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행이란 대부분 공간 이동을 뜻한다. 자신이 살 던 곳을 떠나, 새로운 곳으로 간다.
그렇다면 나무들은 어떤가? 다들 알다시피 한 곳에서 평생을 산다. 그럼에도 그들 삶은 내가 보기에 풍요롭다.
우리 식구가 경남 산청에 살다가 전북 무주로 옮겨 올 때, 바로 곁에 살던 이웃집한테 나무 몇 그루를 얻어다가 심은 적이 있다. 자두, 호두, 양애두 나무를. 이 가운데 양앵두를 보면 그 생명력에 허를 내두르게 된다.
이 앵두는 우리 자랄 때 먹어보던 앵두하고는 맛부터 달랐다. 이건 달고 새콤하다. 열매 크기도 조금 더 크다. 나무는 제법 높게 자란다. 얼추 10미터 가량. 그리고는 어마어마하게 열매를 단다.

번식은 또 얼마나 잘 하는 지. 어미 나무가 몇 해에 걸쳐 어느 정도 자라면 그 둘레 가까운 곳에서 새로운 맹아지(어미 뿌리로부터 뻗어 나온 새로운 나무)가 태어난다. 이게 어쩌면 앵두나무만의 여행 방식이 아닐지 모르겠다.
이렇게 맹아지가 나와, 점차 그 둘레를 장악해한다. 처음 심었던 밭 일대는 지금 거의 다 양앵두 나무다. 해마다 봄이면 이 맹아지를 여러 사람들에게 분양을 했다. 아마 줄잡아도 수십 명은 더 되는 거 같다. 그럼에도 지금도 해마다 봄이면 또 나누어주고 있다. 좋은 일은 나무가 하고, 인심은 우리가 얻는다. 더없이 고마운 존재다.
길 가에 심은 양앵두는 또 얼마나 많은 열매를 나누어주는지. 요즘 꽃이 피고, 모내기철에 익는다. 우리 동네 아이들치고 이 열매를 먹지 않은 아이들이 없다고 하겠다. 오고가는 사람들도 인연이 닿으면 손길이 저절로 갈 정도로 탐스럽고 맛나다.
오늘 나무를 돌본다고 이 나무 가까이 갔다. 이제 꽃이 거의 다 져간다. 나무 가까이 다가갈수록 세월의 무게가 켜켜이 다가온다.

그렇다. 시간의 무게! 공간을 옮겨다닐 수 없기에 갖는 나무만의 무게, 나무만의 삶!
시간을 온전히 자기 몸속에 녹여, 공간을 장악해간다. 그동안 이 나무가 만들어 낸 이야기를 글로 풀어내면 아마도 책 한 권이 될지도 모르겠다.
살다가 외롭다면 나무를 안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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