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ary #11. 찬물 더운물

우리집은 IMF를 비켜가지 못했다. 때문에 몇 년간 친척 집에 얹혀 살아야 했고, 그 곳은 시골의 단독주택이라 겨울 날의 등교 준비는 항상 힘들었다.

떠지지 않는 눈으로 겨우 씻으러 들어가면 찬물만 나왔다. 더 일찍 일어나 뜨거운 물을 틀어 놓았다면 좋았을 텐데, 아직은 잠이 고플 나이였다. '이러다가 심장마비 걸리는 거 아냐?'라는 마음으로 씻던 그 당시, 수도를 틀자 마자 따뜻한 물이 나오는 그런 집에 살고 싶었다.


그리고 요즘 그런 집에 살고 있다.
문제는 찬물이 안 나온다는 것. 40도가 넘어가는 터라 시원하게 샤워하고 싶은데, 주택에 살고 있어서 이미 물탱크 속의 물도 데워져 있다.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다.


세면대 앞에 서서 두 개의 수도꼭지를 바라 보았다. 그 중 오른쪽 수도꼭지에 눈길이 갔다. '찬 물이 나올까?'

당연한건데 의심부터 했다. 찬물에 세수를 했더니 너무나 상쾌하다. 따뜻한 물 따위 틀지 않으리.

여기는 한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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