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커피 #2. 조화로운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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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렌 니어링, 스코트 니어링 부부에 의해 1954년 쓰인 책이다. 얼마 전 대학교 시절 단짝으로부터 생일 선물로 받은 책인데, 읽다 보니 내가 원하는 생활과 맞닿아 있어 이렇게 몇 년간 대화 한번 제대로 나누지 않아도 마음이 서로 통할 수 있다는 점이 신기했다.

  1. 일을 해서 삶의 기쁨을 키워나갈 수 있는 환경을 찾는다.
  2. 날마다, 달마다, 해마다 많은 부분을 자유 시간으로 갖기를 원한다.
  3. 먹고 사는데 필요한 것을 절반쯤은 자급자족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저자는 세계 대공황 이후, 1932년에 위와 같은 삶을 목표로 버몬트주의 윈홀이라는 마을로 향했다. 그곳에서 밭을 일구고, 손수 집을 짓고, 단풍 설탕을 만들어 수익을 발생시키고, 자유 시간에는 글을 쓰고 여행을 다녔다고 한다. 집을 어떻게 지었는지, 계절에 따른 농사 짓는 순서 등도 기술되어 있어 흥미로웠다.


“4백 평도 안 되는 밭에서 쌀과 보리 따위의 곡식 말고도 여섯 사람이 먹기에 충분한 온갖 먹을거리를 거둘 수 있었다.”

나는 한때 귀농하고 싶은 생각이 가득했다. 사실 자세한 땅값도 알아보지 않았기에 갈 형편이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당시에는 매실로 유명한 하동이 그렇게 좋아 보였다. 하지만 회사를 그만두고 무턱대고 갈 수는 없기에 일단 5평짜리 주말농장을 체험했다.

5평은 생각보다 컸다. 우리는 배추, 상추, 잎 브로콜리, 쌈케일, 케일, 양배추, 겨자채, 토마토, 방울토마토, 대추 토마토, 가지, 고추, 꽈리 고추, 애호박, 오이, 감자, 고구마, 옥수수, 캐모마일, 루꼴라, 고수, 오레가노, 들깨, 완두콩, 서리태, 그리고 뭔지 모를 쌈채 하나 더 까지 26개 작물을 수확했다. 매주 주말마다 처치 곤란일 만큼 많은 채소를 가져오는 건 정말 재밌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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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4백 평이라니. 너무 큰 거 아닌가 했지만, 돌이켜 보니 우리가 심은 건 배추와 양배추를 제외하고는 거의 나무처럼 자라는 것들이었다. 심지어 상추도 마지막엔 70cm 정도까지 자랐으니까. 결국 무, 당근, 배추 이렇게 하나하나 심어서 뽑아 먹을 작물은 넓은 땅이 필요한 것이다.


지금 집으로 이사를 온 후, 주말농장에서 토마토와 가지가 무섭게 잘 자랐던 것을 기억하며 정원에 토마토와 가지를 심었다. 하지만 땅이 맞지 않는지, 온도가 맞지 않았는지, 또는 우리가 비료를 제대로 주지 않아서인지 가지는 딱 3개 정도 열리고 끝나버렸고, 토마토는 어느 겨울바람이 많이 불던 날 모두 쓰러져버렸다. 그 이후엔 거의 포기하고 꽃나무와 오렌지 나무, 타이 레몬 나무만 키우고 있었다. 그런데 책을 읽는 내내 그들의 삶이 부러웠고, 특히 아래의 구절을 읽는 순간 나도 다시 작은 텃밭을 일구고 싶은 마음이 가득해졌다.

"땅이 균형을 되찾을 때까지는 그 땅에서 자라난 곡식 또한 균형을 잃은 식물이 될 것이다. 이 식물을 누군가 먹어 그 불균형이 소비자에게 옮겨 단다면, 보통의 기준으로는 ‘좋은 음식’을 먹었다고 하겠지만, 그 사람의 건강은 결코 좋아지지 않을 것이다."

꽃나무와 타이 레몬 나무를 바깥 정원에 심었을 땐 대부분 1m 정도였는데, 어느새 2~2.5m 높이로 자라버렸다. 나무가 커버리고 나니 그늘이 져서 바깥 정원에 무엇인가 더 심는 것은 무리라는 생각에 실내 정원으로 눈을 돌렸는데, 그간 우리가 잊고 있었던 땅이 생각났다. 처음 이사 왔을 때, 좁기도 하거니와 땅 상태가 엉망이라 인조 잔디로 덮어버린 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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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조 잔디를 벗겨내자 왜 덮었는지 알 것 같은 원래의 땅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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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화분에 키우던 밀키웨이 꽃을 이곳에 옮겨심으려고 땅을 팠는데, 엄청난 양의 자갈이 흙과 함께 나왔다. 배수에는 도움이 될지 몰라도 돌이 있으면 뭘 심어도 제대로 자랄 것 같지 않아 일단 흙을 거의 파 보았는데, 전 주인이 자갈을 한 무더기 넣은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시멘트와 모래가 엉겨 붙은 흙이 여기저기 뭉쳐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집을 지은 후 제대로 버리지 않은 채 정원이랍시고 위에다 모래를 부은 것 같았다. 아무리 자갈이 있어도 자갈과 함께 엉겨 붙었기 때문에 여전히 배수는 되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거의 다 파내고 자갈도 꺼낸 다음, 기존에 있던 모래와 새로 산 흙을 섞어서 깔고 맨 위층은 새로 산 흙으로 덮었다. 이후에 물을 줬더니 아주 잘 내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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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과 같이 이 좁은 땅에서 화분 2개를 가득 채울 만큼 많은 자갈이 나왔다. 순무, 콜리플라워, 루꼴라, 당근, 애호박 싹을 틔우는 중인 데 성공했으면 좋겠다.


