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만남커피밋업#5] 마지막밋업; 우리 오늘 처음 본 거 맞죠?

2019년 1월 18일 신도림역 with @eyman84


01 무언가 기분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은 금요일 저녁

처음 밋업을 제안할 땐 금요일은 뺄까 했다. 회식도 금요일에 하면 욕을 한 바가지 먹는 판국에 감히 귀한 불금을 내달라는 배짱이 내게 있을 리 없지. 그러나 아무도 만나주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이겼다. 불금까지 질러본다. 이 중 하루는 걸리겠지. 결과적으로는 쫄보 마인드 덕에 화, 수, 목, 금 연일 지옥의 밋업 스케줄이 완성되었다. 정신이 충만해지는 만큼 점점 고갈되는 나의 체력, 오늘 하루만 버티면 실컷 늦잠 잘 수 있다는 초인적인 에너지가 샘솟는다.

부담스럽지 않기 위해 커피 밋업을 제안했는데 밋업을 진행하면서 저녁 시간에 약속을 잡았으면서 커피만 먹는 게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미리 eyman84(이하 아이맨님)님께 혹시 저녁도 함께 드실 의향이 있는지 여쭈어보았다. 마침 가볍게 드시는 게 나쁘지 않다고 해서 커피와 식사를 한 방에 해결할 수 있는 브런치 카페에 가기로 한다.

그날 금요일은 참 운이 좋았다. 사장님은 해외여행 가시고 아침부터 부장님은 외근 나갔다가 술 드시러 가셨다. 고로 어린이날이다!! 그리고 다음 주 물량도 적어서 할 일도 많지 않았다. 하루 종일 해피타임이었다. 룰루랄라 콧노래를 부르며 이런 사무실이라면 5년은 다니겠네 너무나 행복해라. 텐션이 잔뜩 올라간 채로 6시 땡 하자마자 신도림으로 향했다.

드디어 밋업 시작한 이래로 처음으로 약속 장소에 먼저 도착했다. 과연 아이맨님을 알아볼 수 있을 것인가? 두구두구... 그건 알 수가 없었다. 신도림역을 무시하면 안 된다. 1,2호선이 만나는 환승역 금요일 저녁 사람이 끊임없이 나왔다. 서로 만날 수나 있으면 다행이었다. 결국 카카오 보이스톡의 도움으로 만났다. 그리고 만나자마자 자리가 없을까 봐 '일단 가시죠!'하고 인파 속을 헤치며 브런치 카페로 서둘러 자리를 옮겼다.


02 글과 다른 첫인상

스팀잇에서 아이맨님을 안 지 약 한 달 정도 되었다. 내 사진을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사진과 안 친한 나와는 달리 전문가 포스를 풍기는 멋진 사진 포스팅에 혹해 팔로우를 했다. 예술에 소질은 없어도 미학적인 모든 것을 사랑한다. 사실 아이맨님이 흔쾌히 금요일을 내게 반납하셔서 조금 놀랐다. 나를 만나고 싶을 (?오해인가요?ㅋㅋ) 거라는 상상을 해본 적 없기 때문이다. 대체 왜 저를? 나중에 알게 된 진실, 금요일 유일하게 할 일이 없으시단다. 심심해서 나를 만난 게 틀림없다. 어쨌든 덕분에 이렇게 인연이 닿았다.

사실 아이맨님의 첫인상은 다른 분들과 달리 내 예상을 많이 벗어났다.

뭐랄까 처음 글로 만났던 아이맨님은 매사 간결해서 딱 할 말만 하실 것 같고 조금 냉철하고 딱딱할 것만 같은 이미지였다. 댓글도 안 달아주실 것 같은 포스였는데 의외로 내 글에 정성담긴 댓글도 달아주셔서 흠칫 놀랐다는 고백을 한다. 그러다가 산티아고 순례길을 다녀온 여행기를 읽고 조금 더 놀랐다. 직장을 그만두고 산티아고 순례길을 다녀오는 선택을 하는 사람이라, 뭔가 나랑 공통점이 있을 것만 같았다. 만나보면 어떤 분인지 조금 더 알 수 있겠지?

(아! 이후에 알게 된 건데 블로그 같은 거 써본 적이 없어서 어떻게 써야 할지 몰라서 사진만 올렸던 거라고 하셨다. 그리고 천성 공.돌.이.셨다. 의문이 풀렸다)

처음 만난 아이맨님은 정감 가는 사투리를 구사하셨다. 그리고 사진이랑 비슷하게 생기셨지만 묘하게 실물로 본 인상이 10배는 더 좋으셨다. (아무래도 풍경은 잘 찍는데 셀카 기술을 조금 더 연마하셔야 할 듯. ㅋㅋㅋ) 만나자마자 사투리와 미소에 조금 무장해제된 것 같았다. 역시 재밌을 것 같다.


