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nky의 내맘대로 전시후기] 현대 조각의 거장, 알베르토 자코메티

독일 여행 사진 정리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니 게으름 병이 도져 며칠 포스팅을 못하고 있었는데, 오늘 마침 예술의 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알베르토 자코메티展을 다녀오게 되었습니다. 좋은 전시일 뿐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는 쉽게 만날 수 없는 전시라, 아직 못 보신 분들께 관람을 권하고 싶어 간략한 소개 글 하나 올려봅니다 :)


알베르트 자코메티는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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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틀린 듯 불편해 보이는 표정과 튀어 나올듯한 눈, 다듬어지지 않은 표면, 그리고 때로는 철사처럼 길고 가늘게 늘어진 팔 다리들. 그의 작품들을 보고 받는 첫인상입니다. 이렇게 부자연스럽고 특이하게만 보이는 작품을 만든 작가는 현대 조각의 거장이라고 불리는 알베르토 자코메티(Alberto Giacometti, 1901~1966)로, 인간 내면의 본질과 고통을 표현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는 조각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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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서는 이번 전시가 자코메티의 첫 개인전으로, 일반 대중에게는 거의 소개된 적이 없어 로댕이나 미켈란젤로같은 조각가만큼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해외에서는 피카소 만큼이나 유명한 작가입니다. 얼마나 유명한지 쉽게 설명하기 위해 작품 가격을 말씀드리자면... 이번 전시관의 마지막 코스에 마련된 묵상의 방에 전시된 [걸어가는 사람 II(Walking Man II)]이라는 작품의 가격은 3800억원 정도@_@라고 합니다. 조각 작품으로 1000억원을 넘긴 작가는 지금까지 자코메티가 유일하다고 하니, 얼마나 유명한지 감이 잡히실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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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 태생으로 아버지가 화가였던 자코메티는 어릴 때부터 그림에 특별한 소질을 보였습니다. 전시장 초입에서는 그의 드로잉은 물론, 회화 작품 몇 점을 만나보실 수 있는데요. 인상파 화가들의 기법이 떠오르는 점묘 형식의 작품들인데 10대의 소년이 그렸다고는 믿기 어려울 만큼 표현력이 뛰어납니다. (위 사진의 벽면에 있는 인물작품이 그 시기에 그려진 자화상입니다)

하지만 그는 사진이라는 도구가 발명된 이상 예술에 있어 대상을 보이는 그대로 표현하는 것이 무의미하다고 생각했고, 본인에게는 화가보다 어려운 목표인 조각가의 길을 선택하게 됩니다. 조각을 공부하면서도 보이는 대로 재현하는 것에 만족하지 못했던 자코메티는, 스위스를 떠나 파리에서 작업을 하게 되는데요.


자코메티의 모델들

전시장에는 자코메티의 모델이자 연인, 아내였던 여러 명(!)의 여인들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물론 작품과 함께 말이죠. 상세한 설명이 있어, 조각가인 그의 일생에 큰 영향을 미쳤던 세 명의 여인을 만나보며 그의 작품세계와 그에 얽힌 스토리텔링을 볼 수 있습니다. 마력적인 여인이었지만 갑자기 그를 떠나버린 연인 이사벨, 스스로는 얽매인 삶에 저항하는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이며 매력적이고 아름다운 여인이었지만 자코메티에게만은 순종적이었던 아내 아네트, 그리고 거의 20년 연하의 아내가 있었으면서도 그가 새롭게 빠져버린 37년 연하의 매춘부 연인 캐롤린이 그 주인공들입니다.