지금도 한국에 돌아가고, 만약 남편이 수도권에서 일하지 않아도 되는 때가 된다면 지방으로 내려가서 텃밭을 일구며 살고 싶다. 그래도 곡식 농사까지 짓고 싶은 마음은 없으니 400평이나 되는 큰 텃밭은 필요 없으리라 생각된다. 목적지는 하동이 아닌, 해안가로. 나는 회를 너무나 좋아해서 산골에는 살 수 없을 것 같다.

"어떤 공동체든지 외부에서 온 사람들에게 공동체의 법을 따를 것을 요구하고, 그곳의 풍습과 인습을 받아들이길 바란다. 그리고 자기 자식들 말고는 낯선 곳에서 침입해 온 어느 누구도 정다운 이야기를 나누는 난롯가에 다가오는 것을 반기지 않는다. 외진 데 있는 작은 마을일수록 이런 애향심이 다른 어떤 생각보다도 앞서곤 한다.”

한때 귀농 카페에 가입되어 있었는데, 실패 원인 중에 현지 사람들과 적응하지 못했다는 이유가 많았다. 하지만 그것은 한국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었나 보다. 이런 부분은 걱정되지만, 어차피 내가 준비할 수 있는 부분도 아니고 미래 사회가 어떻게 변할지 모르니 일단 그럴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만 있어야겠다. 니어링 부부는 현지 사람들과 서로 일을 돕고, 집에서 모임을 하는 것으로 이를 극복한 것 같지만 1~2년 내로 얻었던 것은 아닌 것 같다. 게다가 한국과는 달리 미국의 시골은 집 사이 간격이 워낙 멀기에 아예 다른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그때 미국 경제는 생활필수품에 만족하고 나면 바로 안락과 편리함을 주는 물건에 관심을 돌리고 그다음에는 호화 사치품에 눈길을 돌리도록 사람들을 부추기고 있었다. 그렇게 해야만 이윤을 남기는 것에 기초를 둔 경제에서 이윤을 더 많이 얻는 데 필요한 경제 팽창을 기대할 수 있고 새로운 산업에 투자한 사람들도 들인 돈을 건질 수 있기 때문이었다.”

대학생 때 친구가 살던 원룸에서 함께 자취하게 됐는데, 돈이 없어 두께가 0.5cm도 안 되는 이불을 깔고 지냈다. 필요한 그릇은 이마트에서 샀고, 옷은 잘 안 사기도 했거니와 사더라도 동대문에 갔다. 그땐 정말 필요한 필수품만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취업을 하고 돈을 벌고 나니 같은 목적의 물건이라도 조금 더 비싸지만, 품질이 좋고 예쁜 것을 사게 됐다. 혼자 살기에, 둘이 살기에 필요하지 않은 물건도 혹시 모를 손님의 방문을 위해 샀다. 그리고 좀 더 지나니 구두, 옷, 가방이 눈에 들어왔다. 그 예쁜 물건들이 필요하지 않다는 얘기는 아니다. 꾸미고 나가는 게 기분 전환하는 데 도움이 되기는 하니까. 하지만 남과 비교해가며 더 늘릴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삶을 넉넉하게 만드는 것은 소유와 축적이 아니라 희망과 노력이다.”

공감되면서 한편으로는 공감되지 않는 이야기. 일단 나는 텃밭이 있는 내 집을 얻기 위해 돈을 축적해야겠다.


이들은 1932년, 1,100달러로 버몬트주의 윈홀에 8만 평의 땅을 샀다. 8만 평도, 당시의 1,100달러도 감이 오지 않아 조금 더 검색해보았다.

  • 8만 평의 크기는 서울시립대 캠퍼스 정도의 크기이다.
  • 물가 상승률 계산기에 따르면 당시 1,100달러는 지금의 20,234달러 정도이다. 예상보다 싼 값에 토지를 구매했다.
  • 현재 판매 중인 윈홀 마을의 토지 가격을 확인했는데, 약 5만 평의 땅이 159,000달러에 나와 있으니 8만 평은 250,000달러 정도 할 것 같다.
  • 다우존스지수를 확인해보면 1932년엔 1,100 정도였던 지수가 지금은 25,000 정도이다.

조화로운 삶을 원하며 읽고 있었는데, 갑자기 이들의 선견지명이 부러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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