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안티로맨틱의 수기 4

어느 안티로맨틱의 수기 1
어느 안티로맨틱의 수기 2
어느 안티로맨틱의 수기 3

-- 나는 과거 연애를 회상하는 것을 잘 하지 않는 편이다. 회상할 시간에 얘기를 한다. 다른 말로 하면, 친구를 만나서 그런 썰로 풀 때만 기억을 생생하게 떠올리지, 평소에는 생각이 좀처럼 나지 않는다는 뜻이다. 내가 종종 하는 말이 있다. '아무리 지금 절절하고 어쩌고 해도, 너 그거 최대 몇 년 안에는 안주거리 된다.' 여기서도 댓글로 그런 적이... 맹세코 일부러 시니컬한 말을 하려는 건 아니고, 진심이다.

-- 안주거리라는 게 꼭 뭐 가벼운 뜻은 아니다. 혼자 청승 떨면서 현실을 잠시 벗어나, 독한 술 한 잔으로 회상하는 것까지도 포함이다. 심지어 안 헤어지고 있는 상태에서도 충분히 '안주거리'가 될 수 있다는 것, 많은 이들이 알지 않는가.

Frank-Sinatra-in-Young-At-Heart-19541-e1419600552969-525x350.jpg

"One for my baby, one more for the road."

-- 앞서 과거 이야기 회상은 풀어놓을 때 빼고는 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나마 그중에서 생각이 자주 나는 경우는 뭐냐면, "경멸감이 들었던 사람"이다(이 사람 이야기도 나중에 할...지 모르겠다.). 그럴 정도의 사람이라면 만나기 전부터 어느 정도 알지 않았겠냐고? 물론 알았지! 근데 얼굴에 끌려서 만난 입장이라, 내가 뭐라고 할 자격이 있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그냥 그랬다고.

-- 앞선 회차들에서 나는 로맨스가 친구 사이를 가로막기 때문에 싫어한다는 말을 했다. 친구가 더 중요하다는 전제가 있으니 그렇다.

-- 그 외에도, 생각해보면, 나는 뭔가 잘못 꿴 단추들로 인해서 로맨스에 관련된 감정을 저급한 것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친구에게 갖는 감정에 비해 저급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당연하고, 그냥 그 자체로. 난 왜 그럴까? 싫어할 이유가 있어서 싫어하는 면도 있지만, 중요시하지 않는 것이 당연한 그 무엇으로 취급하고 있다는 것이다. 무의식적인 생각이라고 하고 싶지만, 이렇게 표현할 수 있는 것을 보면 당연히 그렇게 깊은 무의식이 아니다. 난 왜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까?

-- 물론 남들의 감정까지 그렇게 재단하진 않는다고 하고 싶지만, 문학이나 영화에서조차 그런 감정 때문에 대사를 그르치는 인간들을 싫어한다. 보고 있나, 부리바의 첫째 아들. 아니, 애초에 그런 줄거리로 등장하는 것 자체가 이미 저자도 나와 비슷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 아닌가? 그런 감정 때문에 신념 따위는 저버리거나, 혈육에 대한 큰 배신을 할 수도 있다는 것.

-- 나도 그런 감정 때문에 경멸스러운 행동을 한 적이 분명히 있다. 사랑이라고 부를 수도 없는 연애감정 정도로도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 소위 사랑에 대한 노래는 좋아하는데, 로맨틱한 감정 때문이 아니라, 인간이 이렇게 나약하다는 것에 대한 대표적인 표현 방법 아닐까 싶어서이다. 그리고 음악은 죄가 없다고. 슬프다.

-- 예전에 밥 먹는 것을 싫어한다던 친구가 있었다. 예를 들어 누군가 죽어가는데도 생존을 위해서 먹는 것을 거르지 않는 인간의 모습 같은 것에 회의감을 느낀다고, 먹는 것을 즐기면서 하기 힘들다고 했다. 아마도 직간접적으로 어떤 관련 경험이 있겠지, 트라우마라고까진 못해도. 나도 로맨스에 대해 비슷한 감정이 있는 것 같다.

-- 화제를 돌려 어물쩍 넘어가려고 했는데, 연애 때문에 스스로 보기에 경멸스러운 행동을 한 사례를 하나는 털어놔야겠다. 쩝...

-- 내가 좋아하는 생김새와 남들보다 좀 더 멀쩡한 허우대 외에는 정말 아무런 이유도 없이 만나게 된 남자가 하나 있었는데 (...언제는 다른 이유가 있었던 것마냥), 지금도 연애 초기에는 충분히 느낄 수 있는 파릇파릇한 기대심리 같은 것이 있었다. 그때는 그것이 초기에만 있는 감정이란 것을 인정하지 못하고 있던 때였다.

