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에세이] 종 예외주의 (5-3) : 이기와 이타의 경계 ; 동전의 양면

[과학 에세이] 종 예외주의 (5-2) : 이기와 이타의 경계 ; 이기와 이타의 진화 下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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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와 이타의 경계


동전의 양면


사랑의 내집단과 증오의 외집단

집단 수준의 자연선택에 따르면 우리와 그들 사이에 놓인 선악의 골짜기는 마치 동전의 양면과 같다. 강한 이타주의가 머무는 곳에는 강한 이기주의가 찾아오고, 강한 이기주의가 자리한 곳에는 또한 강한 이타주의가 따라온다. 도킨스가 논증한 바와 같이 개인 수준에서 더욱 설득력을 갖는 이기주의와 이타주의도 있지만, 가장 끔직한 형태의 이기주의와 가장 고결한 형태의 이타주의는 주로 집단을 경계로 발생해왔다.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이를 두고 “사랑으로 서로 결합하거나 더 많은 사람을 포용하려면 공격할 만한 외부인이 있어야만 한다”라고 이야기한 바 있다.[1]

실제로, 선명한 집단의 경계는 최소한의 도덕이라고 여겨지는 가치들마저 작동을 달리하도록 만든다. 이스라엘의 심리학자 조지 타마린이 수행한 한 실험은 인간이 가진 도덕의 이중 잣대를 잘 보여준다. 타마린은 유대교 문화에서 자란 8~14세의 이스라엘 어린이들을 두 집단으로 나누어 『여호수아기』의 예리코 전투 장면을 읽어주고, 그것이 올바른 행동이었는가를 물었다. 이때 한 집단에게는 ‘여호수아’와 ‘이스라엘’의 명칭을 그대로 써서 읽어주었고, 다른 한 집단에게는 얄궂게도 이 이름들을 각각 ‘린 장군’과 ‘3000년 전의 중국 왕조’로 바꾸어 읽어주었다.[5]

여호수아가 사람들에게 외쳤다. “고함을 쳐라. 주께서 저 도시를 너희에게 주셨다. 저 도시와 그 안에 있는 모든 것들을 파괴하여 주께 바쳐라. ······ 하지만 은이나 금, 동이나 철로 만든 집기들은 모두 주께 바칠 것이다. 그것들은 주의 금고에 넣을 것이다.” ······ 그들은 남녀노소, 소, 양, 나귀 등 도시의 모든 것을 칼로 없앴다······. 그리고 도시와 그 안의 모든 것들을 불태웠다. 오직 은과 금, 동이나 철로 된 집기들만 모아 주의 집에 있는 금고에 넣었다.

한마디로 예리코 전투는 잔혹한 제노사이드의 기록이었다. ‘린 장군’의 이야기를 들었던 아이들 또한 집단 학살 행위가 나쁜 일임을 잘 아는 듯했다. 아이들의 75퍼센트가 ‘린 장군’의 행동이 잘못되었다고 비판했고, 고작 7퍼센트만이 그의 행동에 찬성했다. 하지만, ‘여호수아’의 이야기를 들었던 아이들은 전혀 다른 가치 체계를 보이는 듯했다. 놀랍게도 66퍼센트의 아이들이 ‘여호수아’의 학살 행위에 찬성했고, 26퍼센트가 그에 반대했다. 더욱이 26퍼센트의 반대 의견 중에는 “아랍인의 불결한 땅에 들어갔다”든가 “동물과 다른 재산을 전리품으로 남겨놓지 않았다”와 같이 집단 학살과 관련 없는 비판들이 포함되어 있었다.[5] 종교라는 분명한 경계가 도덕적 판단을 적용하는 한계로 작용한 것이다.

