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의 여행] 세잔의 수욕도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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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에 도착하자마자 내셔널 갤러리로 직행했다. 너무 많이 걸려 있었고, 너무 많이 봤고, 또 모든 감상을 다 적을 수도 없다. 그 넓은 곳에서 내가 본 단 하나의 그림만 말하고 싶다. 세잔의 <수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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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젤을 메고 밖을 나가다 쓰러져 죽기 전까지 10년 가까이 말년의 세잔이 그리고 그리고 또 고쳐그렸던 그림

얼핏 보면 정말 어설프고 못 그린 그림, 다른 세잔의 그림이 그렇듯 스쳐지나가기 정말 쉬운 그림

지나갔다가 한번 왠지 뒷걸음질치게 되며 자세히 오랜동안 보다가 결국은 빠져버리게 되는 그림

그러나 왜 저 그림에 빠지게 되었는지 스스로 그 원인의 출처를 몰라 그것을 찾으려고 화면 여기저기를 둘러보지만 결국 실패하고야 마는 그런 애매한 그림, 수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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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에 세잔을 좋아했지만 사실 도판으로 보는 수욕도는 별 느낌이 없었다. 직접 보니 이 그림은 정말 한달 내내 보아도 질리지 않을 것 같다. 그러나 냉정하게 평가하자면 사실 이 그림은 관객을 감각적으로 사로잡는 것도 아니고, 색채가 화려한 것도 아니며, 전통적으로 잘 그린 그림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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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도대체 무엇이?



화가로서 기본적인 해부학조차 공부했는지 의심스러운 저 당황스러운 인체의 형상들, 그리다가 대충 어두운 색으로 묻혀 사라진 손가락들, 심하게 부자연스런 자세로 마치 나무막대기처럼 나란히 등 돌리고 있는 두 명의 뒷모습들, 갑자기 거인세상에 난쟁이라도 출현한 듯 보이는 오른쪽에 어이없이 작게 그려진 인체의 옆모습들, 10년동안 그렸다고 하기엔 저 군상들 중 하나도 제대로 그려진 게 없고 물감으로 대충 뭉개진 각각의 얼굴들..지적을 하려면 정말 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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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엇인가 모를 요소들이 날 여기 붙잡아두고 지속적으로 쳐다보게 만들며 이렇게 글을 쓰게 한다.

확실히 세잔은 저기서 사람을 그린 것이 아니다. 진부한 표현으로는 그저 자연의 일부로 인체를 사용했을 뿐이고, 세잔의 입을 빌리자면 그는 감각을 그린 것이다. 개별 형상들을 자세히 보았다. 파란색 외곽선으로 끊임없이 수정된 개별 형상(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는)은 그야말로 어디 하나 흠잡을 데가 없이 완벽했다. 비록 종아리에서 뜬금없이 발바닥이 나오고 있지만 그 모습조차 하나도 빈틈이 없고 견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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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느낌을 어떻게 언어로 표현해야될지 모르겠다. 빈틈없고 견고하며 마치 가드를 잔뜩 올린 권투선수 앞에서 어딜 공격해야 하는지 모르는 상황처럼 이상하리만큼 그림 앞에서 압도된다.

누군가 이 그림에서 인체비례의 어색함과 고전주의적인 관점으로 완성도의 부족함을 지적한다면 완벽히 잘못된 감상일 것이다. 인체는 사람의 재현이 목적이 아니라 어떤 초월적인 자연을 이상화시킨 사물에 불과하며, 오히려 세잔이 바라는 건축의 자재로 이용되었다라고 표현하는 것이 어울릴 듯 하다. 미술관을 올 때마다 이 불친절하고 어려운 화가에게 매번 사로잡히게 된다.




@thelum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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