-- 나는 학생이었지만 그 사람은 계속 다닐 마음이 있는 직장이 있었고, 사귀자마자 나는 그냥 일찍 정착하고 싶다는 생각까지 가졌다. 사실 너무 특별해서가 아니라, 그런 생각은 매번 하는 것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정착을 빨리 하고 싶다는 생각조차, 새로운 연애의 가능성이 귀찮아서였던 듯.

-- 그런데 난생 처음으로 장애물다운 장애물이 생겼다. 내가 그 전까지 어린 나이에도 별 드라마 같은 경우를 겪어봤지만(언젠가는 글로 쓸 소재), 이건 굉장히 식상하면서도 나한테는 일어날 것이라고 절대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이제 겨우 2주 된 연애였는데, 그쪽 부모님이 둘 사이를 정리하라고 한 것이다.

-- 뭐 아들과 헤어져달라고 봉투 내미는 그런 경우는 물론 아니었고, 이유는? 가족 전체가 이민을 가게 된 것이었다. 그냥 장거리로 사귀다가 헤어지건 말건 그냥 상관 안 해도 되는 나이였지만, 그분들이 굳이 반대를 한 이유는 아들이 이민 가고 싶지 않아했기 때문이었다. 나와 끝나면 쉽게 마음을 먹을거라고 생각하셨거나, 아들이 진상을 피웠거나. 나는 그 자리에 없었으니 정확히 알 수는 없다. 우리 사이에 대해 사주 궁합도 따로 보셨는데 안 좋았다고 한 것으로 봐서, 뭔가 해프닝이 있었겠지 싶다.

-- 하여간 헤어지라고 그에게 말했고, 그는 굉장히 힘들게 그 결정에 따르려고 했다. 물론 그가 처음부터 부모님 핑계를 대진 않았지만, 결국 이유를 알게 되었다. 그때부터 나의 선전포고 설득 작업이 시작되었다.

-- 왜냐하면 내가 그렇게 오기를 느낀 것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별로 노력할 필요가 없어서 그래본 적이 없다는 말은 재수없이 들릴 수 있겠지만, 그걸 떠나서 노력을 하고 싶은 무언가가 딱히 없었다. 그냥 내키는대로 하고 싶은대로 살아왔었는데...

-- 한국에 남으라고 종용했던 것은 물론 아니다. 내가 이루고자 한 목표는 "장거리로 유지하게" 하는 것이었다. 그 후의 일은 별로 생각하지도 않았고, 단지 어떻게 그런 이유로 헤어지냐는 의문뿐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충분히 헤어질만한 이유인데도 그땐 그랬다. 본의 아니게 가족 vs 나의 구도가 된 것이다. 그 남자에게는 지나치게 오빠를 좋아하는 여동생도 있었어서 더욱...

-- 그런데 상당히 고집이 있었던 이 남자는 그 기간 동안 나를 만나려 들지 않았다. 자기도 한국에 남겠다고 부모님을 설득하고는 있고 그래서 힘들지만, 나를 만나면 더 힘들어질 거라는 것이었다. 내가 듣기에는 그건 이미 이민 결정에 따르기로 했으니 할 수 없고, 안 보는 편이 마음이 편안하리라는 얘기였다. 결국 순순히 물러나달라 이거지. 남자의 특성상 보지 않고 설득시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특히나 내가 계획했던 것처럼, 대놓고 매달리진 않는 방법으로는.

-- 키에르케고르의 글 중에서 내가 가장 자주 읽은 작품은 다른 거라고 하고 싶지만 '유혹자의 일기'이다. 사실 인간의 자유의지라는 관념을 이용해서 아예 이성에 무지한 여자를 유혹하는 내용인데, 그런 이면의 이야기는 일단 접어둔다. 중요한 것은, "말"로 순수한 여자를 유혹하는 것이 연애 경험이 제법 많은 남자를 유혹하는 것보다는 다분히 더 쉬울거라고 말할 수 있다는 점이다.

-- 이성에게 말을 잘 하는 남자는 주로 키에르케고르의 주인공과 같은 유혹자로 그려지지만, 비슷한 고전 문사철 이야기에서 말을 잘 하는 여자는 거의 존재하지 않거나, 뭐랄까 좀 다른 차원의 존재로 그려진다.

-- 키에르케고르의 주인공은 편지를 썼다. 그 편지의 내용은 그리 많이 공개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나는 그걸 여러 번 읽은 상태였고, 그 일기는 키에르케고르 본인의 실제 경험을 그린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말"로 이미 마음이 결정된 것 같은 사람의 마음을 돌리기 시작했다. 전화로든, 글로든(둘이서만 보는 웹상의 공간이 있었다), 문자로든. 물론 내용뿐 아니라 타이밍과 빈도도 중요했다.

