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건대, 제 사회성은 그다지 좋지 못합니다.
게다가, 제 사회성을 반성하게 된 계기도 그다지 오래된 일이 아닙니다. 뻔뻔하게도 이전까지는 문제를 느끼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어린 시절, 저는 의견을 솔직하게 말하고 또 대화를 즐기는 성격이었습니다. 그리고 옳은 것을 옳은 것이라 믿는 성격이었습니다. 이것은 제가 천성적으로 이해력이 부족한 탓에 교육을 잘못 받아드린 결과였습니다. 학교에서 가르치길, 역대 왕조의 몰락에는 듣기 좋은 거짓말을 좋아하던 왕이 있었고, 아첨을 일삼는 간신들이 있었다고 했습니다. 대한민국은 목숨을 걸고 바른 목소리를 냈던 사람들 덕분에 발전한 국가라고 했습니다. 현재에 이르러서도 건전한 토론은 민주 시민의 기본 소양이라고 배웠습니다. 저는 이 가르침들이 의미하는 바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내면화한 것입니다.
돌이켜 보건대, 사회성이 무엇인지 처음 눈치 챘어야 했던 때는 제 중학생 시절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당시에는 중학교 사이 학업능력 편차를 알기 위한 시교육평가 시험이 있었습니다. 대부분의 학교는 이 시험으로 중간고사를 갈음했었습니다. 그러다 한 번은 엄청난 오답률을 낸 과학 문제가 하나 출제되었는데, A, B, C 세 용액에 대한 산염기 적정 실험 결과를 주고 세 용액이 무엇인지를 맞추는 주관식 문제였습니다. 문제는 약간의 함정을 포함하고 있었고, 한 학년 500명이었던 우리 학교에서는 나를 포함한 단 두 명만이 정답을 맞히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교무실로 불려가게 되었습니다.
문제가 다소 애매한 면이 있어, 복수 정답처리를 해야 할 것 같다. 혹시 이 문제를 복수 정답 처리하면 네 등수가 달라지니?
선생님, 제 등수는 변하지 않지만, 문제는 전혀 애매하지 않았어요. 그게 함정이었을 뿐이예요.
선생님도 안단다. 하지만, 복수 정답 처리하면 다른 아이들의 점수를 올려줄 수 있지 않겠니?
지금도 선생님의 인자한 미소가 잊혀지지 않습니다. 저는 이 문제를 맞힌 다른 친구를 알고 있었는데, 그 친구는 선생님이 따로 부르지 않았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습니다. 선생님은 당시 좋은 학교를 지망하던 제 성적이 조금이라도 떨어질까 걱정되어 불렀던 것입니다. 결국 학교의 평균 점수는 올라갔고, 제 등수 또한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저는 아마 이때 사회성이 무엇인지를 어렴풋이라도 깨달았어야 했던 게 아니었을까 회고하곤 합니다.
제가 처음 사회성이 무엇인지를 느끼게 된 때는 군 복무 시기였습니다. 벌써 10년 가까이 된 이야기이지만 지금도 그 상황이 생생히 떠오릅니다. 그날은 다른 부대와 함께 훈련을 받게 된 날이었습니다. 당시에 우리 부대에는 나를 포함해 두 명의 동기가 더 있었습니다. 편의상 한 명을 A라 하고 다른 한 명을 B라고 하면, A는 호방한 성격에 나름의 정의감이 있는 친구였고, B는 자기 일도 잘 하면서 사교성이 좋은 친구였습니다. 훈련이 고되었던 탓인지 휴식 중에 A는 타 부대원과 마찰을 일으켰고 꽤 큰 목소리가 오갔습니다. 사실 누가보아도 A가 잘못한 상황이었지만 A는 굽히지 않았습니다. 다행히 상대가 먼저 뒤돌아 갔기 때문에 큰 문제로 불거지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함께 있던 부대원들은 이미 가버린 타 부대원을 같이 욕하며 분위기를 험악하게 만들었습니다. 저는 아직 훈련이 끝나지 않았는데, 이런 분위기가 형성되는 것이 우려되어 A에게 다가가 말을 건냈습니다.
