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도시에서 출근하는 사람들도 마주치는 경험은, 오로지 여행지에서만 가능하다. 여행지에서만큼은 나도 본전 생각에 빨리 일어나서 어디라도 나간다. 런던의 랜드마크 중 하나, 언더그라운드. 디자인이 예쁘다.
런던 날씨 쥑이네. 오전에는 그냥 정처 없이 걸어보기로 한다. 사람 터질 듯한 런던이지만 관광지 포인트에서 조금만 살짝 비켜나가면 한가한 거리가 등장한다. 저 길을 따라서 주욱 걸어보자.
길 가다가 예쁜 남의 집 대문도 열심히 찍어보고 -
괜히 횡단보도에서도 셔터를 눌러본다. 이런 샷은 타국의 일상을 낯설게 느끼는 여행자만이 찍을 수 있는 풍경이다. 런던에서 찍은 사진 중에 가장 마음에 든다.

디자인 하나하나가 눈에 띈다. 이렇게 숨은 조형적 요소를 관찰하는 재미가 박물관에서의 재미 못지 않다.
멋있어서 찍어봤다. 그런데 지금 보니 저긴 어떻게 건넌담??
그래, 아이들아. 아티스트에게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는 문화를 어릴 때부터 익혀야 한단다. 아니 아니, !! 아저씨 돈 뺴가지 말고 !!!
걷다가 눈에 띄이는, 아무 공원이나 들어가보기도 한다. 다리가 좀 아팠는데 잘 됐다. 잔디 위에서 그대로 늘어지게 낮잠 한숨 자보기도 한다. 자고 일어나서 갈 길을 가려는데..
어떤 아저씨도 저쪽에서 단잠을 자고 있네. (죽은 건 아니죠?)
걷다가 문득 이런 질문이 떠올랐다. 박물관과 미술관을 많이 가다보니 문득 몇백년 혹은 몇천년 후 세상의 박물관에는 지금 이 시대가 어떻게 기록되고, 무엇이 선택되어 전시되며,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궁금해졌다.
런던의 시내를 걷다가 이런 생각이 들자 갑자기 내가 아주 먼 미래에서 특별한 자격을 얻어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여행을 온 듯, 눈 안에 들어오는 모든 광경들이 생경할 정도로 '과거형'으로 느껴졌다.
템즈강의 다리 위에서 잠시 멍 때리다가, 다음 행선지를 향해 다시 걷는다.
천문학자이자 건축가인 크리스토퍼 렌이 일생을 바쳐 만든 세인트 폴 대성당에 도착했다.

때마침 미사가 열리고 있었고, 진행되는 의식을 가만히 앉아 들으며 거대한 성당 내부를 관찰했다. 웅장한 오르간 소리와 함께 들리는 성가대의 노래소리는 과연 천상에서 울려퍼지는 듯 했다. 내 앞에 앉은 한 소녀는 갑자기 영접이라도 받은 듯 연신 터져나오는 울음을 참지 못했다.

종교라는 것. 단지 신을 믿느냐 안믿느냐를 떠나서 굉장히 설명하기가 복잡하고 어렵다. 어찌되었건 인류의 문명은 종교와 함께 성장해 온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며, 수많은 위대하고 훌륭한 예술품과 건축은 그것이 만든 결과물이다.
만약 이렇게 경탄할만한 건축과 예술이 부재한 채 단지 믿음만을 가지고 있었다면 신 역시 오랜기간 존재하지 못했을 것이다.
템즈강 건너편에서 바라본 세인트 폴 대성당!
무지개!
런던에서의 마지막 밤.
언제나 이별의 순간이 오면 아쉬움과 동시에 모든 것들이 좋아보이는 경향이 있는데, '마지막 밤'이라는 다소 감상적인 기분을 배제하더라도 런던은 모든 면에서 발달된 도시라는 생각이 든다. 사람이 너무 많다는 것만 제외하면 완벽했다. 타워 브릿지의 야경을 눈에 담으며 누구나 찍을 법한 빤한 엽서 스타일의 사진이지만 나도 한 번 찍어봤다. 기분 좋았다.
@thelum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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