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개발자였다.
10년 가까이 일했고 어느 정도 미래도 보장되어 있었기에 갑자기 퇴사를 선언했을 때 주위 대부분은 내가 이직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타인에게 피해를 주거나 무시당하고 싶지 않았던 나는 무슨 일이든 열심히 해낼 수밖에 없었고, 결과가 좋아서인지 일이 끊임없이 쏟아졌다. 인정받는 것은 좋았지만, 차츰 내 삶이 없어졌고 건강은 당연히 뒷전으로 미뤄졌다. 몸이 건강해야 마음도 건강할 텐데, 계속 일만 하다 보니 번아웃 증상이 왔다. 작은 소음에도 예민해져 대형 마트에 가는 것이 꺼려졌고, 어린아이들 목소리만 들려도 신경질적으로 반응하게 되었다. 불면증에 시달리며 전화벨 소리만 나도 무슨 일이 터졌을까 노심초사했던 나는 결국 퇴사를 선택했다.
어제는 선택의 기로에 섰던 날이었다. 그리고 기존에 하던 일에 더는 미련이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일할 당시 내 주위엔 틈틈이 최신 기술을 찾아보고, 집에 와서도 개인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진정으로 일을 즐기는 그들을 보며 만약 나도 퇴사 후 스트레스가 줄어들면 그렇게 살 수 있을까 싶었지만, 지난 2년을 돌아보건대 나는 그간 전공 관련 그 어떤 글도 읽지 않았다. 더는 좋아하지 않는 일로 일과의 대부분을 보내고 싶지 않다.
원래 스팀잇을 시작하면서 생각했던 나의 주제는 여행과 요리였다. 그런데 대부분의 이야기가 일상, 고양이, 사진으로 채워지고 있다. 운 좋게 마나마인에 작가로 동참하게 되었는데 이 주제를 모두 다 쓰기에는 너무나도 나라는 브랜드에 대한 일관성이 없게 느껴진다. 어떤 식으로 접근해야 많은 사람이 준비한 프로젝트에 폐를 끼치지 않을 수 있을지, 첫 글을 어떤 주제로 시작해야 할지, 어떻게 해야 내가 계속 즐거울지 고민이다.
나는 아직 새로운 진로를 정하지 못했다. 하지만 어떤 목적지에라도 한 걸음 더 다가가는 중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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