이렇듯 집단에 대한 소속감은 안으로는 구성원들을 더욱 너그럽고 헌신적으로 만들어 주지만, 동시에 밖으로는 적개심이 되어 그들을 더욱 가혹하고 폭력적으로 만들어 버린다.[1] 안으로 굽은 팔이 건네는 사랑에도 불구하고, 밖으로 휘두르는 증오는 때로 너무나도 끔찍한 결과를 가져오곤 한다. 집단의 심각한 부작용은, 각종 집단을 해체하여 법과 제도로만 개개인을 점점이 연결해야 바람직하지 않은가 회의가 들게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우리는 이기와 이타의 경계를 허물고 소속감과 적대감을 뭉뚱그려 낼 수 없다. 또한 마음의 경계를 무한히 확장하여 오로지 이타적인 존재가 될 수도 없다. 잠깐의 의지로는 수십만 년 동안 형성된 인간의 본성에 맞서지 못한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집단을 구분하고, 하는 수 없이 소속감을 갈망한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은 타인과의 의미 있는 관계를 누릴 때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훨씬 건강하다. 사회적 결속력은 면역을 강화하고 고통을 경감시키며, 수명과도 관계된다. 구체적인 연구의 결과에 따르면 가까운 사람들에게서 정신적 위안을 얻지 못하는 사람은 교류가 활발한 사람에 비해 심장질환이 생길 확률이 두 배나 더 높으며, 흡연은 사망률을 1.6배 높이지만 사회적 고립은 사망률을 2배나 높인다.[1] 집단을 이루지 못했을 때 찾아오는 본능적인 불안과 긴장이 우리를 피폐하게 만드는 것이다. 역설적이지만, 그래서 우리는 상대를 적으로 돌리는 불안정을 감수하면서도, 끊임없이 무리를 갈라 타인을 헐뜯으며 소속감을 얻고, 이로써 심리적 안정을 찾는 것일지 모른다. 우리는 유전자의 명령을 거스르지 못하고, 결국 스스로를 위해 사랑과 증오 사이에서 무리 짓는 삶을 살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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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터 맨하튼은 스스로 인류 공통의 적이 됨으로써 지구의 평화를 가져왔다.
그는 이타성이란 곧 이기성의 뒷면에 존재하는 본성임을 알았다. (영화 「왓치맨」, 2009)

감정의 힘

인류는 그동안 이성의 힘을 무척이나 자랑스럽게 여겨왔다. 이성은 인간이 자연의 법칙을 초월할 수 있도록 주어진 특권이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행동의 근거를 줄곧 이성에서 찾아 왔다. 이기적인 행동을 원할 때에는 이타심을 감정적인 것으로 매도하며 이해타산을 이성적인 것으로 치장했고, 이타적인 행동을 원할 때에는 이기심을 감정적인 것으로 취급하며 도덕을 이성적인 것으로 포장했다.

하지만, 인간이 결코 자연의 법칙에서 예외적이지 않으며, 이기심과 이타심이 동전의 양면임을 인정한다면, 우리는 더 이상 행동의 근거를 이성에서 찾을 수 없다. 이타주의를 감정의 문제로 다루려면 이기주의 또한 감정의 문제로 여겨야 하고, 이기주의를 감정의 문제로 취급하려면 이타주의 역시 감정의 문제로 간주해야 한다.

일례로, 과거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홀로코스트와 같은 비극이 정치적 자유를 빼앗기며 발생한 ‘생각의 무능’에서 비롯되었다고 통찰하였다. 그녀는 권력에 의해 생각이 마비되고, 곧 평범한 인간의 비루한 본성이 악을 자행한다고 보았다. 따라서 그녀는 본성적인 악을 막을 유일한 방법으로 ‘생각의 힘’을 강조했다. 아렌트가 말한 ‘악의 진부함(banality of evil)’이라는 표현은 이제 인간을 묘사하는 하나의 클리셰가 되었다. 그러나 아렌트의 이 같은 주장은 도덕을 ‘인간성’으로 보아 이성과 연결시키는 전형적인 사고방식이다. 그녀는 그녀가 인간다운 미덕으로 믿었던 두 요소를 엮어 인과관계를 넘겨짚은 것이다. 타마린은 이스라엘 어린이들에게 여호수아의 행동에 대한 ‘생각’을 물었고, 다양한 답변을 받았다. 아렌트의 말대로라면 66퍼센트의 생각은 ‘생각’이 아니고, 26퍼센트의 생각만을 ‘생각’으로 여겨야 할까. 제2차 세계 대전의 참상은, ‘악의 진부함’으로 아무 생각 없이 명령을 따른 평범한 인간 탓에 발생했다기보다, 외집단과 내집단의 경계를 가진 평범한 인간 탓에 발생했다고 보아야 타당하다.

