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월 16일 구로디지털단지 with @naha
01 인생은 타이밍
3개월 전 나하님이 트립스팀 밋업을 나가셨다는 후기를 보았을 때 떠오른 생각,
'오! 밋업에 나하님이?!'
'하지만 역시 만난다면 1:1이 좋을 것 같아.'
언젠간 '전 알아요. 우리는 곧 만나게 될 거란 걸!'이라는 밑도 끝도 없는 댓글을 달았다. 이 말은 어쩌면 '나하님만 괜찮다면 만나고 싶어요.'라는 뜻이 담긴 말이었을지도 모르겠다. 평소 나하님 글을 보고 있자면 부업(?)이 너무 바빠 잠도 제대로 못 주무시고 살인적인 연장근무를 버텨내고 있었다. 거기다 가정도 있으신 눈코 뜰 새 없이 바빠 보였다.
당연히 나의 '급만남 뻘글'까지 응답해주실 거라는 상상도 못 했다. 그런데 정말 운이 좋게도 '마침 한가하며 평일엔 괜찮다'다며 망설임 없이 손을 들어주셨다! 내일 만나자는 제안에 바로 '좋죠!' 카톡 아이디를 드리니 바로 연락처가 날아오는 투명함(?). 속전속결 약속 장소와 시간을 정했다. 우주의 신이 날 사랑하긴 하시나 보다. 타이밍 좋게 나하님을 만나게 되었다.
02 사부 말고 스승
스팀잇에 온 지 얼마 안 되어 나하님을 만났다. 나하님은 책 중독자이기 때문에 아무도 관심 없는 나의 책 리뷰를 관심 있게 봐주셨다. 내향적이라는 말에 바로 팔로우를 누르고 꾸준히 글을 읽다 어느 날 '직장인 시리즈'를 보게 되었다. 조금 충격적이었다. 뭐랄까 나약한 나 자신이 부끄러워질 만큼 치열한 생을 살아간 한 사람의 삶이 오롯이 글에 담겨있었다. 또한, 글의 흡입력과 솔직함에 놀랐다. 자신을 글로 드러내는 데 두려움이 없는 사람 같았다. 게다가 그렇게 열심히 살면서도 책을 읽고 글도 쓰시다니. 어느 순간부터 나하님 글은 믿고 읽기 시작했다. 꽤 진행된 것 같아 읽지 않았던 소설도 다 읽고 책이나 영화 리뷰도 빠짐없이 보았다. (죄송해요. 스몬글은 안 읽어요. ㅋㅋㅋ) 영화를 봐도 잘 울지 않는데 지하철을 타고 가다 나하님의 글을 읽고 훌쩍 울뻔하기도 하고 사무실에서 무심코 글을 읽다가 화장실로 달려가기도 했다.
신기하게도 내 글을 열심히 읽어주시고 애정 어린 조언도 해주셨다. 그리고 과분한 칭찬도 해주셨다. 내가 좋아하는 글을 쓰는 분이 내 글이 좋다고 해주시니 기뻤다. 내가 스팀잇을 할 수 있도록 많은 도움을 주신 분. 그래서 멋대로 '사부'님이라고 칭하니 부담스러워하시더니 정 그렇다면 '스승' 정도는 해주시겠다고 했다.
나하님을 만나면 아무래도 책이나 글쓰기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두근두근! 역시 기대가 된다.
03 첫 만남엔 술 없이 족발
저녁을 함께 먹기로 해서 무얼 먹고 싶냐는 대답에 아까 본 족발 사진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족발!'이라고 대답하니 마침 아는 곳이 있다고 하신다. '맛있겠다'라고 군침을 흘린 지 30초쯤 지나 '아. 첫 만남에 족발은 좀 그런가..? 그래도 역시 족발이 먹고 싶어.' 물론, 머리로만 생각했다.
퇴근하자마자 지옥철을 뚫고 구디로 가는 길. 원래 항상 많지만 평소보다 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열차가 역마다 지연 정차했다. 생각보다 시간이 더 걸려서 약속시간 다 되어서야 도착한 구디역. 오랜만이라 잊고 있었는데 사람이 미친 듯이 많았다. 퇴근하는 사람도 나처럼 약속 장소로 향하는 사람도. 과연 나는 나하님을 바로 찾을 수 있을까? 약속한 출구 계단을 내려가며 지나가는 사람을 모조리 스캔했다.
오른편에 왠지 나하님같이 생긴 분이 있었는데 나를 보곤 얼굴을 패딩에 파묻었다. 아닌가 싶은 찰나 내가 좀 뚫어져라 쳐다보니 슬쩍 웃으신다. 알아보는지 궁금했다며 장난을 치신 거였다.
