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든버러에서의 열흘을 지냈다. 이 곳의 여름 축제 -프린지 페스티벌이 왜 세계적으로 유명한지 충분히 몸소 느낄 수 있는 기간이었다.
로얄마일 프린지 거리를 비롯해 구시가지 곳곳에서는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 아카펠라를 부르는 사람, 사람을 가득 모아놓고 서커스를 하는 사람, 마술사, 인형극, 댄서, 그림쟁이들, 연극, 각종 코스튬플레이와 퍼포먼스들이 하루종일 열린다.
또한 수많은 소규모 공연장에서는 코메디연극부터 실험예술까지 종류가 매우 다양한 수백개의 공연들이 매일 열린다. 다양한 종류의 공연만큼이나 수준 또한 천차만별인데, 이 많은 공연 중 하나를 고르는 것도 관객의 입장에서는 즐거운 곤욕이다.
세계 곳곳에서 아마추어 공연팀들이 이 곳으로 몰리는데, 그도 그럴 것이, 공연팀에게 프린지 페스티벌이란 만약 대박을 쳤을 경우 뉴욕 브로드웨이로 직행할 수 있는 기회의 땅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나는 길거리 공연을 제외하곤 밀리터리 타투를 포함해 총 7개의 공연을 예매해 보았는데 한국팀 공연,'난타'를 연출한 송승환 감독의 차기작 <뮤직 쇼 웨딩>이거 정말 최고였다.
단언하건대, 아마 프린지의 수많은 공연들 중에서도 열 손가락 안에 들 만한 레벨이었다. 밀리터리 타투에서도 느꼈지만 한국의 공연이 외국에서도 절대 꿀리지 않을 만큼 세계적인 수준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말 없이 사진 감상!
정말 세상에 미친 이들이 다 모여있는 것만 같은 거리다.
사진으로만 좀 심심하니 동영상 하나 투척!
훈남 오빠가 끼부리는 영상...멋있다..
천년동안 보존된 작은 중세도시에서 이런 축제가 열린다는 것, 2차대전의 상흔을 치유하기 위해 시작된 국제 페스티벌, 초대받지 못한 예술가들의 공연으로 하여금 자발적으로 생성된 프린지 페스티벌, 모든게 참으로 매력적이고 역시 부러움의 대상이다.

동행과 같이 다닌 날도 많았지만 혼자일 때조차 어딜가든 음악과 공연이 있기에 하나도 외롭거나 심심하지 않았다. 축제를 즐기러 온 사람들 중에는 머리 희끗한 노인들이 정말정말 많았다. (비단 에든버러 축제뿐 아니라 유럽 어느 곳의 미술관에서도 쉽게 목격할 수 있는) 훌륭한 축제만큼이나 다양한 연령층이 그것을 즐기고 있다는 것도 인상적이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거리로 나서면 도시 곳곳에서 울려퍼졌던 스코티시 백 파이프의 멜로디가 아직도 귓가에 맴돈다.
에딘버러 축제의 꽃, 밀리터리 타투를 보았다. 사실 원래는 별로 관심이 없다가 여기 와서 부랴부랴 티켓을 구하게 되었는데, 군악대들의 연주가 뭐 얼마나 재미있겠어..라는 생각과 축제기간에 군악대로 하여금 사람들에게 군대의 이미지를 좋게 심으려는 저변의 의도? 가 있지 않을까.. 하는 말도 안되는 이상한 생각을 했기 때문이었다.
이런 생각을 무색하게 만들만큼, 공연은 정말 멋지고 아름답고 감동적이었다. 에딘버러 성을 뒷 배경으로 열리는 이 공연은 내가 이제껏 보지 못한 예술적인 퍼포먼스를 보여주었고, 내용 역시 전쟁보다는 오히려 평화의 메세지였다.
음악과 공연으로 하나가 되는, 군악대가 부르는 평화의 메세지는 그 뜻깊은 의미만큼이나 공연의 수준 역시 높았다. 특히 마지막에 세계 각국의 군악대들이 모두 모여 손을 맞잡고 같이 노래를 부르는 모습은 에딘버러의 늦은 밤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정말이지 감동스러웠다.
가장 센스있고 유머스러웠던 뉴질랜드 군악대의 공연이 단연코 사람들의 인기를 가장 많이 독차지했었고, 작은 인원이었지만 알찬 구성과 완성도, 역시 유머까지 곁들인 한국의 공연도 생각보다 너무 아름다웠고 좋았으며 자랑스러웠다.

아름답다, 좋다, 환상적, 감동스럽다, 멋지다, 정말, ... 특히 에딘버러에서는 글을 쓸 때 이런 단어들이 너무 남발되는 것 같지만 사실 저 단어들로도 감정을 표현하기가.. 한참 부족하다. 에딘버러를 찾을 계획이 있는 여행자들은, 여행가이드북과 함께 다양한 감탄사를 구사할 수 있는 어휘력까지 같이 준비해 와야 할 것이다.
이제 이 곳을 떠나 파리로 향한다. 아, 나도 언젠가 뭐 하나 준비해서 여기 프린지에서 뭔가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슬쩍 마음 한켠에 얹혀놓은 채로.
@thelum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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