미투 운동이 한참인 요즘, 살아생전 작품의 가치를 인정받아 갑부가 된 남편이 좋은 집하나 마련해 주지 않을 뿐 아니라 캐롤린을 만난 뒤로는 이상한 트집까지 잡아가며 괴롭혔지만, 그래도 가사와 전시 준비 등을 도맡아 고달픈 뒷바라지를 하며 그를 위해 헌신하면서 끝까지 그의 곁을 지켰던 아내를 두고 거리의 여인과 사랑에 빠져 외도를 했다는 사실은 모두의 공분을 불러일으키기에 모자람이 없지요. 하지만 그는 나체 모델이나 술집 여인들의 벗은 모습을 보면서 신성하다고 느꼈고, 그가 무척이나 사랑했던 어머니를 생각하며 모성의 숭고함, 여인(어머니)의 의지, 자식에 대한 사랑 등을 떠올렸다고 합니다. 캐롤린에게 그가 속아(?)가면서 까지 그녀가 원하는 것을 모두 내주었던 것도 그런 이유라고 하는데요. 그런 그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조각가라는 사실을 보면 예술의 세계라는 것은 참으로 알쏭달쏭 합니다;;

이 부분에 대한 판단은 여러분께 맡기겠습니다. ㅎㅎ

(사실 자코메티는 캐롤린을 여신이라고 생각했을 뿐 아니라 고급 스포츠카, 현금 등등 그녀가 원하는 모든 것을 주었고, 심지어 병상에 누워있던 마지막 순간에도 부인에게 캐롤린을 불러달라고 하여 임종을 지키게 했다고 하네요ㅠㅠ 약간의 위안을 주는 사실 하나가 있다면, 자코메티에게 유일하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캐롤린의 소원은 자코메티와의 결혼이었는데, 용서할 수 없는 외도에도 불구하고 마지막까지 곁을 지킨 아내 아네트가 엄청난 가치의 작품들과 유산을 상속받았고 세상을 떠날 때 까지 자코메티의 아내라는 사실로서 존경받았다는 지점이에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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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이야기가 곁길로 새버렸네요;; 다시 작품 이야기로 돌아올께요. 소개된 작품들을 보면 세 명의 여인 외에도 세 명의 남자 모델이 등장합니다. 수만 번도 더 기꺼이 자코메티의 모델을 서 주었다는 동생 디에고, 친구이자 철학자였던 일본인 이사쿠 야나이하라, 그리고 그의 생의 마지막 작품의 모델이 되 주었던 사진가 로타르입니다.

자코메티는 생의 마지막 기간에 로타르를 모델로 가장 많은 작업을 했었는데요. 죽기 직전, [앉아있는 남자의 흉상 (로타르 III)]의 흙 작업을 마치고 아직 마르지 않아 젖은 헝겊에 싸 둔 채로 석고 작업을 시작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결국 완성하지 못한 채 다음날 세상을 떠났지만, 가장 사랑했던 동생 디에고의 세심한 노력으로 청동 조각상이 세상에 빛을 보게 됩니다(조각 작품의 제작 과정을 모르는 분들을 위해 잠시 설명을 드리자면, 청동 조각상은 보통 흙으로 작업을 마치면 여러 개의 조각상을 만들기 위해 석고로 본을 뜨게 되고, 이 본에 청동을 부어 만들어 내는 과정을 거칩니다).



자코메티의 작품세계

제가 왜 이렇게 자코메티의 모델들에 대해 길게 설명을 드렸는가 하면, 그는 몇몇 작품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자신의 곁을 지키고 그가 가장 사랑했던 주변의 인물들을 대상으로 작업을 했던 작가로, 이번 전시의 흐름이 모델 인물들을 중심으로 진행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 작품들은 대상의 겉모습을 그대로 재현한 것이 아니라, 각 모델의 특성과 생명력을 작가 자신 만의 시점으로 창조한 작품들이었습니다. 자코메티가 어느 정도로 재현에서 벗어난 작품을 추구하였는가 하는 것은 그의 이 말을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나는 이미 시각화된 시각적 습관들로부터 자유롭기 위해 상대에 대한 지식과 선입견의 필터를 깨야 했다. 그래서 나는 ‘잊는 것’의 과정을 시작했다.

