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왕산에 올랐다. 쌓인 눈이 모든 소리를 흡수해서 고요하다. 소음에 익숙해서인지 정적이 낯설다. 가만히 귀 기울이니 눈이 내려앉는 소리가 한가득 귀가 간지럽게 들린다. 다방 창가 자리에서 늘 올려다보는 인왕산 기차바위 길에 서서 부암동을 한참 내려다봤다. 아름다운 곳이다.
하산하려니 여러 갈래 길이 나온다. 산을 둘러싼 각각의 마을로 내려가는 길. 남쪽인 사직동 쪽 방면은 무속인들이 많이 찾는 서울을 수호한다는 신당인 국사당이 있다. 서쪽은 홍제동 방면의 개미마을 방면이다. 개미마을은 조만간 개발에 들어갈 마지막 달동네다. 북쪽 방면은 상명대학교 앞 홍제천이 있는 세검정 방향이다. 세검정은 조선 중기 광해군을 폐위시키고 인조를 왕으로 추대한 반군 세력이 거사를 모의하고 칼부림이 끝나고 인왕산의 물로 칼을 씻었다는 곳이다.
인왕산은 기운이 특별한 곳이다. 부암동에서도 예전부터 주민대표가 매년 인왕산에서 제사를 지낸다고 한다. 이틀 연속 눈이 내려 저 멀리 북한산과 바로 옆 북악산이 하얗게 덥혀 장관이다. 올해 겨울은 오늘 다 누리고 내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