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작품을 다른 각도로 보는 시리즈가 예정되어 있기 때문에 [깨알 같은 문학]은 이번 회차가 마지막이다. 둘 다 지속을 할 수도 있겠으나, 한 작품으로 글을 두 번 쓰고 싶은 일이 생기느니 그냥 새 시리즈에 주력하기로 하였다. 새 시리즈는 스팀잇과 마나마인에 업로드할 생각이다.
[깨알...]의 마지막 회는 "가즈아"체가 아닌, 평소 쓰는 투로 쓰기로 한다. 지난 회차 풀이를 하기 전에 문학에 대한 몇 가지 개인적인 소고를 남겨두기로.
문학작품, 정확히는 문학작품을 읽는 습관에 얽힌 몇 가지 추억
-예전에 한번 밝힌 적이 있지만, 나는 글을 일찍 익혔다. 늦어도 7세부터는 완역본을 읽었다. 어린 아이라서 다 이해할 수 없기야 했겠지만, 뒤돌아보면 생각보다 놓치는 것은 없었다.
-물론 부모님이 전집 단위로 책을 계속 사주시니까 가능했던 일이기도 했다. 새 완역본 전집이 올 때마다, 아버지는 묵묵히 몇 권의 책을 미리 압수해 가셨다. 채털리 부인의 사랑, 테스, 여자의 일생등이었다. 압수를 왜 하시는지에 대해서는 대충 짐작은 했다. 나중에 정리가 덜 된 이삿짐 박스 더미에서 찾아서 읽었다.
-외국에 나가기 전의 아주 어린 시절, 놀이터에 나가서 논 적은 한 손에 꼽는다. 우리 어머니의 말씀에 따르면, 나는 문 밖에서 매일 동네 아이들이 와서 부르는데도 땀을 뻘뻘 흘리면서 책을 보고 있었다고 한다. 이런 일들이 쌓이고 쌓여서 거의 혼나는 일이 없는 아이로 자라난 면도 있는데, 이러한 사실은 현재의 내 성격에 긍정적, 부정적 영향을 다 끼쳤다.
-간혹 다른 아이들과 놀게 되면, 내가 짠 이야기로 연기를 하는 일이 잦았다. 직접 하거나, 인형을 사용하거나. 그리고 나서 아이들에게 "치우기 놀이"를 빌미로 내 방 청소를 시키곤 했다. 아이들이 내 이야기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한 상태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특정 책을 압수하는 것 외에) 아버지는 내 책 읽기에 대해서 특별히 관여하시지 않았다. 딱 한 번, 산책을 하던 중에 최근에 읽은 책에 대해 얘기해보라고 하신 적이 있다. 그때 나는 한 열 살쯤 되었었는데, 그런 고전문학을 읽고 무엇을 느끼는지가 궁금하셨던 것 같다. 당시에 내가 거듭 읽던 책은 레마르크의 개선문이었는데, 사실 여러 갈래의 이야기가 있지만 나는 "수용소에서 자신을 고문하던 독일 사나이와 조우하고 살해하게 된 한 유태계 의사"의 이야기로 설명을 했다. 일을 저지르고 결국 망명의 길에 오르는 라비크의 "미래"에 대해서 아버지는 "아마 결국 죽게 될 것 같다"고 하셨다. 어차피 가정이니 딱히 정답이랄 건 없었지만, 슬펐다.
-책 속 인물들의 고민이 내 고민이었고, 그들의 스트레스가 내 스트레스였다. 책을 덮는 즉시 따뜻한 세상이 펼쳐졌지만, 책 속에서 본 것보다 딱히 더 "현실"에 가깝다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마치 아주 극악무도한 범죄를 저지른 자를 목격했는데, 다음날 그가 아주 상냥한 모습을 하고 인사를 건네오는 현상과도 비슷한 것이었다. 그 괴리에 대해서 취할 수 있는 가장 좋은 태도는 그저 웃는 것임을 배웠다. 생각해보면 정말 웃기기 때문에...
-한 10대 초반이 되기 전까지는 그런 소위 고전이라고 하는 문학 작품만을 읽었다. 추리소설 등에 흥미를 붙인 것은 그 후의 일이었는데, 이미 고전이라는 것에 입맛이 길들여졌기 때문에 장르 소설도 그런 것들만을 읽게 되었다.
