고소한 부라타 치즈가 정말 잘 어울렸다.
공연


공연 또한 8시부터 새벽 1시까지 5시간 동안 번갈아 진행되었다. 야광 옷을 입고 하는 사진 속의 공연도 아름다웠지만, 역시 눈길을 끄는 것은 여러차례 진행된 활활 타오르는 불을 이용하는 쇼였다. 새해가 다가올 수록 더욱 화려한 불쇼가 진행되었는데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밴드에 의한 공연도 불 쇼와 번갈아 진행되었다. 느린 곡이 연주되는 동안에는 다들 자리에서 일어나 파트너와 춤을 췄는데, 나와 남편은 이런 춤이 익숙지 않아 알 수 없는 스텝을 밟았더니 같이 앉아 친해졌던 할머니 할아버지께서 각자 한 명씩 이끌어 춤을 가르쳐주셨다. 식사 내내 대화를 이끌어가시는 참 유쾌한 분들이셨는데, 나중엔 무대 앞으로 나가셔서 80년대 음악에 맞춰 신나게 디스코를 추시는 모습에 깜짝 놀랐다. 전 가족과 함께 이 곳에서 10일간 머무르신다는 말씀에 유서깊은 가문의 귀족 출신이거나, 대부호일 것이라 생각했는데 정말 파티 내내 열린 마음으로 이런 저런 소탈한 모습을 보여주셔서 의외였다. 나도 저렇게 멋진 모습으로 나이들 수 있을까?
밴드 공연도 처음에는 느린 곡으로 시작했지만, 새해가 다가올수록 클럽 분위기로 변했다.
불꽃놀이
역시 이날의 하이라이트는 새해맞이 카운트다운이 끝나자마자 시작된 약 10분간의 불꽃놀이였다.



신나는 음악. 처음 보는 사람들과 주고받던 "Happy New Year". 환하게 터지는 불꽃놀이와 폭죽 사이에서 남편과 함께 맞이했던 이 날은 내 생애 최고로 행복한 새해였다. 마치 내가 영화 속 한 장면 속에 있는 것 같이 느껴져 그간의 시간에 대해 보상받는 기분이었다.
벌써 올해도 다 끝나간다. 다시 한번, 이번에는 예쁘게 참석하고 싶지만 아마도 쉽사리 결정하지 못할 것 같다. 나도 여기서 일을 할 걸 그랬나? 하는 후회가 이럴 때 찾아온다. 조금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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