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2年生 한 無名氏 의 日記] 4293年(1960年) 2월 23일 - 2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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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23일 화요일 (1.27) 맑음
'졸업식'의 모든 '사'들을 '생'각하며

날씨는 대단히 따사왔다.
장엄한 '졸업식'은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하는 웅장한 노래의 곡조로부터 열리게 되였다.
'졸업식'이라니 내마은 두근두근 거리는 것이고 한편에는 울부짖도록 한탄하지 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다름아닌 현 농촌의 경제 실정으로 보아서 '대학진학'을 하지 못하는 '자'가 얼마나 많은가!!
아니 '대학'을 가야만 하는가? 대학을 아니 가면 '성공'하지 못하는가? 아니다. '대학'을 아니 가더라도 '자기'의 마음에 있는 것이다.
이 넓은 세상에서 '자기'의 불만은 '타인'에게 있는 또는 '부모' 또는 일가 친척에게도 있는 것이 아니고 오직 자기의 가슴 속에 숨어져 있는 것이다.
모든 길은 자기의 가슴 속에 간직하고서 쓸데없이 남을 욕하지만 그렇지 안는 것이다.
사회의 모든 일이라는 것은 '공정'하게 치루지 못함에 원망하지 않으랴...
내빈 축사에 여러 위대한 분들이 올라서서 좋은 말씀에 '자신'의 '전도'에 큰 도움이 되었다.


2월 24일 수요일 (1.28) 맑음
'인생'이 싸움의 결과가 돈이요... 돈은 무의미하지만 큰 필수품이다.

북풍이 휘몰아치든 겨울 날씨도 이럭저럭 꼬리를 감추고 '인생'의 활기를 마음껏 펼수있는 봄이 왔다.
들판에는 겨울을 무섭게 지내면서 움 돋는 이가 하나도 보이지 않드니 요사이는 나날이 활잘하게 자라나고 있는 것이다.
몸서리 치든 겨울 날씨를 보내노니 희망을 이룬듯 봄이 찾아옴에 없는 사람은 매우 좋은 듯 하면서 좋지 아니한 것이다.
'수업 사시간'을 맡치고 집으로 돌아옴에 돈 100환을 '동전'과 바꾸었다.
오면서 친구들과 엿을 한 가락씩 사먹었다. 이것이 나의 처음이었다.
크기도 얼마되지 않는 지금이 불과 1cm 에 이르지 못하는 이것이 큰 역활을 하는 것이다.
이것이 '인생'을 못살게하고 못되게 하고 또 잘 살게 하고 잘되게 하는 이 우주의 모든 일들이 이것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지는 필요한 것이기도 하지만 '인생'에 있어서의 없으면 좋은 것이기도 하다. '동생'들에게 '동전'을 하나씩 나누어 주었더니 '동생'들은 기쁨이 말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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