-언제부터인가는 모르겠지만, 자연스레 속독을 하게 되었다. 속독을 하느라 놓친 부분이 있는지 나중에 샅샅이 뒤져봐도, 별달리 그런 것은 없었다. 어릴 때의 뇌란 사실 굉장한 것이다. 성인이 된 후로는 그 정도의 무시무시한 기억력이나 호기심은 퇴색되었음을 느낀다. 하지만 나아진 부분도 있는데 필요 없는 정보를 거르는 능력, 그리고 정보를 체계적, 논리적으로 정리하는 능력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후자의 경우도 어차피 어릴적 습관의 위에 세워지는 것이라고 보고 있다.
-좋아하는 것이 많지만, 그중에서도 문학이란 나를 낳고 키워준 부모와도 같다. 내가 문학적인 글쓰기를 지향하거나 잘 하지 못하는 것은 아이러니지만, 내 육체의 부모님도 내면적으로는 그다지 닮지 않았다고 느끼니 놀라운 일은 아니다. 닮지 않아서 더 쉽게 사랑할 수 있는지도 모르겠다.
-[깨알 같은 문학] 시리즈는 어릴 적에 할머니가 들려준 "옛날 이야기"처럼 전달하고자 했다. 문학작품이란 잘 들여다보면 여러 골치아프고 철학적인 문제들도 분명 엮여는 있지만, 일차적으로는 재미있는 것이니까.
-위에서 언급했듯 [깨알...]은 오늘로 완결을 한다. 목록 아래에는 지난 회차 풀이를 제공하기로.
깨알 같은 문학 목록
깨알 같은 문학 1 미국인 헨리 제임스 作
깨알 같은 문학 2 성서의 야곱 이야기 中
깨알 같은 문학 3 보바리 부인 구스타브 플로베르 作
깨알 같은 문학 4 검찰 측 증인 아가사 크리스티 作
깨알 같은 문학 5 푸른 눈동자토머스 하디 作
깨알 같은 문학 6 오만과 편견 제인 오스틴 作
깨알 같은 문학 7 노란 벽지 샬럿 퍼킨스 길먼 作
깨알 같은 문학 8 주홍 글씨 나다니엘 호돈 作
깨알 같은 문학 9 레드 서머셋 몸 作
깨알 같은 문학 10 에덴의 동쪽 존 스타인벡 作
깨알 같은 문학 11 홈즈, 포와로, 브라운 신부의 추리법 비교
깨알 같은 문학 12 신곡 단테 作
깨알 같은 문학 13 보석 모파상 作
깨알 같은 문학 14 로그 메일 제프리 하우스홀드 作
깨알 같은 문학 15 스칼렛 핌퍼넬 오크지 남작 부인 作
깨알 같은 문학 16 스페이드의 여왕 알렉산더 푸쉬킨 作, 아스펀 페이퍼스 헨리 제임스 作
깨알 같은 문학 17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밀란 쿤데라 作
깨알 같은 문학 18 오셀로 윌리엄 셰익스피어 作
깨알 같은 문학 19 카탈리나 서머셋 몸 作
깨알 같은 문학 20 [몰 플란더스 다니엘 디포우 作, 화니 힐 존 클릴런드 作
깨알 같은 문학 21 트리스탄 토마스 만 作
깨알 같은 문학 22 폭풍의 언덕 에밀리 브론테 作
깨알 같은 문학 23 A.H.H.를 추모하며 알프레드 테니슨 作
깨알 같은 문학 24 맨스필드 파크 제인 오스틴 作
깨알 같은 문학 25 타르 베이비 토니 모리슨 作
깨알 같은 문학 26 소공녀 프랜시스 호지슨 버넷 作
깨알 같은 문학 27 실수로 누락
깨알 같은 문학 28 반전의 통속소설, 캐서린 쿡슨의 작품 특징
깨알 같은 문학 29 슬픈 사이프러스 아가사 크리스티 作
지난 회차의 슬픈 사이프러스에 맞는, 사이프러스 나무 사진
지난 회차 답변 풀이 및 선정:
다음 질문에 대해, 정답보다는 재미있는 답변을 선택하기로 했었다.
슬픈 사이프러스에서 메리를 죽인 범인은 누구인가?
