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차로일지도 몰라서 쓰는 글

스팀잇에 대한 글을 쓰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거듭 말한 바 있다. 정확히 말하면, 찬양과 비판이 다 비슷한 결을 지니기 때문에 조금 지루하다는 이야기일 뿐이다. 가입할 떄부터 지금까지, 그냥 일단은 쓰고 싶은대로 글을 쓴다는 생각만 했다. 원래 읽고 쓰는 주된 언어가 영어이기 때문에, 한글로 쓰는 곳이 있다는 것 자체가 의미가 있었다. 물론 자연스레 눈에 보이는 것들이 있으니 자연히 이 시스템에 대해서도 나름대로의 의견은 형성되었지만, 그게 나의 주된 관심사는 아니었다.

그런데 스팀잇 활동 100일째 글, 그리고 별로 다시 쓰고 싶지 않았던 보상 이야기와 큐레이팅 관련 소감에 이어 또 써야 할 일이 생기고 말았다. 최근에 나 개인적으로 많은 계기들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이곳에서의 여러 가지 일에 참여하게 되었다. 아직 본격적인 일을 시작하지는 않았지만, 일단 가나다 순으로 나열해본다. 마나마인, 메디팀, 샌드박스.

마나마인에는 아직 스팀잇에서 시작하지 않은 시리즈를 올릴 생각이다. 물론 스팀잇과 동시 게재할 것인데, 글마다 구체적인 소스(문학작품, 이론서, 작가, 사상가)에 초점을 맞추는 내용이다.

메디팀 글은 @medi.team 계정에 영문으로 옮겨서 올리는 작업이다. 사실 일반적인 번역을 좋아하지는 않는데, 전문적이거나 난이도가 있는 글을 한글에서 영문으로 옮기는 것은 꽤나 재미있는 작업이고, 해외 커뮤니티에 알리는 의미가 확실하다고 생각해서 맡게 되었다.

외국에서 자라난 내 입장에서는 아예 한국어로만 생각하는 경우에 가질 수 있는 의문들에 대한 감이 떨어지기 때문에, 한글-영문 작업을 하게 되면 간혹 새롭게 알게 되는 것들이 있다. 원 저자분들에게 허가를 받아야 하겠지만, 영작을 하면서 새삼 깨닫게 되는 한글-영문 간의 언어적인 문제들에 대해 포스팅해볼 생각도 있다.

샌드박스는 지난 달 15일 막판에 지원서를 넣었고, 오늘 오후에 가입 승인 이메일을 받아 샌드박스 2기가 되었다. 사실 그간 아트 분야만 가입이 가능한 줄 알고 있었는데, 우연히 글을 쓰는 사람도 활동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지원을 하게 된 것이다. 내가 샌드박스를 통해 암호화폐에 대해 배울 것도 많겠지만 어쨌든 정기적으로 글을 올려야 하고, 매달 다른 사람의 한글 포스팅(들)을 선정해서 소개해볼까 하는 생각도 있다.

사실 스팀잇에 가입하기 전에 샌드박스에 대한 논란도 본 적이 있는데, 커뮤니티적 성격을 가진 과제를 하고, 그에 따른 혜택으로 작용하는 인큐베이팅 시스템으로 편안하게 생각하고 있다. 논란이 되었던, 스팀달러를 보내는 부분은 이번부터 폐지가 되었다고 한다. 사실 아직은 적응이 안 되어서 이것저것 알아보는 상태이다.

하여튼, 그냥 편하게 글을 쓰던 패턴에서, 어느 정도의 체계성이 요구되는 상황이 되었다. (물론 어느 정도라고 표현하는 이유는 나름대로의 유연성을 자신하기 때문이다.) 나중에 이 시점을 뒤돌아보게 된다면, 지금 이 시점을 무슨 전환점처럼 여길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반대로, 지금 이때야말로 오히려 일상적이고 평온한 때였다고 생각하게 될 수도 있겠지. 또는, 지금도 잘은 모르는 블록체인이라는 것이 내게 영향을 끼치기 시작한 시점으로 바라볼 수도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지금 이 시점에 다른 일 대신에 이 일들을 택한 것은 확실히 그 자체로 하나의 계기이다. 그리고 나는 혹시나 이게 큰 교차로일지도 몰라서 이 글을 쓰고 있는 것이다.