족발집에 도착했다. 역시나 사람이 많았다. 그래도 앉을자리는 있었다. 다행이다. 그 집은 족발이 한 사이즈밖에 없었다. 덕분에 배부르게 먹을 수 있다. 보통 다른 사람은 특히나 처음 만났다면 술을 주문하겠지만 술을 못 먹는 나를 배려해 우리는 음료수만 주문했다. 사진은 찍지 않았다.(테이스팀 바이바이ㅋㅋㅋ)
옷을 벗고 마주 앉아 족발집 조명 아래 나하님 얼굴이 자세히 보인다. 먼저 나하님의 첫인상은 카카오톡으로 미리 사진을 보아서 그런지 친숙했다. 나와 쪼금 얼굴형이 닮은 것 같기도 하고. 웃지 않으면 눈매가 조금 강하다. 그런데 웃으면 소설에서 보았던 표현처럼 눈이 휘어지면서 선한 인상으로 변하셨다. 나도 누군가와 대화할 때 얼굴을 빤히 쳐다보는 습관이 있는데 나하님도 그러했다. 그래서 음식이 나왔는데도 그저 앞에 두고 우리는 서로 빤히 바라보며 이야기를 했다. 배가 고팠기에 염치 불고하고 분위기를 깼다.
-나하님. 먹어도 되죠? 왠지 먹으면 안 될 것 같은 분위기네요.
-편히 드세요.
사이다로 짠을 하고 아주 열심히 족발을 먹었고 우리의 이야기는 시끄러운 술집에서도 계속되었다. 물론 족발은 아주 맛있었다.
내가 계산을 하려고 하니 나하님이 저지하셨다. 커피를 사주신다고 했으니 커피를 사라며 밥은 사주신다고. 허헛. 족발 먹자고 한 건 저인데 말이죠. 덕분에 잘 먹었습니다.
사람 많고 시끄러운 곳은 좋아하지 않는다고 했는데 구디는 어딜 가나 사람이 많았다. 친구분이 알려준 인적이 드문 길가 카페로 자리를 옮겼다.
04 이야기꾼
나하님은 이야기꾼이었다. 그래서 혹시 소재가 떨어질까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아주 편안한 마음으로 재밌는 이야기를 경청하기만 하면 되니 얼마나 좋은가? 2019년 새해 목표가 경청이었는데 이야기가 흥미로워서 저절로 귀가 기울어졌다.
다음 카페와 네이버 카페의 역사도 들었고 어쩌다가 스팀잇에서 활동하게 되었는지도 말씀해주셨다. 우리나라 온라인 커뮤니티의 산 역사를 총망라해서 듣는 기분이었다. 생일이 같은 사람을 초대하는 '생일 카페'를 만들어 놀곤 했다는 이야기가 특히 엄청 인상 깊었다. 그때 친해진 분들과 아직도 연락을 하신다고. 그때 이야기를 하며 반짝 거리는 그 눈빛이 내게 전달되었다. 경험해본 적 없는 내게도 향수가 추억이 전달되어 미소가 지어졌다.
어릴 적부터 계속 책을 읽진 않았다고 하셨다. 의외였다. 책을 알고 나서 삶이 많이 달라졌다고 좀 더 일찍 읽었으면 어땠을까란 생각을 하신다고. 특히 소설을 읽지 않았었는데 어떤 분의 추천 덕분에 소설을 읽게 되었고 글을 쓰신 지 5년쯤 되었다고 하신다.
아! 그리고 나하님 자기가 '꼰대'라고 인정하셨다. 직장 후배가 엘리베이터 버튼을 안 누르고 멀뚱히 서있거나 고기를 안 굽거나 먼저 문을 열지 않으면 좀 그렇다고 '이걸 나보고 하라는 건가?'란 생각이 든다며... 순간 아까 식당 문을 누가 열었지란 생각이 들었다. 나하님인 것 같다. 내가 웃으며 나하님 직장에서 만났으면 저는 완전히 찍혔을 거라고 했다. 다행이다. 스팀잇에서 만나서. 그런데 사실 나하님 진정한 꼰대들은 자기가 꼰대라고 의심도 하지 않는답니다ㅋㅋ
이야기를 하면서 나와 나하님의 공통점을 찾았다. 우리는 기억력이 좋지 않다. 대략적인 이야기 흐름은 기억하는데 정확한 이름이나 연도, 디테일한 사실이나 지식에 약했다. 그리고 내가 길치라고 하니 나하님도 길치라고 했다.
-아니죠 나하님 길치가 어떻게 설계를 해요?
알고 보니 난 공간지각력이 없어 지도를 못 보는데 나하님은 지도는 잘 보셨다. 다만 갔던 길을 기억 못 하신다며..ㅋㅋ본인이 사람을 잘 알아보지 못하고 기억도 못한다고 하셨다. 반면 부인분은 기억력도 엄청 좋고 특히 사람에 대한 기억력이 좋다고. 우리는 기억력이 안 좋으니 거짓말을 안 하고 착하게 살 수밖에 없다 말하며 웃었다.
아 혹시 나중에 저 만난 것도 기억 못 하시는 거 아니에요? 증거사진 찍어놔야겠어요.