아직 훈련이 끝나지 않았는데 마찰 일으키지 말자. 그리고 저 아저씨 상황도 좀 이해해 주자
꺼져
저는 A의 성격을 아는지라, 아직 성이 덜 풀렸나 보다싶어 나중에 다시 이야기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돌아갔을 때였습니다. B가 저에게 다가와 이렇게 말했습니다.
다른 부대원들이 A한테 잘못이 있는지를 몰라서 같이 화를 내주는 게 아니야. A가 잘못했더라도 우리 쪽 편을 들어주는 게 맞지 않냐?
뒤통수를 한 대 후려 맞은 기분이었습니다. 아무도 그동안 저에게 이런 말을 해준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제서야 다른 부대원들의 행동과 그 분위기를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나는 잘못된 행동을 하고 있었고, 그들은 옳은 행동을 하고 있던 것이었습니다. 저는 이 한 사건만으로는 사회성을 내면화할 수 없었지만, 저에게 이 사건은 그것이 무엇인지를 느낄 수 있게 해준 중요한 계기였습니다.
그리고 저는 대학 졸업 이후 바로 회사를 다녔습니다. 제 부족한 사회성은 매일 같이 시험대 위에 올랐습니다. 우리 부서에는 나이는 좀 있지만 그에 비해 직급이 높지 않은 직원 한 명이 있었습니다. 그는 시간이 날 때마다 저에게 와서, 자기가 이전 부서에서 무엇을 했고,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를 이야기하곤 했습니다. 하루는 그가 자신의 경력을 자랑하며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내가 비지니스를 오래하면서 사람을 많이 만나다 보니까, 하는 행동을 보면 누가 사기꾼인지 알 수 있어!
그러면서 그는 이에 관련한 글을 적은 본인 블로그를 보여줬고, 본인은 이 특기를 살려 언젠가 컨설턴트 회사를 차려보고 싶다고도 이야기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말을 계속 이어나갔습니다.
내가 예를 하나 들어 줄게. 카페에서 만날 때, 구석진 자리에 앉게 하면 사기꾼일 확률이 높아. 왜냐하면 사기꾼은 자기 말에 집중하도록 만들고 싶어 하기 때문이지. 내가 이런 행동 패턴들을 잘 알아. 이걸 설문 항목으로 만들어서 지표화하고 ‘당신의 비지니스가 위험에 있을 확률’을 제시할 수 있어.
저는 그의 얼토당토 않는 생각이 당혹스럽기도 했지만, 그가 정말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아 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계장님, 혹시 그 행동 패턴이 통계 분석을 통해서 나온 결과입니까? 대조군은 설정하셨고요? 저도 친구들이랑 카페 갈 때 구석자리를 선호하는데 저도 사기꾼입니까? 통계 분석 없이 나온 설문 항목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그리고 계장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보통 ‘프로파일링’이라고 부릅니다. 아직 사기 범죄에 관한 프로파일링은 이루어지지 않은 것 같으니, 계장님이 원하신다면 먼저 프로파일링을 공부해보심이 어떻겠습니까?
내가 이 나이에 어떻게 다시 공부를 해
그날 이후 어느 날, 저는 화장실에서 나오다 그가 사무실에서 제 험담을 하는 것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저는 그 때 아이고 계장님, 어떻게 이런 생각을 다 하셨습니까. 정말 오랜 경험은 무시할 수 없습니다! 라고 했어야 했던 것이었습니다. 저는 제 사회성을 진지하게 반성하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알고 있습니다. 모든 대화에는 답이 정해져 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지금은 회사를 그만 둔지도 오래되었지만, 여전히 사회에 속한 개인으로서 항상 사회성을 요구받으며 살고 있습니다. 이제는 꽤 좋은 사회성을 가지게 된 것도 같지만, 때때로 본래의 삐뚤어진 성격을 따라 삐져나오는 말들을 눌러 담기가 버거울 때가 있습니다. 언제쯤 저는 사회성을 완전히 내면화할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