그래서인지 같은 모델을 표현한 작품도 서로 비슷하지 않습니다. 모델의 내면을 표현하고자 하는 그의 의지가 반영되었기 때문에, 매 순간 변하는 모델의 모습이 작품에 반영된 것이겠지요. 또한 인간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했으며, 생각하는 인간에 대한 자신의 이해를 작품으로 표현하여 다른 이들과 공감하며 소통하는 방법으로 삼았다고 하니, 장엄한 비장미마저 느껴지는 작품들을 만든 그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가 활동했던 시대는 제 1,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났던 시대이며 그는 전쟁의 참혹함과 인간의 죽음, 그리고 존재 이유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며 인간의 삶과 본질을 탐구했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런 이유가 그를 그저 ‘비싼’ 조각을 만들었던 조각가라기보다는 한 시대를 상징하는 예술가로 기억하게 하는 지점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그의 작품의 주제는 끊임없이 인간에 대한 성찰이었으며 아주(정말 아주) 작은 작품부터 아주 긴 작품, 큰 작품에 이르기까지 인간에 대한 사랑과 죽음과 고통이 담겨 있습니다. (중간에 고양이나 강아지도 아주 잠깐 나옵니다 ㅎㅎ)

다음에 그가 남긴 인간에 대한 감상을 보면 그가 왜 그렇게 가늘고 긴 형태의 작품들을 만들어냈는지 짐작이 가는데요. 작품에서 풍기는 철학적인 무게와 성찰의 깊이를 생각해 보면 그의 이 말이 조금은 아이러니 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인간이 걸어다닐 때면 자신의 몸무게의 존재를 잃어버리고 가볍게 걷는다.
거리의 사람들을 보라. 그들은 무게가 없다. 어떤 경우든 죽은 사람보다도, 의식이 없는 사람보다도 가볍다. 내가 보여주려는 건 바로 그것, 그 가벼움이다.

자존심이 강하고 유명세를 날렸던 피카소가 거의 유일하게 자신의 작품에 대한 비평을 기대하고 친분 관계를 유지했던 작가가 자코메티라는 사실은 그가 가진 작가로서의 역량과 깊이를 비추어 줍니다.


글을 마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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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에서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작품이 한정되어 있어 사진은 거의 없습니다. 그리고 작품에 대한 직접적 해설이나 감상평은 직접 관람하시면서 느껴 보시면 좋을 듯 하여 간략하게만 넣었습니다.

혹시라도 관람에 관심 있는 분들을 위해 좋은 팁을 하나 알려드리면 내일.. 아니 벌써 오늘이군요. 2월 28일은 마지막 수요일로 문화가 있는 날특별가를 적용하는 날이라 16,000원이나 하는 티켓을 오후 6시부터 8시 까지 반값에 구매하실 수 있습니다. 전시는 4월 15일 까지 열리니 3월 마지막 수요일에도 기회는 있습니다! 참고로 저는 이 전시 주최측과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ㅎㅎ 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는 그 외에도 마리로랑생전, 알렉산더 지라드 전이 함께 열리고 있으니 가신 김에 문화생활 하고 오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사족

마지막으로 아쉬웠던 점은 전시의 구성 및 설치 상태 등이였는데요. 작품 해설하는 패널의 상태가 좀... 작품들의 높은 수준과 잘 맞지 않아 보이고 지나치게 눈에 띄는 설명으로 인해 작품보다 자꾸 텍스트로 눈길이 간다는 것이었어요. 상세한 설명은 사실 작품 감상에 도움이 되기도 하기 때문에 좋은 일이지만, 시각적으로 작품을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보다 간략하고 심플하게 넣어 주셨으면 좋았을거라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또한 그렇게 “비싼” 작품이라는 [걸어가는 사람]이 설치된 묵상의 방은, 제목과는 달리 전혀 묵상을 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습니다. 관람객이 많은 탓이기도 하겠지만 여기저기서 터지는 플래시와 어수선한 분위기가 작품 관람과 묵상을 위한 장소라기보다는 작품과 함께하는 포토존의 느낌이었습니다 ㅠㅠ
엄청 많은 도슨트 분들이 일반관람실 안의 작품촬영은 엄격하게 규제하고 있었지만 촬영이 허락된 이곳에서의 행동은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 듯 했어요. 이 작품은 굉장히 어렵게 복원하여 자코메티 재단 밖으로 내보내는 일이 흔치 않다고 하던데, 이렇게 소중한 작품이 손상되기라도 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될 정도여서, 전시실을 나오고 나서도 내내 마음이 좋지 않았습니다.

간략하게 하겠다던 전시 소개 글이 쓰다 보니 좀;;; 길어졌나요 ㅎㅎ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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