05 소설가 나하님 작가와의 만남
평소 소설을 읽으며 좀 궁금했던 점이 있었다. 소설이 어디까지 실화인지 헷갈렸다. 그럴 때마다 그냥 맘 편하게 이건 소설이다!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날 한 가지 확실히 알게 된 건 나하님의 '신사병'은 실화다.
나하님은 보통 이상의 매너를 탑재하고 계셨다. 'manners maketh man' 뭔가 불의를 못 참고 화를 내시는 와중에도 문은 잡아주실 것만 같은 이미지랄까. 문도 계속 열어주시고 춥지 않냐고 물어봐주시고 내가 음료를 가지러 픽업대로 가자 따라와서 먼저 채가셨다. 이래서 신사셨구나 므흣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충격적이게도 이수의 눈치없음도 실화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으시죠? 설정이 아니라 실화라니!! 너무 놀라 바보라고 계속 놀렸다.)
이 글에서 밝힐 수 없지만 나하님이 VIP 독자 간담회 기념으로 지금 쓰고 계신 소설의 뒷 이야기라든가 스포일러, 내가 몰랐던 반전이나 해석 여러 가지 고급 정보를 주셨다.
그리고 카페에 오자마자 떡하니 책 3권을 선물이라며 책상에 올리셨다. 밥도 얻어먹고 책도 세 권이나 받고 이렇게 받아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넙죽 '감사합니다! 잘 읽을게요.' 하고 인증샷을 찍었다.

이게 인증샷 사진을 제가 참 못찍어요. 어쨌든 그 날은 분명 존재했습니다. 나하님!!커피밋업인데 커피 사진이 없는 게 함정
06 내가 만난 나하님..
나하님이 이미 소설가의 삶을 살고 있었다. 밥을 먹고 누구를 만나고 일을 하면서도 머릿속으로 끊임없이 소설에 대한 구상을 하고 있었다. 가족과 소설이 삶의 우선순위에 있었다.
자기만의 세계와 고집이 뚜렷하고 자기 프라이드가 높았다. 그래서 자기의 부족한 점도 받아들이고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 말이 앞서지 않고 바로 행동으로 보여주는 사람. (그렇지만 또 말을 재밌게 하신다)
세상에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아주 많은 사람이었다. 오히려 시간이 부족했다. 핸드폰 노트에 적고 싶은 글감이 잔뜩 있었다. 게다가 제목도 아주 고심해서 만드셨다. 최근의 것은 물론 아주 오래전 아이디어와 이야기도 있었다. 글 이야기를 할 때 가장 행복해 보였다.
핑계가 없는 사람이었다. 주어진 조건을 탓하기보다는 어떻게든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아가기 위해 끊임없이 고군분투하는 삶. 나하님은 자신의 삶을 이미 글쓰기에 헌신하는 어려운 길을 망설임 없이 나아가고 있었다. 나하님을 보면서 쉽게 써 내려간 나의 글이 부끄러워지기도 했다. 나는 저토록 무언가에 몰입하고 내 삶을 던진 적이 있었을까? 그 열정과 확신이 존경스러웠다.
나하님의 원래 꿈이 '소설 쓰는 국어 선생님'이라고 했다. 그 꿈이 무척 잘 어울리시지만 역시 '기구 설계를 부업으로 하는 두 아이의 아빠이자 소설가'도 너무 멋진 캐릭터다. 나하님은 자기만의 오리지널리티가 있고 글과 삶이 일치한다. 언젠간 좀 더 마음껏 소설을 쓰게 되면 나하님만의 스토리가 독자에게 감동과 울림을 줄 것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그 길을 스팀잇을 통해 응원드릴 수 있어서 기쁘다.
집에 가는 길 눈이 흩날렸다. 책이 젖을까 걱정을 하니 이 정도 눈은 괜찮다고 말씀해주셨다.
한 번이라도 누군가와 글에 대해 이렇게 길고 깊게 이야기해 본 적이 있었던가. 나하님은 그 날 내가 평생 해본 적 없는 경험을 선사해주셨다. 뭔가 문인들의 아지트에 놀러 가면 이런 대화를 할 수 있지 않을까 나의 대화와 생각의 폭을 넓혀주셨다.
나하님이 주신 책을 꼭 안고 집으로 가는 언덕을 걸었다. 가로등에 더 강해진 눈발이 흩날렸다. 마음이 따뜻해졌다. 흔치않은 겨울밤이었다.
편안하고 거리낌 없이 삶을 공유해주시고 무려 3시간의 시간동안 잊지 못할 밋업을 만들어주신 나하님께 감사드립니다.
P.S. 아.. 나하님 이름 뜻이 뭔지 물어볼 걸... 까먹었네요. 흑흑. 다음기회에. 다음에 만나 뵈면 제가 꼭 밥 살게요!!!
급만남커피밋업 시리즈
#1 실은 제가 그런 게 아니랍니다.
#2 히든 밋업; 인생 첫 스팀잇 밋업
#3 비일상적 두 번째 밋업; 작가와의 만남
#4 진정한 랜덤 밋업; 뜻밖의 지적 대화
#5 마지막밋업; 우리 오늘 처음 본 거 맞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