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의 여행] 세잔 덕후, 엑상프로방스 성지순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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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계획에 엑상프로방스를 넣었던 것은 20대 중반 내 그림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던 나의 스승, 순전히 세잔 때문이었다.

대학시절 그의 말년작, 생 빅투아르 산 연작에 너무나 감명을 받은 나머지 나 역시 북악산을 배경으로 삼아 그와 비슷한 구도로 그림을 그린 적이 있었다. 컬러풀한 그의 그림과는 반대로 내가 그린 그림은 완성해보니 흐리멍텅한 회색빛을 띄고 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이상할 게 없는 게 그것이 바로 서울의 대표적인 색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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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시절 내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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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로부터 색채화가들은 밝은 채도의 색을 찾아 남쪽으로 남쪽으로 이동했다. 세잔도 파리를 떠나 말년에 고향에서 죽을때까지 작업을 한 이유는 바로 선명한 색을 띄는 대지와 나무 그리고 하늘 때문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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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상 엑상프로방스에 도착해서 여기저기 거닐어보니 자연보다는 도시의 색깔이 더 눈에 들어왔다. 에딘버러가 밝은 갈색이 섞인 회색빛 사암석으로 통일된 도시였다면, 엑상프로방스는 도시 전체가 황토빛의 밝은 노란색을 공유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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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색의 건물들은 한낮의 강렬한 햇빛을 받아 더욱 더 그 발색이 두드러졌다. 건물 색깔은 청명한 파란 하늘과 대비되어 아주 기분 좋은 색의 조합을 이루고 있었다.

유럽의 도시가 대게 그렇듯 여기도 모든 골목골목이 다 들어가보고 싶은 충동이 일어날 정도로 너무나 예쁘다. 사방이 노란 거리에 앉아 작렬하는 뜨거운 태양 때문에 들이킨 한 캔의 맥주에 그만 취하고 말았는데, 기분이 아주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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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잔 작업실 입구



엑상에 있는 미술관에 들러 세잔의 그림을 몇 점 감상하고(이곳에서도 말년의 생빅투아르 산 연작을 찾을 수 없었다. 시카고, 보스턴, 런던, 파리, 엑상에도 없다면 아마 뉴욕에 있을 것이다ㅠ), 말년에 세잔이 사용했던 아틀리에도 찾아가 그의 고집스런 성격이 묻어나는 화구가방과 정물들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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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도 가장 보고 싶었던 생 빅투아르 산을 그가 그렸던 장소에서 보았다. 100년의 세월 탓인지 전경은 그의 그림의 구도와 정확히 일치하지는 않았지만 생빅투아르 산 만은 변함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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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빅투아르 산은 생각보다 멀리 있었으며 또한 거대했다. 저 멀리 지평선 너머에서 단독적으로 우뚝 솟아오른 바위산은 거리 때문인지 세잔의 그림처럼 푸른색을 띄고 있었다. 존재감이 강하면서도 동시에 그 신비한 색은 마치 신기루같은 인상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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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장소에는 세잔이 그린 산 그림을 프린팅해서 소소하게 전시해 놓았는데 나는 산과 그림을 번갈아 응시하다가 느닷없이 종교는 아마 이런식으로 탄생하지 않았을까..생각해 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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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고흐도 마찬가지지만 세잔도 정말 먹고 싸는 시간 말고는 오로지 작업밖에 모르는 화가였다.

하물며 비오는 날까지 밖에서 그림을 그리다가 페렴에 걸려 죽음을 맞이한 그의 인생을 돌아보며, 나 역시 같은 예술가로서 막연히 본받아야겠다는 생각보다는 죽음까지 불사할만한 그런 가치있는 대상을 찾았다는 사실 자체가 부러웠다.

물론 세잔의 시대와 지금은 예술가의 역할이 많이 달라졌다고 생각하지만.. 나도 세잔처럼 그런 것을 결국 찾을 수 있을까? 모든 삶을 반납해도 좋을 그런 어떤 그런.. 것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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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잔의 말년 그림들이 그가 결국 추구하고자 하는 세계를 대변한다고 가정한다면, 나는 미술사에서 그를 다루는 통상적인 해석에 대하여 반박하고 싶다.

큐비즘이 세잔에게서 영향을 받아 출현한 것은 사실이지만, 사실 큐비즘은 세잔이 지향했던 세계와는 정말 뜬금없을 정도로 동떨어진 회화라는 것. 세잔의 '의도'와 큐비즘은 정말 아무 상관이 없다고 말할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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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벼락 너머로 보이는 보름달을 보며, 엑상프로방스의 첫 날을 마감한다.




@thelum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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