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적부터 어떤 고민거리가 있을 때 유독 부모님과 대화의 시간을 많이 가졌다. 그러지 못했다면 정말로 책만 보고 자라났을 테니까, 다행이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사춘기 때는 교우관계에 대해 부모님과 이야기를 깊이 하지 않는 편이 일반적인 것 같은데, 나는 마치 친구와 이야기하듯이 세세하게 다 털어놓곤 했었다. (환경이 외국이어서도 그랬고 집안에 어떤 극한 상황이 종종 닥쳐왔기 때문이기도 했는데, 지금 하려는 이야기는 아니다.)
어쨌든 그 덕분에, 당장은 받아들일 수 없었지만 생채기를 남기지 않고 많은 일들을 소화할 수 있게 해주는, 그런 조언을 자주 접할 수 있었다. 꼭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하라는 내용은 아니었지만, 그런 시간을 가졌다는 사실 자체가, 스스로 거의 전적으로 정당하다 생각했던 확신을 흔드는 계기를 가져다 주었다. 그냥 이야기를 하다 보면 절로 내 속의 여러 복합적인 감정들과 일찍 마주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가령 다른 아이가 미우면 당장 머리카락을 쥐어뜯고 싸우고 싶었지만, 그렇게 하는 대신에 상대방이 그렇게 비열하게 굴 수밖에 없었던 심정이라던가...하는 것 등을 비교적 일찍 이해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물론 그렇다고 싸운 적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와 갈등이 있을 때마다, 처음에는 당연히 내가 더 피해자이고, 내가 더 화나는데 왜 저딴 인간을 이해해야 하나는 생각이 컸다. 하지만 나에 대해 생각을 하는 시간, 이야기를 하는 시간을 거의 항상 가졌기 때문에, 그런 감정이 계속해서 자신을 괴롭히는 분노로 남게 된 적은 없다. 분한 감정을 곪아터지도록 둔 적이 없으니, 마음에 들지 않는 상황에 대해서도 웃음 포인트를 찾기 어렵지 않게 되었다.
물론, 사춘기의 갈등이라 해봤자,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확신이 부족하거나 고질적인 열등감을 극복하려 애쓰는 아이들 사이에서 발생하는 갖가지 자존심과 치정 싸움, 그 이상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속에는 성인이 되어서도 일어날법한, 묘한 감정적 갈등의 요소들이 다 있었다고 생각된다.
그런데 내가 거의 가해자에 가까운 입장이라고 여겨지는 경우에 대해서는, 당연히 그렇게 바로바로 솔직하게 부모님에게 이야기하기 힘들었다. 10대의 무늬뿐인 문명으로 포장한 약육강식의 사회에서, 나는 운이 좋은 쪽이었다. 내가 싫어하고 또 나를 싫어하는 인물들이 있었을 뿐, 갈등하는 축들의 힘은 항상 비등했고 따라서 일방적으로 억울하게 당한 일은 없었다. 그 속에서 그냥 자신의 안녕만 도모해도 되었을텐데 더 나아가 내 위치를 과시하느라, 불안한 상태의 아이들에게 간접적인 괴로움을 끼친 적도 많았을 것이다. 이런 일들에 대해서는, 한참 시간이 흐르기까지 부모님에게는 물론이고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했다. 스스로의 행동이 최선이었다는 확신이나 자신감을 가질 수 없었던 경우들이었다.
꼭 엄청나게 부끄럽다거나 죄책감이 무겁게 느껴질 정도는 아니라 해도, 내 행동이 최선이었다는 확신이 없는 경험은 꽤나 찝찝한 감정을 남기게 마련이다. 물론 그 자체도 내 일부이자 과거로 수용을 한다. 심지어, 경우에 따라서는 약간의 자랑스러움도 있을 수 있다. 최선으로 행동했다 생각하진 않더라도, 무 자르듯이 선악을 가를 수 없는 상황에서 나름대로 나다운 대처를 했다거나...하는데서 위안을 찾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위안보다는, 당시의 나의 감정과 행동의 근거가 무엇이었을까 생각해보는 일이 더 많다.
내가 스스로 내 행동을 최선이었다고 자신하기 힘든, 그런 기억을 가끔은 기록해보기로 한다. 자연스레 떠오른 일화들이 아니라, 평소에도 가끔 느껴지는 막연한 찝찝함 때문에 의식하고 있는 경험에 속한다. 그런 경험 자체가 내게는 상당히 예외적이므로, 과잉 정보 t.m.i.로 분류하기로.
오늘은 누군가에게 돌직구를 던진, 그러나 딱히 시원하다고 할 수는 없는 기억에 대해 써보기로 한다.