03 몇 년 알고 지낸 친구 같은 이 느낌은 뭐지?

아이맨님이 눈치채셨을 것 같은데 사실 난 푼수다. 이번 밋업을 나가기 전에 '있는 그대로' 그러나 '좀 더 경청하자!'라고 마인드 컨트롤하곤 했었다. 일부러 숨기거나 꾸민 건 아니지만 밋업의 상대에 따라 비치는 내 모습이 조금씩 달라졌던 것 같다. 아무래도 조금 더 조심스러웠던 것도 있다. 그런데 아이맨님과 만난 마지막 밋업에서는 그냥 친구를 만난 느낌이라 어느 순간 나를 다 드러내게 되었다.

일단 처음은 일상적인 대화로 시작했다.

궁금했던 질문을 쏟아낸다. 평택에 사시면서 서울도 오시고 그런데 또 서울분은 아니고... 정리하자면 지금 평택에서 출장 근무 중이시고 집은 서울 쪽에 있으시고 고향은 창원이셨다. 매주 금요일마다 서울로 올라오시고 격주에 한 번 스키장에 가신다고. 허허헛. 엄청 바쁘신 분이잖아. 역시 스키장 이야기를 뺄 수 없다.

-자주 스키장에 가시다니 엄청 잘 타시나 봐요.
-스키는 원래 돈 주고 배워야 하더라고요.
-오 그럼 강습받으신 거예요?
-아뇨. 그래서 잘 못 타요.
-대체 언제부터 스키가 재밌어지나요?
-한 3번? 4번째쯤부터 재밌어지는 것 같아요.
-아... 앞으로 2번은 더 끌려가면 저도 재밌어질까요? 아뇨아뇨. 내가 무슨 소리를. 그런 말은 하지 말아 주세요.

운동하고는 그다지 안 친한데 무언가 '타는 걸' 좋아하신다고. 자전거와 스키. 참고로 밋업 다음날도 평창으로 스키 타러 가셨다. 대단하다. 대신 물과는 안 친하다고 했다. 전 스키랑도 물이랑도 안 친해요.

여행 혹은 서로 경험했던 외국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했다. 산티아고 순례길, 인도 출장, 네팔 여행, 호주 워킹홀리데이, 포르투갈, 찬조로 아이맨님 동생님 이야기까지. 평소 산티아고 순례길, 시베리아 횡단 열차가 위시리스트에 있으셨다고 하셨다. 무언가 나랑 잘 통할 것 같은 예감, 취향이 비슷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후로 무슨 주제가 나올 때마다 기승전 '그건 산티아고에 가시면 됩니다. 순례길 800km 가시죠!'라로 귀결되곤 했다. 산티아고 순례길 안 가면 큰일 날 것 같다. 지금은 저질체력이지만 언젠간 꼭 가보겠습니다. 그렇지만 신혼여행으로 갈 순 없을 것 같아요.

직장 이야기도 했는데 둘 다 별로 권위에 대한 존경 같은 건 없었다. 나는 해맑게 머리 빈 여자 컨셉으로 산다고 하니 그거 좋은 생각이라고 칭찬(?)해주셨다. 부장님이 어느 날 아이맨님께 '왜? 나랑 밥 먹기 싫어?'라는 질문에 큰 맘먹고 '네'라고 말했다는 일화에 손뼉 치면서 좋아했다. 그런데 듣다 보니 능력자 공대분이신지라 이직에 대한 부담감이 없으셨고 커리어에 대한 자긍심 같은 게 느껴졌다. 부.. 부럽다.

진짜 친구를 만난 것처럼 소소한 이야기를 엄청 편하게 했다.

써놓고 보니 너무 개인적인 이야기 같아서 자세한 이야기는 지웠다.(밴드 인싸 아싸 얘기 너무 재밌어서 집에 가면서도 웃었는데..ㅋㅋ) 고등학교와 대학시절 얘기도 하고 친구 이야기도 했다. 고향 얘기도 하고 가족 얘기도 하고 심지어 나는 명절이 싫다 김장이 싫다는 별별 TMI를 발설하고 이직 관련 고민상담까지 했던 것 같다.... 정신을 차려보니 드는 생각 우..우리 오늘 처음 본 거 맞죠?


04 트레이는 거둬가겠습니다, 손님

우리가 쉴 새 없이 구석자리에 앉아 수다를 떨고 있을 때 문득 옆자리의 남자분이 보였다. 그는 패딩을 입고 이어폰을 끼고 아메리카노를 앞에 둔 채 고개를 숙이고 주무시고 있었다. 엄청 피곤하신가 보다 커피도 안 마시고.