나는 사실 '글쓰기'에 꼭 '온라인'이라는 개념을 결부 시킨다. 이에는 세대의 특징인 탓도 있겠지만, 개인적으로 고민하고 겪어온 직업적인 측면 때문에 그렇다. 사진 아래부터는 그 이야길 계속 하기로...

waves-336696_960_720.jpg여름이라 으례 쓰는 바다 사진

나는 원래 글을 쓰는 일을 해왔다. 학업을 마친지 그렇게 오래 되지는 않았기에 오랜 세월이라곤 못하지만, 공부하는 동안에도 글을 쓸 일이 항상 많았고, 어린 시절부터 글을 쓰려는 계획이 항상 있었다. 어릴 때는 실제로 글을 쓰는 일은 드물었지만, 책을 읽으면서 어느 정도는 글을 쓰는 효과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읽는다는 행위 자체가 생각이 밖으로 터져 나오는 것을 막고 숙성시키는 과정을 포함하기 때문이다.

내게 있어서 글쓰기란 논픽션, 특히 어느 정도 아카데믹한 글쓰기를 말한다. 문학적인 글쓰기는 한 5세 이후로는 지향한 적이 없다. 그 나이대에는 종이를 접어서 그림도 그리고 소설을 쓰곤 했는데, 그 내용은 읽은 책들의 패러디에 가까웠고, 그래서인지 일찍부터 내 성향이 창작 쪽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 생각은 지금도 같다. 비평이나 분석적인 글이, 설령 소설의 모양새를 띄었다 해도 수기 형식의 논픽션 같은 글이 내 성향에 맞다.

5살보다야 훨씬 자랐지만 여전히 어렸던 시절에, 개인 웹사이트를 만들어서 여러 가지 일을 할 생각을 가졌었다. 지금도 구상한 메뉴가 기억나는데, 전자책, 강의, 칼럼, 책 요약 등이었다. 요즘 내가 이곳에서 쓰는 글의 소재들은 그때도 다 갖고 있었다고 보면 된다. 사실 그때가 더 진지했다.

성인도 되지 않은 아이가 운영자이자 집필자라는 걸 안다면 아마도 심각하게 봐줄 사람은 없을 것이었지만, 온라인이니까 가능하리라고 생각했다. 부모님을 졸라서 개발자에게 돈도 꽤나 주고 만들었는데, 기술적인 것 외에도 내가 원하는 수준으로 구현하려면 유지비와 인건비가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는 걸 깨달았다. 워드프레스로 블로그를 쉽게 만들 수 있게 되기 전의 일이었다. 아마 그때부터 열심히 내 사이트를 가꿔 나갔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자주 한다.

지금도 블로그, 블로깅에 대해 강의하는 소위 구루들을 보면서, 아 나도 저 사람들과 비슷한 때에 시작할 수도 있었을텐데 하며 조금은 아쉬워하기도 한다. 그러나 현재는 다행히(?) 그 트렌드도 또 새롭게 바뀌는 시점이다. 이번에는 직접 내가 사업을 하진 않더라도, 기회가 오면 확실히 잡을 수는 있는 상황이다.

학위를 따면서, 막연히 당연하게 내 갈 길로 생각해왔던 강단에 관심을 잃을 때 (정확히는 애당초 관심이 없었다는 것을 깨달을) 쯤에, 마침 좋은 기회를 얻어서 내 성향에 맞는 글쓰기를 할 수 있었다. 물론 내가 오래 학업을 지속하지 않았다면 얻기 힘든 기회였을 것이다. 우연한 기회로 미국 대학원 문학창작과에 지원하는 사람들의 단편들을 읽어보고 편집을 하는 경험을 갖게 되었는데, 이미 여러 학교로부터 입학 허가를 못 받은 사람들도 붙는 일이 생겼다. 아마 읽어보고 감상평 정도만 해주었다면 내 공이 전혀 없다고 스스로 생각했을 텐데, 내 난도질은 굉장히 구체적이었다. 문장, 문단째로 마구 지워버리고, 단어 교체도 많이 해주고, 아예 새로 써야 하는 부분은 연필로 줄을 그어 명시했다.

그때 여러 사람이 말했다. 전통 있는 큰 출판사에서 편집자를 해도 되겠다고. 듣기 나쁜 말은 아니었지만, 선뜻 택할 수는 없었다. 그 자리에 가기까지 물리쳐야 할 라이벌들과 그 전형적인 프로필들이 지금도 머리 속에 그려지는데, 사실 그 과정도 내게 꽤 재미있는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런 것도 좋아하니까.

그러나 결정적으로 싫은 점이 있었다. "만일 내가 그 길을 갔다면..."으로 시작하여 망상을 해보면 바로 나오는 하나의 답이 있다. 만일 그 길을 갔다면, 이 시점에는 편집장이 이름 정도 알아주는 "견습"과도 같은 직원으로 있으면 다행이리라는 점. 물론 견습과도 같은 기간은 누구에게나 필요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일이 지루하고 반복적인 일상 속에 파묻혀서 내 눈에 더 이상 반짝이지 않게 되는 것은 꽤나 슬픈 일일 것이다.

