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 오늘부터는 @joceo00 님이 개최하는 제2회 천하제일연재대회에 참여하며 <야구, 몰라요>와 <코인, 몰라요> 시리즈를 연재합니다.
“야구, 몰라요”는 하일성 전 야구해설위원의 유행어입니다. 드라마틱한 역전이 있을 때나 본인 예측이 빗나갔을 때 “아~ 야구 정말 몰라요”라며 자주 쓰던 말인데요. 쉽게 예측이 불가한 야구판이나 코인판에 잘 어울리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야(구)알못, 코(인)알못인 저의 시점에서 잘 모르는 이야기를 열심히 써보도록 하겠습니다.

‘테이블 세터’나 ‘클린업 트리오’와 같은 말을 들어보셨나요? 1번, 2번타자를 테이블 세터라고 부르는데요. 밥상을 차린다는 겁니다. 3번, 4번, 5번 클린업 트리오는 차려진 밥상을 싹쓸이하는 역할인거죠.
전통적으로 테이블 세터, 특히 2번타자는 대체로 타격능력이 조금 떨어지더라도 빠르고 작전수행능력이 좋은 선수들이 맡아 왔습니다. 더욱이 과거 2번타자는 1번타자가 안타나 볼넷으로 출루하면 희생번트로 주자를 진루시키는 것이 주요 임무처럼 여겨지기도 했고요. 이에 비해 클린업 포지션에는 한 팀에서 가장 잘 치는 타자 3명을 배치하고요. 그 중에서도 4번타자는 오랫동안 팀 내에서 가장 뛰어난 타자, 홈런 한 방을 기대할 수 있는 해결사의 자리로 여겨져 왔습니다. 4번타자 왕종훈이라는 만화도 있잖아요?

그렇다면 정말 오래된 통념대로 테이블세터와 클린업 트리오를 배치하는 게 실제로도 가장 이상적인 타순일까요?
더 이상 세이버메트릭스가 비주류가 아닌 메이저리그에서는 그러한 통념이 깨지고 있습니다. 메이저리그에서는 마이크 트라웃, 애런 저지 같은 리그를 대표하는 슈퍼스타, MVP급 타자들이 2번타자 역할을 수행하는 것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습니다. ‘강한 2번타자’라고 부르기도 하는, 이러한 타순 구성 역시 야구통계지표 분석(세이버메트릭스)의 산물입니다.

야구는 9명의 타자들이 순서를 번갈아가며 한 번씩 타석에 들어서고 공격의 기회를 얻는 게임입니다. 똑같은 9명의 선수로 구성할 수 있는 모든 경우의 수를 시뮬레이션했을 때, 최선의 타순이 최악의 타순보다 한 시즌 기대 승수가 2승 가량 높다고 합니다. 별 것 아닌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같은 선수자원으로도 2승 가량 승수를 더 올릴 수 있다고 한다면 타순을 짜는 것 역시 코칭스태프가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일 것입니다.
타순을 짜는 데 있어 가장 간단한 룰 하나는 상위타선(1~5번)에 강타자들을 배치하고 하위타선(6~9번)에 비교적 약한 타자를 배치하는 것입니다. 왜일까요? 9명의 타자들이 순서를 돌아가며 한 번씩 치다보면 9번타자는 대체로 1번타자보다 경기당 한 타석씩 적게 치기 마련입니다. 겨우 경기 한 타석 차이지만, 전체 시즌으로 보면 100 타석 이상 차이가 나게 되죠. 1번은 2번보다, 8번은 9번보다 평균 15번 가량 더 많이 타석에 들어선다고 합니다. 조금이라도 더 뛰어난 타자가 기회를 많이 얻는 것이 팀 득점에도 도움이 되겠죠?
잘 치는 타자가 더 많은 타석에 들어서게 하는 것 외에 한 가지 더 고려해야 할 게 있습니다. 주자가 있을 때(타점의 기회가 있을 때) 잘 치는 타자가 나오는 것이 득점할 확률이 더 높다는 겁니다. 실제로 4-3-5-2-6번타자 순으로 주자가 있을 때 타석에 들어서는 경우가 많습니다.
위 두 가지만 알아도 확신할 수 있는 것은 2번타자가 통념보다는 훨씬 중요한 자리라는 겁니다. 타격능력이 조금 떨어지더라도 빠르고 작전수행능력이 좋은 선수가 맡을 자리가 아니라 그냥 잘 치는 타자가 맡을 자리라는 거죠. 적어도 2번타자가 6번타자보다는 잘 쳐야 이상적인 타선일 것입니다. 하지만 아직까지 한국야구에서는 2번타자보다는 6번타자가 강타자인 경우를 많이 보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두 가지 기준(많은 타석과 많은 타점 기회)을 함께 고려하면 1번-5번 중 어느 자리가 더 중요할까요? 특히 2번타자는 설마 4번타자보다도 더 중요한 자리일까요?
세이버메트리션 톰 탱고는 RE24(24가지 주자-아웃 상황에서의 기대득점)라는 세이버메트릭을 이용해 ‘가장 아웃되어서는 안 될’ 라인업 순서를 규정했습니다.
RE24는 무사, 1사, 2사 3가지 아웃 상황과 주자없음, 1루, 2루, 3루, 1+2루, 1+3루, 2+3루, 만루 등 8가지 주자 상황까지 총 24가지 가능한 시나리오를 토대로 기대득점을 계산하는 세이버메트릭입니다.
1-4-2-5-3-6-7-8-9
위와 같은 기대득점 높은순으로 ‘이상적인' 타선을 짠다면, 팀 내 최고의 타자 3명이 1번-4번-2번에 출루율은 높고 장타율은 낮은순으로 배치되어야 한다네요. 그리고는 네번째로 잘 치는 타자는 5번, 다섯번째로 잘 치는 타자는 3번, 이런 순서로 배치해야 한다는 겁니다. 굉장히 의외이지 않습니까? 2번타자가 4번타자보다 장타율이 높아야 한다니. 그리고 2번타자 자리에는 5번이나 3번보다 좋은 타자가 들어서야 한다니 말입니다.

2번타자는 4번타자만큼이나 중요하다는 이론을 토대로 한 건지, 올 시즌 KT 강백호, KIA 버나디나 등, 한국야구에서도 ‘강한 2번타자’가 시도되고 있습니다. 앞으로는 과연 더 많은 구단이 세이버메트릭스를 받아들여 더 많은 ‘강한 2번타자’를 선보일지도 기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