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든버러에 왔다. 이 도시를 처음 마주쳤던 때의 느낌은 "와.. 대박! 이런 도시가 있다니!!" 천 년이 넘은 도시의 아우라. 내뿜는 공기부터가 다르다.
가장 눈에 먼저 띄였던 것은 도시 전체가 한 가지 색-옅은 갈색빛 사암-을 공유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18세기에 지어진 신 시가지의 모습은 이름이 무색하게 이미 클래식한 느낌을 풍겼다.
신 시가지와 더불어 11세기부터 원형 그대로 이어져온 구 시가지는 서로 상충됨 없이 하모니를 이루고 있었다. 각 건물들은 절대 튀는 일이 없이 철저히 전체의 조화를 위한 부분의 역할만을 겸손하고 묵직하게 수행하고 있었다.
가장 최근에 건축된 것으로 보이는 신 시가지의 건물들 역시 현대식 세련됨을 유지하면서도 주변의 맥락과 아주 잘 어울렸다. 얼마나 에든버러의 시민들이 이 도시를 소중하게 다루고 있고 도시 전체의 디자인에 신경을 쓰는지 알수 있는 대목이었다. 신 시가지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이유가 있었다.
에든버러는 정말 '보존의 가치'를 충분히 느끼게 해 준다. 심지어 이렇게 멋진 도시에서는 매년 여름, 2차 대전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목적으로 시작되어 지금까지 이어져오는 세계적인 축제, 프린지 페스티벌이 열린다. (프린지 페스티벌은 다음 포스팅에^^)
내가 도시에 와서 가장 먼저 가는 곳은 당연히 미술관! 이다. 미술관으로 향했다.

에든버러 미술관에서 고흐의 그림을 보았다. 역시 좋았다. 그러나 안 좋기도 했다. 고흐는 런던의 많은 미술관에서도 보았으며 그 전에는 시카고 미술관에서도 보았다. 역시 보스턴 미술관에서도 보았고, 앞으로 갈 파리의 많은 미술관에서도 틀림없이 볼 것이다. 이탈리아에서도 볼 것이며 독일에서도 볼 것이다.
고흐 뿐 아니라 모네, 세잔, 루벤스, 터너, 렘브란트, 티치아노, 들라쿠르아 등등도 마찬가지다. 물론 나는 저 화가들의 그림을 너무나도 좋아하지만, 이런 방식은 ..조금 이상하다고 생각한다.

좋은 미술관이란 무엇일까 생각해보았다. 내가 에든버러에 와서 미술관을 찾을 때, 고흐 그림을 기대하는 것은 아니다.
하물며 보스턴미술관을 입장하기 전에 나는 그토록 좋아하는 세잔의 그림조차 기대하지 않았다. 내가 어떤 장소에 갔을 때... 가장 궁금하고 기대하는 것은 그 장소만이 나에게 주는 어떤 특별한 경험이고, 그 장소만이 가지고 있는 역사의 흔적이다.
그런데 소위 대형미술관, 세계적인 미술관들이라고 불리우는 곳들은 유명한 소장품이 각각 너무 많아서 역설적으로 내가 생각하는 좋은 미술관의 자격 미달인 경우가 많다. '그' 미술관이 '그 곳'에 있다는 특별한 장소성은 제거되기 일수고, 모든 대형 미술관의 공간은 마치 맥도날드처럼 특수성을 잃고 중성화되어 있다. 그러니까 많은 것을 한꺼번에 보고, 한꺼번에 쉽게 잊어먹는 식이다.

만약 세잔의 그림은 오로지 엑상 프로방스에서만 볼 수 있는다고 하면 어떨까?
모네의 수련연작은 지베르니에서만 볼 수 있다면?
또한 상대적으로 유명하지 않는 작품들, 화가들의 작품도 오직 그 맥락이 일치하는 곳에서만 볼 수 있다면? 만약 그렇게 된다면 삐까뻔적한 대형 건물을 짓고, 많은 돈을 들여 세계 곳곳의 명작들을 고르게 구입해 진열하는 것보다 훨씬 더 좋은 미술관, 돈으로도 만들 수 없는 아주 특별한 미술관이 될 것이다.
@thelum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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