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의 여행] 수만 개의 모나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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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만 개의 모나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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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파리에 오면 가장 가고싶었던 미술관, 오랑주리 미술관에 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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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네의 마스터피스, 수련을 눈 앞에 두고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다. 그의 수련은 심장을 뛰게 만들만큼 황홀하다.

한 눈에 초점을 잡을 수 없을만큼 가로로 긴 그림은 자연스레 눈을 이동하면서 혹은 걸어가면서 감상할수 밖에 없는데, 이것은 그림에 일종의 시간성을 부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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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형의 갤러리 안을 천천히 이동하면서 그림을 보고 있자면, 마치 우주를 유영하는 느낌이 든다. 이것은 분명히 모네의 우주다.

말년의 이 수련 그림들은 미술사에서 그를 정의하는 단순히 '빛을 그리는 인상주의'라는 언어를 넘어선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하고 있음이 확실하다. 어쩌면 이것은 눈의 망막의 현상과는 전혀 관계없는, 모네가 이제껏 보고 느껴온 것을 바탕으로 만들어낸 그의 유토피아이며 그의 판타지에 가깝다. 화면 곳곳에서 장엄한 교향곡이 울려퍼지는 듯 하다.

어떻게 표면을 색조를 저렇게, 물감을 저렇게 다룰 수 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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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랑주리 미술관을 빠져나와 바라본 파리의 구름을 바라보며 이런 생각을 해 본다. 유럽의 구름모양이 유럽 화가들의 회화에 미친 감성적, 미학적 관계를 수치화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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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리코 '메두사의 뗏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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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라크루아 '사라다나팔루스의 죽음'



파리에 와서 가장 먼저 찾은 곳은 루브르 박물관이었다. 루브르를 찾는 대부분의 관광객이 그렇듯 나 역시 수백점의 그림을 보았지만 정작 기억나는 것은 몇시간을 걸어다니느라 다리가 무진장 아팠다는 사실이다.

그 힘든 와중에도 기억나는 그림이 있었으니 바로 제리코의 대형회화작품 <메두사의 뗏목>이었다. 그리고 들라쿠르아의 <사르다나팔루스의 죽음> 역시 기대를 져버리지 않았다. 대부분의 회화들이 크기만 엄청 큰 반면 전체 화면의 색 조합이 엉망인 경우가 많았는데, 저 그림들은 정말 한번에 보는 이를 빨아들일 만큼 강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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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벤스의 대형그림 26연작이 있는 갤러리도 정말이지 대단했다. 요즘 여행기를 쓰느라 감탄사가 고갈되어서 '대단하다' 라고 쓸 때 나의 느낌은 그냥 대단한 정도가 아니라, 정말이지 대단히 대단하고 엄청나게 엄청난 것들만 이렇게 글로 남기는 것임을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외국의 도시에 여행할 때면 보고느끼는 모든 것들을 내가 살고 있는 서울과 자연스레 비교하게 되듯이, 고전의 예술품을 보고 있을때면 역시 자연스레 지금의 현대 미술과 비교하게 된다.

물론 미술의 역사가 바뀌고 예술가들의 역할도 변하긴 했다. 예술의 개념과 다루는 주제는 넓어졌으며 또한 그 옛날 시대에는 상상도 못할 정도로 다양해졌다. 그렇지만 한 시대에 있어서 예술의 다양성이라는 것이 그 시대의 예술의 수준과 직결되는가? 라고 묻는다면 난 '아니오'에 손을 들 것이다.

'조형능력'이라는 것은 시대나 매체를 막론하고 시각예술에 있어서 예술가라면 꼭 갖춰야 할 요소인데, 현대미술에서 비춰보아도 루벤스나 제리코, 들라쿠르아의 구성능력, 조형능력을 따라갈 자는 별로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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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유명한 모나리자 방으로 들어갔다. 마치 톱스타의 기자회견을 하는 듯 가만히 앉아있는 모나리자 주위에는 그의 얼굴을 조금 더 가까이서 보려는 팬들과 그들의 카메라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모나리자가 이렇게 미술관에서 대중들에게 가장 인기가 많은 이유는 그것이 대중들에게 미학적으로 가장 완벽해서가 아니라 가장 '익숙'해서 일 것이다. 미술에 일자무식인 사람도 모나리자는 알듯이, 모나리자는 우리가 어렸을 때부터 티비에, 광고에, 책에, 인터넷에, 그리고 각종 상품에 수도없이 복제되어 노출된 대표적인 미술작품이다.

