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둘째 날. 오전 내내 수업이 있었던 그날엔 오후가 되어서야 싱가포르 구경을 시작했다
센토사섬은 그때나 지금이나 싱가포르의 관광 포인트로 유명하지만, 사실 막상 가보면 즐길 거리는 별로 없다. 지금은 그나마 유니버설 스튜디오가 생겼지만, 당시에는 커다란 머라이언(Mermaid + Lion) 석상, 실로소 비치, 아쿠아리움을 구경하는 것이 그곳에서 할 수 있는 전부였던 것 같다.
그날은 아침까지만 해도 날씨가 괜찮았지만, 케이블카를 타고 센토사섬에 도착한 직후부터 비가 내렸기에 일단 아쿠아리움인 언더워터 월드(2016년 폐장)부터 구경하기로 했다.


그곳 아쿠아리움은 거대한 수중 터널로 이루어져 있었다. 처음 보는 형형색색의 물고기, 해마, 듀공, 상어가 신비했는지 참 여러 장의 사진을 찍었지만, 어두운 곳에서 찍은 사진이라 모두 흔들리고 이 사진 딱 한 장만 운 좋게 살아남았다.
싱가포르에서의 비는 대부분 짧은 소나기지만, 그날따라 어찌나 비가 오랫동안 내리던지. 수족관 관람 후에도 비가 그치지 않아 결국 센토사 구경은 후일로 미루고 City Hall 역으로 이동했다.

싱가포르에 살면서 마음에 들었던 부분 중 하나는 우산 없이도 생활하기 편했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학교 내부의 버스 정류장부터 건물까지는 지붕이 덮인 복도로 연결되어 있었고, 시내의 주요 건물이 지하도로 연결되어 있었다. 아무래도 비가 자주 오고 덥다 보니 이런 연결 통로가 많이 생긴 것 같다.
시티 홀로 향한 이유도 그래서였다. 시티홀은 쇼핑몰인 선텍 시티, 시티 링크 그리고 두리안을 닮은 복합 문화 공간인 에스플러네이드까지 지하도로 연결되어 있어 비 오는 날 돌아다니기에 안성맞춤이었다.

그러고 보니 언제부터 스스럼없이 케이크를 사 먹게 된 걸까? 요즘은 가격보다는 살찔까 봐 케이크를 사는 것을 주저하지만, 이 당시엔 스타벅스 케이크는 정말 큰마음 먹어야 살 수 있었던 비싼 음식이었다. 먹고 싶었지만 꾹 참았던 케이크를 디저트로 먹었던 데이트 둘째 날.

커피숍에 앉아 시간을 보내고 지하상가를 구경해도 좀처럼 비가 그칠 생각을 하지 않아 정처 없이 걷다 보니 어느새 에스플러네이드에 들어와 있었다. 게다가 이곳엔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도서관과 함께 앉을 수 있는 푹신한 소파가 군데군데 있어 이곳에서 비가 그칠 때까지 마음 편하게 기다리기로 했다.


1번, 2번 모두 같은 건물에서 찍은 사진으로, 1번은 오른쪽, 2번은 왼쪽 사진이다. 첫 번째 사진의 풍경은 현재의 모습과 별다를 바 없는 반면 두 번째 사진은 지금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다.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했던 이곳에는 싱가포르의 대표적인 건축물인 마리나 베이 샌즈 호텔과 가든스 바이 더 베이가 세워졌다.

한참 휴식을 취한 후 넓은 도서관을 돌아다니다 보니 피아노가 있는 작은방이 보였다. 조금이라도 더 잘 보이고 싶었던 나는 피아노를 연주했고, 그땐 그도 열심히 피아노 소리에 귀 기울였다. 그렇게 열심히 듣던 모습은 그날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것을 보면 그도 그땐 조금이라도 더 잘 보이고 싶었나 보다.

한참을 내리던 비는 해가 지고 나서야 그쳤고, 우리는 이곳부터 클락 키까지 걷기로 했다. 비가 오는 것은 싫지만, 비가 그친 후 한층 선명해진 풍경과 냄새는 언제나 좋다.



비가 와서 인적이 드물었던 Read Bridge. 역시 가로등은 LED보다 백열등이 운치 있다.

강바람을 맞으며 시원한 술 한 잔을 즐길 수 있는 클락 키는 언젠가 남자친구가 생기면 꼭 함께 가고 싶던 장소였다. 이곳에서 칵테일 한 잔씩 놓고 한참을 대화하다 집까지 걸어갔던 기억.
그러고 보면 지금처럼 구글맵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어떻게 집까지 걸어갈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다. 오차드에서 집까지의 길은 알고 있었으니, 아마도 싱가포르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오차드 표지판을 따라 걸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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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지 정보
● Sentosa Island, Singapore
● Clarke Quay, Singap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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