한국에 거주해야 한다는 핑계로, 그냥 원거리로 받아 건네줄 수 있는 원고들을 종종 맡았다. 그리고 그게 지금까지도 내 주업이 되었다. 편집자 및 소위 유령작가라고 정리할 수 있겠다. 어쩌다 보니 어느 학술적인 웹사이트 편집자 자리도 하나 맡고 있는데, 대학생들이 과제할 때 참고할만한 곳들 중 하나다.

지인들의 말처럼 '큰 출판사에 근무'하면서 할만한 일들과 비등한데, 오히려 원거리이다 보니까 말단직원이나 견습이 할만한 자잘한 일 대신에 꽤나 큰 일들을 맡게 되었다는 점이 참 아이러닉하다. 그걸 깨달으면서부터 나는 '온라인 일'에 다시금 큰 관심을 갖게 되었다. 얼굴도 나이도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철저히 글만 갖고 판단을 받을 수 있는 일. (물론 전통적인 업계에 해당하는 이야기이고,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할 때에는 시간은 걸릴 수 있지만 오히려 캐릭터가 공개되는 편이 좋다.)

물론 그때까지만 해도, 당연히 영문으로만 글을 쓸 생각이었다.

큰 프로젝트를 끝낸 후에는 좋아하는 영화를 몰아서 보거나 책을 읽는 나날들이 꼭 필수로 느껴졌고, 실제로도 그렇게 해왔다. 그런데 그 패턴에 안주하지 못하게 하는 요소는 크게 두 가지였다. 내가 1) 고작 두어 명의 에이전트가 연결해줘서 일을 받는다는 점, 2) 내가 저작권을 주장할 수 있는 글을 쓰고 있지 않다는 점이었다. 사실 무슨 일을 하든 간에, 수입의 원천은 늘려야 한다. 그리고 글을 쓴다면, 보수를 떠나서 저작권을 주장할 수 있는 글의 비중을 늘려가야 할 것이다.

우연히 스팀잇을 알게 되어 흘러들어왔을 때, 나는 애초에 하지도 않았던 SNS에 대한 갈증이나 필요성은 전혀 느끼지 않고 있었다. 내게는 스팀잇이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의 대체물이 아니다. SNS를 중요하게 생각해보거나 오래 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원래는 당연히 주로 영문으로 쓸 생각이었는데, 한글로 글을 쓰는 습관과 SNS가 둘 다 내게 썩 익숙하지 않은, 새로운 요소였기 때문에 흥미가 그쪽으로 생겼다. 사실 한글로 글을 쓰는 것은 굉장한 핸디캡이다. 왜냐하면 단순히 생각을 한글로 옮겨서 쓴다고 되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상식인 것처럼 써야 하는 부분과 그렇지 않은 부분, 애초에 거론해서 글 전체에 좋은 효과를 갖는 부분, 특정 효과를 갖는 부분 등이 언어별로 다르고 그걸 잘 이해해서 써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필 내가 그걸 매번 잘해낸다고 볼 수는 없는 것이다.

어쨌든, 스팀잇은 한글로 글을 쓰는 습관을 기를 수도 있고, 잠재적으로 부수입을 창출할 수도 있으리라고 생각하게 된 공간이었다. 코인에 대해선 전혀 몰랐기에 일단은 그 정도로 생각했다. (최근에야 고팍스에 지갑을 만들고 스팀을 일부 넣어두고 있는데, 혹시 개수를 늘릴 수 있으면 해볼 생각으로 있다.)

그렇다고 해서, 완전히 부업거리로만 생각했다고 하면 어폐가 있다. 애초에 주업이든 부업이든 일이란, 하기 싫은데 할 수 없이 하는 것이 아니어야 하기 때문이다. 즉 일은 그 자체로 즐거운 것이어야 한다. 좋아서 하는 일이라면, 자기 표현과 자기 실현이 가능할 것이다. 그게 영 안 되는 일은 되도록 하지 않으려 한다. 이곳에서 쓴 모든 글과 최근에 맡게 된 일들은 다 내가 의욕을 갖고 있는 대상이다. 물론 그 사실 자체가 행운이다.

또한 SNS의 재미를 느껴본 적이 없는 입장에서도, 다른 사람들과의 교류가 가능하고 또 중요하게 작용하기도 하는 공간은 나쁘지 않았다. 일단 내가 선호하는 '적당한 거리'를 둘 수밖에 없는 관계들이기도 하고, 글을 읽어주는 이들과 직접 소통할 수 있는 것은 그 자체로 큰 장점이기 때문이다. 물론 나도 그들의 글을 많이 읽지만, 이 부분은 큐레이팅에 관련된 지난 글에서 다룬 이야기라 이만 줄이기로 한다. 원래는 SMT와 그 방향에 대해 느끼고 예상하는 바도 쓰려고 했는데, 다음으로 미루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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