그리고 그것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 먼 길을 떠나 파리에 와서 루브르에 도착, 지금 모나리자 앞에 서서 기를 쓰고 가까이 보려고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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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나는 정말 이해가 안되면서도 이상하고, 또 살짝 웃기기까지 한 현상을 목격했는데 사람들은 직접 원본이 전시된 모나리자 전시실까지 찾아와서도 자신의 눈으로 그걸 확인하지 않고 수많는 사람들이 모두 카메라 뷰 파인더를 통해 모나리자를 보고 있었다!

아니, 원본이 전시된 이 곳에서조차 사람들은 모나리자를 복제하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는 모습이 이해가 안갔다. 단 한명이라도, 모나리자의 원본이 어떤지 자신의 눈으로 유의깊게 보는 사람을 찾을 수가 없었다.

아니, 이 사람들아 ! 인터넷에 가면 고화질 모나리자 엄청 많아요. 굳이 자신의 그 흔들리는 카메라로 담아서 도대체 어디에 쓰려고 루브르까지 와서 이러십니까. 여기서 이러시면 안됩니다. 카메라를 모두 빼앗아 버리고 싶었다. 여하튼 모나리자는 오늘도 카메라로 하여금 수천, 수만개의 이미지 복제품이 되어 루브르 밖을 빠져나갔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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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숨좀 돌리고, 다음 행선지를 향해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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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착한 곳은 판테온. 이미 런던에서 세인트 폴 대성당을 보고 와서인지, 파리 판테온의 쿠폴라는 내가 감동할 수 있는 크기는 아니었다. 로마를 먼저 갔었더라면 세인트 폴 대성당도 내게 저런 취급을 받았을지도.ㅋ

그래도 내부는 장엄하며 웅장했고, 그리스 양식의 건축에 화려한 바로크식 장식들은 성당 곳곳에서 내 눈을 즐겁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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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에 지어진 빌딩들은 물론 크기 면에서 이런 판테온 같은 성당들보다 압도적으로 크고 높지만, 그래도 사람이 건물 내부에서 느낄 수 있는 이런 장엄함과 웅장함은 결코 흉내내지 못하는 거 같다.

왜냐면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건축은 거의 모두 재화의 재생산에 목적을 두고 있기 때문에 높은 빌딩일수록 그만큼 많은 '층'을 보유하고 있다. 그리고 층들은 모두 비슷한 구조로 되어 있어서 건물 내부가 하나의 유기적 전체라기보다는 작은 부분들이 위쪽으로 계속 복제되어 올려져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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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런 옛 성당들은 높이와 크기는 현대건축에 밀릴지는 몰라도 건축 외부와 내부 전체가 단 하나의 유기적인 모습을 지향하고 있기 때문에, 사람이 성당안에 들어갔을 때에는 그 건축의 모든 크기와 에너지를 한번에 느낄 수가 있다.

마치 거대한 괴물의 생명체 안에 들어가 있는 느낌을 받으며 성당 안에 서 있노라면, 내 자신이 한없이 작아지다 못해 심지어 보잘 것 없어 보이기까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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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 내부의 제단화를 감상하다가 특히 눈에 이끌리는 그림을 만났는데, 가까이 가서 자세히 살펴보니 묘사된 많은 사람중에 특히 한 인물의 묘사가 내 시선을 단순에 훔쳐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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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천을 몸에 두루고 죽어가는 성인?같아 보이는 사람을 향해 무릎을 꿇고 있는 인물이었는데, 일단 발가락의 묘사만 봐도 그 사람의 간절함을 충분히 느끼게 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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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 눈을 올려보니 늑골부위의 근육과 팔과 손의 근육 묘사는 어둠에 가려 인물의 표정이 보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그 인물의 감정을 백퍼센트 이상으로 전달해주고 있었다.

단순히 해부학 같은 기술의 문제를 넘어 이 화가는 진정 어느 경지에 다다른 것이 틀림없다. 어찌 이런 묘사가 가능하단 말인가!

감탄에 감탄을 금치 못하며 그림을 쳐다보다가 슬쩍 그림의 캡션을 보았는데, 장 폴 로랑스 라는 처음 들어보는 프랑스 화가였다. 숙소에 돌아와 구글링을 해보니, 그의 다른 작품들 역시 훌륭한 것들이 많았다. 특히 강렬한 빨간색을 마술적으로 다루는 솜씨가 뛰어났다.




@thelum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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