한나 아렌트는 내가 인간이 가진 이성의 힘을 지나치게 깎아내린다고 불평할지 모르지만, 실제로 이성이 하는 일들을 보자면, 여전히 이성은 과대평가 받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성은 판단을 내리는 역할이 아니라, 감정이 시키는 일을 수행하는 역할에 가깝다. 특히 이성이 사후 합리화에 더 큰 활용을 보인다는 점에서, 나는 깨어있는 이성의 힘을 믿기 어렵다. 이미 자본주의의 상인들은 이를 깨닫고, 결코 소비자의 이성에 판매를 호소하지 않는다. 그들은 소비자의 감성을 자극하고, 매대의 위치부터 진열품의 가격까지 인간의 감정 작용을 겨냥함이 더 낫다는 사실을 수익으로 확인했다. 우리의 이성은 구매할 이유를 만들기에 급급할 뿐이다. 이기심과 이타심의 문제도 이와 다르지 않다. 트롤리 딜레마의 사고 실험에서 단순히 철로를 변경할 때와 누군가의 등을 떠밀어야 할 때 보이는 도덕적 차이는 논리가 아닌 감정의 문제였다.[10] 강아지까지 이타주의를 확장하여 그 권리를 주장하는 사람들 또한 면밀한 이성적 논리를 바탕으로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아렌트의 생각과 달리, 예기치 않은 상황에 닥쳤을 때 역사적 파국을 막는 것은 ‘생각의 힘’이 아니라 ‘감정의 힘’이다.

다만, 우리가 고민해야 할 부분은 우리의 감정이 타인을 ‘그들’ 아닌 ‘우리’로 느끼게 해줄 환경을 조성하는 일이다. 환경은 물리적인 설계가 될 수도 있고, 사회의 문화가 될 수도 있다. 하나, 내가 여기에서 종 예외주의를 다루며 강조하고 싶었던 것은 ‘학습’이다. 물리적 설계나 사회의 문화는 개인이 실행할 수 없는 수동적이고 거창한 담론이다. 학습으로 얻은 정보 역시 개인의 감정을 둘러싼 환경이 되고, 그의 판단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더 나아가 주체 스스로 감정의 올바른 반응을 위해 사전에 정보를 수집할 수도 있다. 만약 우리가 예외주의의 부작용을 알고 이를 피하고자 한다면, 다양한 대상과 접촉하고 공감의 토대를 마련하려는 노력을 기울일 수 있다. 비유하자면, 우리는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힘을 거스를 수 없지만, 미리 물이 지나갈 도랑을 파고 그 힘을 원하는 방향으로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우리가 대세적인 성향을 바꾸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여기에 작은 기대를 걸어본다. 다른 동물도 인간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았을 때, 다른 인간도 우리와 같은 인간임을 직면할 때, 우리의 감정이 내릴 판단은 이전과 달라질 수 있다.


[과학 에세이] 종 예외주의 (6) : 마치며로 이어집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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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Call, J. and Tomasello, M. (2008). Does the chimpanzee have a theory of mind? 30 years later. Trends in Cognitive Sciences, 12(5), 187-1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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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Diamond, J. (2013). 총, 균, 쇠(개정). 김진준 (번역). 서울 : 문학사상사 (원전은 2003에 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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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Wilson, D. S., Sober, E. (1994). Reintroducing group selection to the human behavioral sciences. Behavioral And Brain Sciences, 17, 585-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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