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허파에 바람든 날
2. 김칫국 들이키던 나날들
3. 헤드헌터에게 그리 적합치 않았던 상품
4. 이상적이진 않지만 이거라도 한 번
5. 첫번째 전화 인터뷰는 지나가고
6. 다시 처음부터 맨 땅에 헤딩
7. 인터넷으로 보는 Python 알고리즘 시험
8. 2번째 기회는 좀 더 능숙하게. 하지만 에서 이어집니다. 
전편 줄거리
어느날 우연히 헤드헌터에게서 연락을 받아 뉴욕 금융계라는 신세계에 눈을 뜨고 행복한 상상에 즐거워하지만, 시간이 지난 채 아무 소식이 없자 불안감이 커진다. 그래서 그 헤드헌터에게 연락을 취했더니, 기대치 않았던 채용 공고를 하나 받게 되었고, 전화 인터뷰까지 하게 되었으나 진전이 없었다. 이후 내가 할 수 있어 보이는 Python Developer라는 직업에 도전하지만 인터넷을 통한 테스트를 망치게된다. 2번이나.
2번의 코딩 테스트를 마치고 나서, 뒤로 한 발 물러나있는 시간을 가졌다.
'지금 나에게 필요한 건 무엇일까?'
'어떤 기술을 익히면 쉽고 빠르게 이직할 수 있을까?'
전에 6번 글에서 그나마 내가 노력해볼 만한 세 가지 직함을 이야기 한 적이 있다. 현재의 내가 그 세 가지 중 하나의 직업을 갖기 위해 꼭 필요한 것. 그것만 익히면 징검다리 삼아 그 직함 중 하나에 닿을 수 있지 않을까.
일단 요새 기계 학습 Machine Learning이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기에 인터넷 서점에서 인기가 좋은 이론 실습 책을 2권 주문했다. 평일 밤 10시 무렵, 아이들이 모두 잠든 후에 홀로 거실에 나와 책을 봤다. 이미 아는 부분도 있었고, 생전 처음 보는 부분도 있었다. 이론 뿐 아니라 실습 코드도 있길래 회사에서 짬을 내 컴퓨터로 조금 돌려보기도 했다. 그렇게 얼마간 지냈을까. 밤 거실 쇼파에 앉아 책을 보다 어느새 잠든 나를 발견하였고, 그리고 깨달았다. 이 책을 다 이해한다고 해서 내가 Machine Learning을 안다고 말 할 수 없다는 것을. 그리고 이 일이 크게 재밌진 않다는 것을 결국 기업이 원하는 것은 대부분 "자연어 처리에 기반하여 유효한 신호를 뽑아내는 일"일텐데, 나의 현재까지의 경험에는 숫자 자료 분석만 있을 뿐, 문자/문장을 처리할 일이 없다. 실무 경험 없이는 결국 초짜일 뿐이다.
*/ "자연어 처리"라는 것은 트위터나 페이스 북 같은 곳에서 사람들의 일상적으로 쓰는 문장을 가져와 분석하는 일을 말한다.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쓰는 말이라는 의미로 자연어라고 부른다. 인터넷 상에 넘쳐나는 정보를 가져와 분석하는 대부분의 일이 보통 자연어 처리로부터 시작한다.
한동안 컴퓨터 언어 C을 독학했었다. https://www.learncpp.com/ 라는 유용한 사이트를 찾아서 여기서 하라는 대로 하나하나 실습해가며 공부했었다. 회사에서 나름 시간을 꽤 들여서 챕터 6인가 까지 갔었다. 그즈음이었다. 한계에 부딪힌 것은.
무언가 새로운 기능을 익힌다는 것은, 그 기능을 쓸 일이 있을 때 그 필요에 의해 훨씬 빨리 쉽게 배울 수 있다. 운전 면허를 따도 차를 운전할 일이 없으면 얼마 안 가 장롱 면허가 될 뿐이다. 특히나 C처럼 복잡해서 외울 게 많은 언어는 배운 걸 이용하여 계속 새로운 프로그램을 직접 만들어야 내 것으로 익힐 수가 있다. 그런데 나처럼, 필요에 의한 공부가 아니라 공부를 위한 공부를 하니 진도가 나가 배운 양이 늘어날 수록 앞의 내용은 점점 잊혀졌다. 물론 독한 마음 먹고 내가 현재 쓰는 파이쏜/포트란 코드들을 전부 C로 바꿀 수도 있을 것이다.... 그걸 못했다. 변명하자면, C은 너무 어렵다. 포트란보다 빠르지도 않은 것이,  그렇다고 파이쏜보다 편하지도 않은 것이, 행렬 Matrix Array 부분에 들어가니 복잡해서 눈에 안들어왔다. 포트란/파이쏜이면 뚝딱뚝딱 기존 코드 재활용하여 10여분이면 될 일이 익숙치 않은 C++로 하자면 1시간이 걸릴지 2시간이 걸릴지 짐작이 되지 않았다. 결국 그렇게 포기하고 만다.
그동안에 계속 새로 나오는 채용 공고는 보고 있었다. 금융계 관련하여 내가 할 만한 것들은 몇 번 더 지원해봤으나 답은 없었다. 이후 금융계를 벗어나 다양한 분야에도 지원해 봤는데, 이들 중 몇 몇 전화 인터뷰 경험은 마지막에 별책부록처럼 따로 다룰 예정이다.
현재 하는 일이 바쁠 땐 그냥 현재의 일에 몸을 맡겼다. 학회가 다가오니 학회 다녀 와서 생각하기로 하고 잠시 미뤄놓기도 하고, 논문 쓸 거리가 정리되는 시기가 되니 그래도 도리상 이직을 하더라도 논문은 어느 정도 정리해주고 가야 할 것 같았다. 다행히도 끊어질 듯 끊어질 듯 하면서도 이어지는 월급에 안주하고 있는 나를 보았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갔다.
어느날 분명 헤지펀드 같은데 "Research Scientist"를 뽑는다는 공고를 보게 되었다.
'그래 이것만 한 번 해보자. 이것도 안되면 그만 둬야지 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