우선 실제 작품에서 메리를 죽인 범인은 간호사 1이다.
간호사는 메리의 출생의 비밀을 알고 있었고, 그녀에게 호감을 가졌으며 마지막 점심 식사를 함께 했다. 의심을 받지 않은 이유는 메리만 특정 종류의 샌드위치를 먹었고, 그것은 엘레노어가 마련한 음식이었기 때문이었다.
간호사는 메리와 함께 차를 나눠 마셨지만 멀쩡했다. 그래서 간호사가 만든 차는 의심의 대상이 아니게 된 것이다.
물론 이런 디테일은 지난 회차에 제공하지 않았다. 정답을 맞추기 위한 퀴즈가 아니었으니까.
메리를 죽인 사람(들)의 모티브로는 1) 사랑/치정, 2) 돈/상속 3)출생의 비밀 4)질투 등, 교집합을 이룰 수도 잇는 몇 가지가 가능할 것이다. 추리 소설을 써본 적이 없어서 모르겠지만, 이런 류는 아마도 여러 가지 답안이 가능하게끔 캐릭터를 고안하고 집필하리라 생각된다.
그리고 이중에서 나는 아가사 크리스티의 "옴므 파탈" 중에서 가장 엉성하고 어정쩡한 로드니를 살인자로 지목하는 답변이 마음에 들었다. 여러 사람이 그렇게 하였지만, 약간씩의 차이가 있었다.
@knight4sky님: 메리가 고모의 재산을 상속할 것을 노리고 약혼녀 엘레노어를 차버렸다. 하지만 고모가 미처 유언을 못 하고 죽었기에, 다시 엘레노어에게로 돌아가려고 메리를 죽인다.
@docudai-jun님: 메리를 죽이면 엘레노어도 용의자로 몰려 제거될 수 있으니, 결국 상속을 직접 받으려고 한 짓이다.
@napole님: 로드니는 메리를 사랑한 것이 맞지만, 돈도 차지하기 위해서 엘레노어의 살인을 사주한다. 하지만 사주를 받은 가정부가 마음을 달리 먹는 바람에 메리가 죽는다.
1번은 뭔가 계획의 실패를 바로잡으려는 시도, 2번은 냉혈한의 상속 작전, 3번은 엉뚱한 사람을 죽인 실패한 살인이다.
이중에서 내 생각은 2번과 같다. (저자인 크리스티는 독자가 그런 전개로 오해하는 것을 충분히 유도했고 따라서 그럴싸한 시나리오라고 생각한다는 의미에서이다.) 하지만 가장 먼저 댓글을 단 @knight4sk님에게 내가 대댓글을 달면서, 메리와 엘레노어 양쪽을 제거하는 시나리오를 이미 공유를 해버렸다. 애초에 @knight4sky님이 염두에 둔 것일 수도 아닐 수도 있는데 어쨌건 지금 와서 따져보기에는 불분명해져버렸다. 그래서 가장 먼저 "로드니 설"을 제공한 @knight4sky님의 손을 들어주기로...댓글을 달아주시길 바람!
지난 회차에 언급했듯이 이 스토리는 영상화하면서 연출이 상당히 달라진 점이 재미있으므로, 언젠가 Jem tv 시리즈에서 다뤄볼 생각이다.
새 시리즈는 문학작품에 대해 보다 학술적이지만 적어도 일부 독자의 흥미유발은 할 수 있게끔 쓸 생각이다. 사회문화적 배경, 용어들, 캐릭터 탐구 등...그렇게 보면, [깨알...]은 새 시리즈로 다시 이어나가는 셈이 될 수도 있겠지만, 일단 표면적으로는 이만, 안녕.
몇 번 써주지 못한 @mipha님의 후문, 미안.
For @sndbox:
This is the thirtieth and the last post of my series on literature. The series has been about the works by Maugham, Steinbeck, Shakespeare, Dante, Hardy, Mann, Maupassant, Pushkin, Bronte, Austen, Toni Morrison and more. I selected a book for every post, with an emphasis on its fun aspect.
In this post I have shared a little about what literature means to me, because I'd practically been raised on it. I'm ending the series because I now wish to move onto a new series showcasing more expertise on the subject; It's to be published here and on www.manamine.net, a content provider run by Steemians.