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ary #10. 서로에게 버팀목이 될 수 있길

"어쩜 그렇게 남편이랑 잘 지내요?"
주위 사람들에게 항상 듣는 말이다.

그게 문제였다. 우리가 실제로 잘 지내도, 잘 지내지 않아도, 남들 눈엔 잘 지내는 것으로 보인다는 것. 그래서일까? 당사자인 나조차도 우리 사이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했다.

몇 년 전, 친정에 우환이 생겼다. 날마다 걸려오는 엄마의 전화. 게다가 그 일은 힘들었던 옛 기억을 줄줄이 꺼내버렸다. 나는 그 일을 잊기 위해 틈만 나면 친구들과 술을 마셨다. 나를 잘 아는 오랜 친구들이라 묵묵히 듣기를 반복하던 중, 한 친구가 얘기를 꺼냈다.
"형은 알아?"
"…"
그 형은 남편을 말하는 것이었다. '그러게. 그는 알까?'

나라고 처음부터 친구들에게 의존한 것은 아니었다. 남편에게 마음을 털어놓고 싶었지만, 그는 항상 지친 채로 집에 돌아왔다. 집에 와선 함께 TV나 볼 뿐, 대화 다운 대화는 없었다. 어느 날 회사에서 너무 힘들었던 터라 남편에게 이야기하고 싶었는데, 그는 역시 피곤하다며 잠들었다. '과연 내가 사라지면 날 찾긴 할까?' 하는 생각에 자정이 지난 시간이었는데도 혼자 밖으로 나갔다. 목적지도 가고자 하는 방향도 없이 녹색 불이 켜지는 곳으로 발걸음을 향했다. 집에 도착한 것은 새벽 3시 즈음이었다. 차가웠던 밤 공기에, 이어폰을 통해 들려온 바람 소리와 섞인 음악에 내 마음이 한결 차분해졌다. 혹여나 나를 찾고 있지 않을까 슬슬 걱정 됐던 남편은 여전히 침대에서 잘 자고 있었다. 내가 우스워졌다.

"심리 상담을 받아보는 건 어때?"
상담이라는 단어에 정신과 상담이 떠올라 쉽사리 대답하지 못했다. 친구도 눈치챘는지 단순한 심리 상담일 뿐이라고, 우리에게 이야기하는 것보단 전문적인 도움을 받아보는 편이 낫지 않겠냐고 했다. 자존감이 떨어질 대로 떨어졌던 나는 이제 이들도 내 이야기에 지친 걸까 하는 생각에 상담 센터를 찾았다.

"하고 싶은 이야기를 꺼내보세요."
친구들에게 반복해서 얘기한 덕분일까? 내 이야기가 마치 남의 이야기인 양, 아무런 감정도 없이 쏟아져 나왔다. 다만 상담 선생님이 눈물을 보일 뿐이었다. MBTI를 포함한 몇 가지 검사를 한 후, 힘들었던 당시의 감정을 떠올려 보라고 했다.
"화가 나진 않았나요? 슬펐나요?"
하지만 나는 내 기억을 그렇게 가벼운 단어로 표현할 수 없었다.

예전 기억은 어차피 지난 일이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던 그 우환 속에서 나는 왜 우울해졌던 것일까? 그 이유는 바로 도넛 같은 내 인간 관계에 있었다. 가장 가까운 가족에게는 기대지 못한 채 친구들에게 의존하는, 중간이 텅 비어버린 그 도넛. 상담사는 나에게 남편과의 대화를 요구했다. 잠을 자서 깨울 수가 없다고 얘기했더니 엉덩이를 발로 차서라도 깨우라고 얘기했다.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 문제는 엉뚱하게 해결 되었다. 회사 일로 힘들어하던 남편에게 상담을 권유했더니 남편도 상담 센터를 찾아갔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연인지, 아니면 센터에서 의도한 것인지 같은 상담사가 배정되었다. 상담사는 남편에게 나와 얘기를 해보라고 권했다. 남편이 꺼내야 할 말은 정말 간단한 단 한 문장이었다. "오늘 하루 어땠어?"

처음에는 집에서 시도해 봤지만, 어느새 남편의 눈은 TV를 향해 있었다. 이래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남편을 끌고 동네 술집으로 향했다. 물론 TV가 보이는 쪽은 내 자리였다. 그렇게 한 달간 매일같이 함께 술을 마셨다. 그리고 우리는 사귄 지 10년 만에 다시 친해졌다.

예전엔 사랑하는 마음은 도파민이 끝나면 끝난다고 생각했다. 그 이후는 정으로 사는 것이라고. 하지만 이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사랑하는 마음은 사인 곡선과 같다. 음의 값을 지녔더라도 계기가 있다면 다시 양의 값으로 올라올 수 있는 것. 그리고 우리는 그 양의 값이 오래 지속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중이다.
"오늘 하루 어땠어?" 참 마법 같은 문장이다.

물론 이 글을 상담 선생님이 읽을 리 만무하지만, 그래도 이 자리를 빌려 감사드리고 싶다. "감사합니다. 덕분에 행복해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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