한국에서 대학원에 다니게 된 때의 일이다. 다른 과의 석사과정생이 내가 속한 과에서 수업을 듣게 되었다. 대학원마다, 그리고 과마다 다르겠지만, 고작 서너 명의 인원이 둘러 앉아서 각자 준비해온 발표를 하는 방식이다. 그런데 이 타과 학생은 정말 심하게 수업에 방해가 되었다.
학생이 조금 엉뚱한 소리를 하거나, 스스로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른다고 여겨지는 경우에는 교수님이 질문을 해서 확인을 하곤 했는데, 그녀가 준비해온 발표는 도저히 진행이 되지가 않았다. 다루는 내용은 고사하고 용어 하나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고, 따라서 교수님이 질문을 한번 하면 침묵으로 몇 분씩 흘려보냈기 때문이다.
그녀는 읽어와야 하는 원서의 내용을 구글번역기로 돌려서 써오곤 했는데, 상식적으로 이상한 표현도 걸러내지 못한 채로 갖고 왔다. 가령 In general(일반적으로)을 "장군 속"이라거나, undermining(기반 약화)을 "밑을 파기"로 적어와놓고는 스스로 아무런 문제점을 찾아내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냥 제출하고 마는 것도 아니고 본인이 발표를 하는 내용이 이런 용어들로 점철되어 있었다. 이 정도면 영어의 문제가 아니라 책에 그런 내용이 있을 리가 없다는 사고 자체가 안 되는 수준이었고, 그것은 학부생이라 해도 이해할 수 없는 행태였다. 그 학생은 분위기가 얼어붙자, 수업 전에 간식이나 스타벅스 커피 등을 사와서 돌리곤 했지만, 수강생들의 짜증을 그런 식으로 풀 수 없었다.
그 학생이 속한 과에는 나와 제법 친해진 친구도 한 명 있었다. 그 친구에 따르면, 문제의 그 학생은 학부때부터 그랬고 강의 시간에는 항상 엉뚱한 질문과 답변을 일삼았는데, 이상하게도 과 교수 한 명이 그녀가 굉장히 기발하고 똑똑해서 아무도 이해 못하는 말들을 한다는 의견을 가졌고, 그 때문에 증거는 전혀 없지만 원래 똑똑해서 특이한 아이 정도로 이미지가 생성되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교수의 견해 때문에, 그 학생은 대학원에 진학해버린 것이었다. 물론 문제의 그 교수의 지도를 받기로 하고. 대학원에서는 그 교수도 그 학생의 정체(?)에 대해 서서히 눈치를 채기 시작한 것 같았지만, 다른 과에까지 와서 민폐를 끼치는 것에 대해 직접적인 저지를 하지는 않고 있었다.
설상가상으로, 그 학생은 내가 타 대학원까지 가서 듣는 출장(?) 수업도 같이 수강했다. 그나마 우리 과 수업은 발표 차례라도 있었지만, 타 대학원 수업은 매번 전원이 발표하는 형식이었기 때문에, 그 학생이 끼치는 민폐의 정도는 점점 심해져갔다. 한 책을 나눠서 발표하는 것이어서, 그 학생이 수업시간마다 만드는 빵꾸(?)란 실로 대단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 학생이 없는 곳에서 모두가 그녀를 욕하기에 바빴다. 모두에게 일이 더 생기도록 하는 장본인이었고, 꾸물거리는 시간들이 쌓여, 학기의 마지막 수업까지 뒤로 밀릴 정도였기 때문이다. 그보다 더 모두를 화나게 한 것은 그녀가 그렇게 엉망으로 준비를 해오고, 교수의 질문에 답하지 못해서 시간을 엄청나게 잡아먹는 것에 대해, 수업이 끝나면 아무런 눈치도 채지 못한듯이 행동한다는 사실이었다. 그 학생 때문에 수업이 늦게 끝나는 것은 예사였다. 내가 속한 과 수업에 간식 등을 사온 것을 보면 눈치가 그래도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어쩌면 우리 교수님이 무서워서였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이 들었다.
참다 못해 나는, 아무런 눈치도 없어 보이는 그녀를 데리고 카페에 갔다. 그녀는 단순 친목을 위해서라고 생각할 정도로 눈치가 없어 보였다. 그때가 학기가 거의 끝날 무렵이었으니, 현재 이 순간과 맞물리는 초여름의 계절이었다. 거기에서 나는 떠오르는 말들을 곧바로 해버렸다.
