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커피 #1. 그리스인 조르바

지난겨울 잠시 집에 들렀을 때 동생에게 추천받은 책이다. 읽을 책 목록에만 적어두고, 사 오는 것을 잊었는데(집에 있던 책을 그냥 들고 올걸 그랬다.) 마침 buk.io에 있어서 스팀으로 구매했다. 스팀을 구매한 적은 있어도 써 본 적은 없는데, 페이아웃 된 스팀으로 결제했더니 오랜만에 직접 번 돈을 써서인지 기분이 묘했다.

자유로운 삶

작가는 화자와 조르바를 통해 어떻게 능동적인 삶을 살아갈 것인지에 대해 고민하게 만든다.

세이렌들의 노랫소리와 흡사한 붓다의 시가 대지에서 올라오더니 내 폐부를 뒤흔들어놓았다. “내 언제 친구 없이 오직 모든 게 다 꿈에 불과하다는 신성한 확신 하나만으로 드디어 사막에 은둔할 수 있을까? / 내 언제 누더기만 걸치고 아무 욕망도 없이 산속에 즐거운 기분으로 파묻힐 수 있을까? / 내 언제 육신이란 게 결국은 병과 죄악, 늙음과 죽음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고 자유롭고 평온하고 행복하게 숲 속에 은둔할 수 있을까? / 언제? 언제? 언제?”

화자는 ‘붓다와 목자의 대화’를 거듭 읽으며 자신의 책 ‘붓다’를 집필하는 사람으로, 정신적인 수양과 무소유에 따른 자유를 갈망한다. 그는 금욕적인 태도와 책을 통한 이해가 그 길이라 믿고 있었지만, ‘책벌레’라는 친구의 한 마디에 인생의 궤도를 바꿔보기로 하고 크레타로 향하던 중 조르바를 만난다.




"보스, 웃으면 안 돼요. 내 말 잘 들어요. 무릇 인간은 수도원에 들어가야만 해방되는 게 아니라 난봉꾼이 되어야 해방되는 겁니다. 보스, 생각해봐요. 악마와 싸워 이기려면 악마보다 더 센 악마가 되어야 하지 않겠어요?”

조르바는 정반대의 사람으로, 결혼은 정직하게 한 번, 부정직하게는 천 번 넘게 했다고 주장하며, 전 직장에선 아무 이유 없이 주인에게 주먹을 휘둘러 쫓겨나기도 했다. 하지만, 불의를 보면 참지 않고 상대를 측은하게 여길 줄 알며, 맛있는 술과 음식을 즐기고, 기쁘면 춤을 추고 산투리(악기)를 연주하는 사람으로 묘사된다.




“새로운 길을 가려면 새로운 계획을 짜야지요! 나는 어제 일어난 일에 대해 생각하지 않고,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도 생각하지 않아요. 내가 관심을 갖는 건 오로지 오늘 지금 이 순간에 일어나는 일뿐입니다. 나는 생각하지요. ‘너, 지금 뭐 하고 있어, 조르바?’ ‘자고 있는데.’ ‘그럼 잘 자!’ ‘지금 뭐 하고 있어, 조르바?’ ‘일하고 있어.’ ‘그럼 일 잘해!’ ‘지금 뭐 하고 있어, 조르바?’ ‘여자랑 키스하고 있어.’ ‘그럼 키스 잘해! 키스할 때는 다른 건 싹 다 잊어버리게. 이 세상에 오직 자네와 그 여자뿐일세. 자, 계속하라고!’”

우리는 일어나지도 않은 미래를 대비하기 위해 열심히 살아야 한다고만 배울 뿐, 삶을 즐기고 휴식하는 법을 배우지 않는다.
얼마 전 남편이 “집에서 쉴 때마다 그 시간에 조금 더 공부해야 업무에서 뒤처지지 않을 것 같아 마음이 불편해.”라고 했다. 일을 덜 즐겼던 나만 그렇게 느끼는 줄 알았는데, 남편도 똑같다고 하니 미안해졌다. 이해가 되면서도 한 편으로는 그 마음을 내려놓지 않으면 과연 어느 시기에 온전히 행복해질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어 쉴 때는 쉬어보자고 답했다.

이런 우리의 삶과는 달리 금방 죽어도 억울하지 않을 듯이 현재를 살아가는 조르바. 본인의 만족을 위해 여기저기서 문제를 일으키는 그는 썩 곁에 두고 싶지 않은 사람이지만, 신기하게도 제 밥값은 하며, 매 순간에 최선을 다하고 즐기는 그의 삶만큼은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화자는 조르바와 생활하면서 진정한 자유가 무엇인지 고민한다. 그리고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새로운 일들을 경험함으로써 자유를 느끼지만 조르바에게 부정당하고 만다.