-- 사실 내가 한 말 중에서 지금 직접 기억나는 것은 하나도 없다. 글로 표현된 것에 대해서는 기억력이 아주 좋은 편인데도 그렇다. 그래서 나는 내가 말의 "기술적인" 면에 집중하고 있었음을 안다. 어느정도의 진정성 있는 감정으로 그랬다고 말하고 싶지만...

-- 마지막 승부수는 "놓아주는 것"이었다. 이제 포기한다, 놓아주겠다는 얘기. 물론 1차적인 목표는 그걸 통해서 오히려 마음을 돌리게 만드는 것이었지만, 사실 이 부분에 가장 많은 진심이 들어가 있었던 것 같다. 진짜 가버려도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는 상태가 되어서야 던질 수 있는 얘기이기 때문이다.

-- 예상은 딱히 하지 않았는데(평정심), 그는 그날로 땅끝마을로 가버렸다. 드립인 줄 알았는데 진짜 땅끝마을...거기서, 누구한테 배운 것인지 전화로 자신의 아버지에게 시위했다. 이민을 따라 가지 않겠다고. 결론만 보고 냉정하게 평가하자면, 기대 이상의 성과였다. (물론 내가 없었더라도, 이민 자체를 가고 싶지 않았던 마음도 기본적으로 있었을 것이다!) 결국 허락을 받아내게 된다. 부모를 어린 동생과 혼자 떠나보내는 대신, 그 여자애와 꼭 결혼까지 하라는 얘기와 함께.

-- 왜 멀리까지 가서 아버지를 설득했을까? 아마도 이민이 결정된 그 기간 내내 나를 보지 않으려던 심정과 연관된 이유가 아니었을까 한다. 안 봐야지만 할 말 다 할 수 있다는 것이겠지. 나는 그렇진 않다. 볼 수 있었다면 헤어지지 말자는 설득이 훨씬 쉬웠을 것이다.

-- 그런데 평정심은 무서운 것이다(이렇게 떠넘기기). 그것을 갖는 순간, 어느 쪽으로든 기울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완전한 책임으로든, 회피로든.

-- 그가 아버지를 설득하느라 멀리 떠나버린 사이에, 나는 그 전에 오해로 헤어졌던 사람을 우연히 다시 만나게 되었다. 그것도 굉장한 우연이었고 아마도 내 일생에서 로맨스와 관련된 인물 중 가장 중요한 사람은 이 우연히 다시 만난 사람이겠지만, 그것은 다음 기회로 미룰 얘기다. 하여간 나는 원래 설득중이던 남자친구에게 진짜 헤어지자고 말할 수 밖에 없었다. 쓰레기 같지만, 변명을 하자면 우연히 다시 만난 사람은 내 소관이 아닌 오해로 헤어졌기 때문에 내심 기다리던 사람이었을 수도 있고, 어쨌든 우연이 겹겹이 많이 쌓인 상대야말로 운명이지 않은가.

-- 앞서서 내가 그때 그를 설득하려고 늘어놓은 얘기들을 하나도 직접적으로는 기억 못한다고 한 바 있다. 그런데 다시 되돌아와서 알게 된 것들은 있다. 그는 내게 화내거나 비난하지 않았다. 그러나 내가 한 얘기들을 일부 상기시켜 주긴 했다. "넌 내 아이 아니면 낳지 않겠다고 했잖아." 세상에...나는 경악했다. 내가 그런 말을 했단 말인가?! 사실 만난지 2주 되어서 이민으로 이별 소동을 벌였기 때문에 제대로 애정행각조차 한 적이 없는데...다 키에르케고르의 탓이다.

-- 착한 사람이었다. 그간 내게 마음 고생을 시킨 것이 미안하다고까지 했다. 눈앞에서도 아니고, 수화기 너머로 우는 소리를 들은 것은 아마도 그때가 처음이었을 것이다. 어쩌면 나는 내가 아니라 로맨스라는 것이 죽일 놈이라고 생각하고 싶어서 안티로맨틱을 자처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 꼭 연애감정 때문이 아니라, 연애라는 관계를 원만하게 유지하려기 위해서 한 행동이라 내가 한 일은 더더욱 정당화되지 않는다. 물론 연애 중에 무심코 하는 모든 언행들이 상당부분 자랑스러운 것이 아니긴 하다. 애초부터 정당화하거나 자랑스러워 하려고 하는 언행들은 당연히 아니겠지만. 또 시간이 지났기 때문에 괜찮다고 다독일 수도 있겠지만, 확실한 것은 내가 부끄러워하는 과거 언행들은 아마도 죄다 로맨스 때문에 한 것이었다. 내가 마음에 안 드는 행동에 대한 핑계로 댈 수 있는 가장 큰 존재, 그것이 로맨스이다.

-- One for my baby, one more for the road.

H2
H3
H4
Upload from PC
Video gallery
3 columns
2 columns
1 column
96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