"당신 같은 사람이 왜 대학원까지 왔는지 모르겠지만, 도저히 기본적인 수업을 수강할 능력이 있다고 볼 수 없다. 아무리 노력해온다고 해도 기본이 너무 안 되어 있고, 머리 자체가 그럴 수준이 안 된다고 볼 수밖에 없다"고.
사실 더 둘러서 이야기하지 못한 이유는 그녀가 학부 시절부터 자신을 오해하고 과대평가(?)한 교수의 말을 철썩같이 믿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본인은 천재적인데 좀 엉뚱할 뿐이라는, 뭐 그런 식의 생각. 본인이 항상 잠이 부족할 정도로 시간을 쏟으면서조차 모두가 기본적으로 어느 정도는 해오는 발표 준비를 해내지 못했는데도, 본인은 사실 많은 노력을 필요로 하는 타입이라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 학생은 계속 그런 식으로 꾸역꾸역 학기는 마쳤지만, 그 후로 볼 수는 없었다. 그녀가 모두를 위해서 그만 마음을 접고 떠났길 내심 바랐지만, 나 자신이 과정을 마쳐버렸기 때문에 확인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녀에 대한 소식은 조금 나중에 듣게 되었다. 다시금, 그 학생과 같은 과에 있는 내 친구를 통해서였다. 그 학생은 결국 논문을 쓰느라 계속해서 남았는데, 지도 교수도 그녀의 실체(?)를 알게 된 상태였고, 논문 주제를 쉽게 정할 수도 없었다고 한다. 사실 당연한 일이었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내 친구의 논문 프로포절 이후에, 그 학생은 내 친구가 자신의 논문 주제를 표절했다는 주장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 외에 다른 과정생들에 대해 계속 그런 식의 주장을 했고, 나중에는 타인이 자신의 글을 훔쳐갔다는 주장까지 하고, 환청이 의심되는 정도의 발언들을 계속 했다고 한다. 그냥 들어보기에도 정신 질환의 단계로 이미 넘어간 것이었다. 혼잣말도 심해졌고, 결국 건강을 이유로 교수가 조치를 내려야 했다고.
아마도 그녀는 그런 질환을 이미 안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그토록 산만하고, 지능이 있는 것인지 의심이 가는 행동들을 하고, 소위 명문대에 입학했으면서 그에 도저히 맞지 않는 수준을 보였을 것이다. 그렇게밖에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녀가 그렇게 스스로 착각하고 대학원을 진학하게 만든 교수는 애초에 상당히 가벼운 마음으로 그녀를 칭찬했을런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그녀에게 직접적으로, 그녀에게는 받아들이기 힘든 가혹한 말들을 한 것이 어떤 계기가 되지는 않았을까, 가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때 내가 그렇게 한 것은 그 학생이 너무나도 눈치가 없어 보여서, 나와 다른 수강생들의 답답함을 대변하고자 한 일이었는데, 그토록 짜증나게 한 사람을 확실히 좌절시켜서라도 내보내고 싶었던 마음이었다. 그 학생이 노력을 더 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고육지책(?)외에 내가 개인적으로 느껴온 우월감과 멸시가 섞여 있었음 역시 분명하다. 비교하고 싶은 수준이 아니었기에 딱히 비교하면서 생기는 우월감은 아니었다 하더라도, 어쩔 수 없이 모두에게 무능함을 드러내버린 학생에게 달리 그것 외에 다른 감정이 생길 리도 없었다.
모르겠다. 내 책임이 아니라고 생각하면서도, 그리고 그녀 때문에 충분히 짜증나는 시간들을 많이 보냈음에도, 만약에 그렇게까지 될 줄 알았다면 아마 조금 다른 식으로 이야기했겠지. 어쩌면 참았을 수도 있을 것이고. 아니, 아마 참지는 못했을 것 같고...만약에 지금 그런 경우를 만났다면, '그래봤자 자기만 손해지' 하는 마음으로 느긋하게 관망했을 수 있었을려나 모르겠다. 공부에 대해 한창 재미를 붙이고 있던 당시와 지금의 여유로운 마음가짐을 비교할 수는 없기 때문에, 확언할 수는 없다.
어쩌면 내가 가장 참지 못했던, 그리고 지금까지도 참지 못하는 것은 답답함일지도 모르겠다. 언젠가 기록했던 10대 시절의 일화에서 에밀리라는 아이에게 느꼈고 그래서 그녀를 내팽개쳤던 이유도 그와 비슷한 것이었다. 남의 특출난 도움이나 배려를 필요로 할 정도의 연약함은 나를 답답하게 하는 것들 중 하나이다. 동시에 이러한 답답함은 아마도, 계속해서 의식해야 할 내 인격상의 약점이기도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