“아니, 당신은 자유롭지 않아요. 당신이 묶여 있는 줄이 다른 사람들이 묶여 있는 줄보다 조금 더 긴 것뿐이지요. 보스, 그렇게 긴 끈에 매달려 있으니까 이리저리 다니면서 자기가 자유롭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하지만 당신은 그 줄을 잘라버리지 못해요. 그 줄을 잘라내지 못하면······.”
“언젠가는 자를 겁니다!”
나는 허세를 부렸다. 조르바의 말이 내 안에 벌어져 있던 상처를 건드려 나를 아프게 했기 때문이다.
“보스, 그건 어려운 일이에요. 아주 어려운 일이라고요. 그 줄을 자르려면 광기가 필요합니다. 광기가 필요하다고요, 알겠어요? 모든 걸 다 걸어야 해요! 하지만 당신은 항상 머리가 앞서니까 바로 그 머리란 놈이 당신을 잡아먹고 말 겁니다."

조르바는 한 때 남편이었고 아버지였지만, 지금은 정처 모를 방랑자일 뿐이다. 사랑하는 산투리와 자신 외에는 가진 것도 없어 보인다. 스쳐 간 여자는 많았지만, 딱히 마음을 내어 주진 않아 그들과의 이별은 물론 죽음에도 의연한 모습을 보인다. 주인공이 그토록 원했던 무소유에서 오는 자유는 오히려 조르바의 것이다.

나라면 과연 그 줄을 끊을 수 있을까? 우리는 아들딸로, 사회의 구성원으로, 남편과 아내로, 누군가의 부모가 되어 책임감을 느끼고 살아간다. 조르바가 말하는 진정한 자유를 느끼기 위해서는 버려야 할 소중한 것이 너무나도 많다. 나는 현재에 충실하면서, 긴 줄에 묶인 삶을 살고 싶다. 다만, 자유와 물질, 깊은 인간관계 모두를 원하는 이 욕심 가득한 마음을 갖고도 진정 자유로울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극과 극인 두 인물

작가는 두 인물을 왜 이렇게 극과 극으로 묘사했을까? 책 속에서의 화자는 ‘붓다’라는 책을 집필 중이었다. 혹시 하는 마음에 찾아보았는데, 실제 이 작가도 ‘붓다’라는 희곡을 집필했다. 결국 ‘붓다’를 향한 삶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고민하면서 생긴 내적 갈등을 서로 다른 두 인물을 통해 풀어낸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든다.




단점

여성을 비하하는 표현이 많다. 각 인물의 성격을 나타내기 위함인지, 여성에게 참정권이 없던 1940년대 그리스에서 쓰인 소설이라 그런지 알 수가 없다. 그나마 소설 속의 대부분 인물이 무지하고 부도덕하게 그려졌다는 점에서 위안을 얻어본다.


그 외

우리는 육체라는 짐승을 실컷 먹였고, 목도 포도주로 원 없이 축여주었다. 그러자 음식은 곧 피로 변했고, 우리의 내장은 꽉 채워졌으며, 세상은 아름다워졌다. 그리고 우리 옆에 있는 여자는 눈에 띄게 젊어지고 주름도 사라졌다. 가슴팍만 노란 초록색 앵무새는 우리 앞에 매달린 새장 속에 들어 있다가 고개를 숙이고 우리를 내려다보았는데, 때로는 마법에 걸려 모습이 바뀐 사람처럼 보이기도 했고, 때로는 초록색, 노란색 옷을 입은 늙은 퇴물 여가수처럼 보이기도 했다.

우리는 집 밖으로 나왔다. 별들이 꼭 라이터 불꽃처럼 하늘에서 반짝거렸다. 은하수가 하늘 이쪽 끝에서 저쪽 끝으로 흘렀다. 바다는 거품을 내며 부글거렸다.

나는 바위 그늘에 누워 멀리 평야와 바다를 바라보았다.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 공기에서 샐비어와 백리향 냄새가 향기롭게 풍겼다.

장면 하나하나, 풍경, 향기에 대한 묘사가 섬세해서 그 장면들을 실컷 상상해 볼 수 있었다. 영화도 있지만, 가장 잘 만들어졌다는 작품은 아쉽게도 흑백 영화라고 한다. 그만의 장점이 있겠지만, 색채를 담을 순 없을 것이기에 아쉽다. 언젠가 이 책이 향기까지 동반한 영화로, 또는 향기를 가진 연극으로 만들어지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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