-저희 너무 시끄러워서 방해되는 거 아닐까요?
-이어폰 끼고 있어서 괜찮을 거예요.
-그렇겠죠?

그리고 이야기를 다시 시작해서 엄청 집중하고 있었는데 점원분이 다가오셔서 말씀하셨다.

-다 드셨으면 트레이 가져가도 될까요?
-아... 네! 가져가세요.

테이블도 많은데 왜 하필 우리 자리로 오셔서 가져가겠다고 하시는 걸까. 아무래도 우리 너무 시끄러운가 봐요. 나가라는 뜻일까요. 하면서도 나갈 생각 없이 앉아있었다. 곧이어 다른 테이블 트레이도 가져가신다. 그리고 빗자루를 들고 청소를 시작하셨다.

-이젠 진짜 나가야 할 것 같아요.
-어쩔 수 없죠.

아... 그래서 그렇게 강제로 밋업이 마무리되었다는 슬픈 사연. 그런데 시계를 보니 2시간 30분이 훌쩍 지나있었다. 보내드려야 할 때가 되긴 됐네요.


05 아이맨님은..

순전히 제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말이죠

처음 봤는데도 정말 원래 알고 지냈던 오랜 동네 친구 같던 분이었다. 아무 말이나 해도 다 받아줄 것 같고 내가 화가 나거나 속상한 일이 있어 시무룩하거나 욕을 해도 '잊어 잊어' 하며 같이 불금에 '짠'해줄 것 같은 친구.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시답잖은 농담을 주고받으며 낄낄 웃으면 어느덧 유쾌한 분위기가 되어버릴 것만 같았다.

나와는 달리 확신이 있어 보였다. 자기 삶에 대한 확신, 자기 자신에 대한 확신, 그래서 안정감이 있었고 타인을 포용할 수 있는 여유를 가진 사람처럼 보였다. 삶을 좋아하는 걸로 채우고 남의 눈치 보지 않고 쓸데없는 걱정하지 않고 단순하게 삶을 꾸리며 자기 소신대로 삶을 살아가는 사람. 그래서 오히려 새로운 세상과 낯선 사람에 대해 열려있고 호기심을 가질 수 있는 게 아닐까란 생각이 들었다. 어디서 어떻게 지내도 행복하게 지내실 것만 같다.

친화력있고 둥글둥글 하셔서 가을에 내리쬐는 햇빛같은 에너지가 느껴졌다.

처음에 사진작가냐고 물어봤었다. 아이맨님은 그냥 취미라고 자긴 자기 사진이 별로라며 마구 겸손해하셨다. 그런데 요즈음 스팀잇에 올릴 사진을 찾으시면서 과거엔 별로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 또 좋은 사진이 있다고 하셨다. 사진을 좋아하는 이유는 아버지의 영향이 큰 것 같다고 말씀하셨다. 고향집에 잔뜩 쌓여있을 정리되지 않은 사진과 필름, 카메라, 특유의 낡고 빛바랜 냄새와 풍경이 떠올라 마음이 따뜻해졌다.

유쾌하고 즐거운 금요일 밤, 나를 다독여주는 친구를 만난 기분이었다. 잠시 쉬어가며 마음이 따뜻함으로 가득 찼다. 아이맨님 말대로 사회에서 친구를 만나는 거 정말 쉽지 않다. 평소에 바라면 안 된다. 이상한 밋업 덕에 그리고 금요일날 마침 심심하셔서 마주친 행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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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금 느끼지만 정말 음식을 맛없게 찍는 능력이 있는 것 같네요. 저 샌드위치 진짜 맛있었는데 말이죠. 쥬스도 그렇고. 어디다 집어넣어야 할 지 몰라 여기다 집어넣는 사진 그래도 먹기 전에 찍었네요.ㅎㅎㅎ 미리 아이맨님과 뽀돌님과 샘터님께 사과드립니다.

편안하고 유쾌한 분위기 속에 귀한 불금 10년지기 친구처럼 저와 거리낌 없이 수다를 나눠주신 eyman84님께 다시 한번 정말 감사드립니다. 덕분에 마지막 밋업까지 편안하고 즐겁게 마무리할 수 있었어요:D 너무나 즐거웠습니다!



다음편 에필로그로 마무리하겠습니다!


급만남커피밋업 시리즈
#1 실은 제가 그런 게 아니랍니다.
#2 히든 밋업; 인생 첫 스팀잇 밋업
#3 비일상적 두 번째 밋업; 작가와의 만남
#4 진정한 랜덤 밋업; 뜻밖의 지적 대화
#5 마지막밋업; 우리 오늘 처음 본 거 맞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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